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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31. 2022

책들의 시간 8_반짝거리는 것들에 대한 욕망

# 달까지 가자_장류진 장편소설_창비


  ‘일의 기쁨과 슬픔’을 독서 모임 책으로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어쩜 이리도 사람의 심리와 상황을 잘 표현했을까 부러움이 들 정도였다. 재미있기도 했고. 나는 소설 작가가 아님에도 책을 읽으면서, 그래서 이렇게 잘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술술 잘 읽히는 문체에, 내 감정을 콕콕 찌르는 묘사에 부러움을 느낀다. 장류진 작가님의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이 그랬다. 어렵지 않고, 쉬우면서도 바로 곁에서 벌어지는 듯한 이야기의 서사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우와, 장류진 작가님의 책이네.’라고 생각하며 빌린 책이다. 여전히 재미있다. 잘 읽힌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나의 관심사와 관련된 부분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군데군데 상황에 빵 터져 웃기도 하고,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고민에 공감이 되기도 하였던. 앞으로 우리 딸이 마주하게 될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인공들을 응원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1. 부당함을 부당하다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까지는.    

  

  나의 개인적 자아는 그림자 같고,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게으르고 귀찮음이 많지만, 나의 사회적 자아는 활발하고 친절하며, 늘 먼저 하겠다고 나선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때로는 부당함에 대한 반발도 잘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열기가 비집고 나갈 숨구멍 같은 게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 3년 11개월간의 “네네” 끝에 스스로 깨우쳤다. 그런 구멍은 클 필요도 없다. 아주 살짝, 가느다란 틈새만 만들어주면 된다. 그러면 감히 손대기가 두려울 정도로 위태롭게 들끓던 무언가가 그 실금 같은 틈으로 퓨슈퓨슈, 하는 시시한 소리를 내면서 빠져나간다.(14쪽)


  수능이 끝난 1996년 겨울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미 25년도 넘은 일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엄마 말씀에 따르면, 구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내가 많이 울었다고 한다. 선택적으로 기억을 남겼던 탓인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교 휴학을 하고 동네의 아주 큰 청소년 오락실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잘했던지 오락실 사장님이 복학하지 말고 계속 같이 일하자고 할 정도로. 그 뒤로는 학원 강사, 그리고 지금까지 교사. 일을 오래 쉬어 본 적이 없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도 참 많다. 재미있었다. 늘 단짝 같은 동료가 있었고. 성격상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하는 편이라, 불편함을 잘 모르고 지낼 때가 많다. 특히나 학교는 더 수평적인 관계가 많은 곳이라. 

  그런데도 한 번씩 속상함이 밀려올 때가 있는데, 그땐 부당한 대우 앞에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했을 때이다. 소설의 구절처럼 “네네”만 반복하다가는 터져버릴 수 있음을 나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알았다. 부당하다고 말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한 건, 성격 탓일까? 사실 아직도 잘 말하지 못한다. 똑똑하지 못함도 있지만, 지나친 배려, 지나친 친절, 혹여, 나로 인해 주변의 공기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로, 그냥 나만 참으면 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하지만 며칠 전, 부당함 앞에서 부당하다 비난하지 않고, 그 사람이 해야 할 바른 행동을 말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도 그 상황에서 나의 행동이 자랑스러웠다. 아주 조금 방법을 찾은 느낌. 나에겐 용기였지만, 혹 그 사람의 무례함은 지난날들 나처럼 부당하다 말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용납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2.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처럼.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나는 이 구절을 말하겠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 이야기를 말하면서, “사실, 부러웠어. 완전. 근데, 나는 이미 나이가 많잖아. 나는 물질적으로 많이 갖고 싶지 않아. 적당히, 지금처럼 적당히만 있으면 돼.” 

  이렇게 말했더니, 서유석 님의 노래 제목을 말해 주셨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는 지인으로 인해,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돈도 넘치도록 가져 봤어야지 그만큼 필요하지 않아를 말할 수 있는데, 나는 가져 본 적도 없으면서, 정신적 승리를 내세웠던 것. 

  이 소설은 코인, 이더리움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달까지 가자’는 그들만의 은어였으며. 사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읽은 책이었지만 재미있다. 그러면서 계속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후의 삶들도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 


“뭐랄까, 사실 그건 주문 같은 거였어. 그냥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될 거라고 믿어야만 했어. 잘되지 않을 수 있고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도 한쪽으로는 늘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어. 그래서 문득문득, 찌르듯 괴로웠어.”(327쪽)     

이런 이야기, 그러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걸 욕망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대게 욕심부리다가 큰코다치고 괘씸죄로 천벌을 받으면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이욕을 추종한 죄, 주제넘게 재물을 탐한 죄,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을 좇은 죄.(329쪽)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조금 멋쩍다. 왜 그럴까? 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더 우아해 보인다고 생각이 드는 건. 하지만 그건 가면이다. 돈이 좋다. 다만, 돈이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돈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수많은 여유가 좋은 것이다. 소설 속 다해가 돈이 많아지고 난 다음,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그런 마음의 여유. 나는 그런 돈이 좋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분별없이 반짝거리고 빛나는 것들을 좇아야 하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쓰임이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과제는 아닐까.      


3. 정리. 


  소설 속 이야기들에서 20대와 30대의 삶의 피로를 발견한다. 40대인 내가 겪어왔던 것과는 다른. 

  사회의 경제성장 속도는 나의 청춘이었던 2000년대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미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자녀 세대의 문제는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으며, 정신적 가치의 추구가 우스워질 만큼 물질적 가치는 그 영향력이 크다.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자신만의 속도로 만족하는 삶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지만 사실, 그것도 물질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은상이의 말처럼, 주문을 외우며 살아가는 것. 자신의 선택을 믿어 가치를 찾아 살아가는 것. 그런 삶을 나는 살아내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직장 생활 가운데, 뜨거운 증기를 머금은 밀폐용기와 같은 마음이 들었던 날이 있습니까? 언제였으며, 그걸 어떻게 풀어냈습니까?

2) 소설 속 은상이처럼 33억이 생긴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며,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싶습니까?     

* 서유석 님 노래 제목. 


* 2022년 10월 30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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