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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06. 2022

그 남자의 연애편지 1. 여는 글

아빠의 시간 들여다보기.

 

1942년에 태어난 아빠는 두 번의 결혼을 하였으며, 4명의 자식을 두었고,

지독히도 안 풀리는 삶을 벗어나고자 막내아들이 태어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1981년 12월부터 1985년 초까지 3년의 해외 노동자의 삶을 살아내고 다시 돌아온 한국.

그리고 아빠는 1989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49세의 나이로.

그때 나는 12살이었고, 우리 엄마는 39세이셨다.     


어느새 나는 40대 중반이 되었고, 이제야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빠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아빠는 한없이 다정하셨으며,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 주말의 명화를 보여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던 분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한국에 다시 돌아왔던 딱 4년 동안의 시간이다.

기억은 왜곡을 동반하기에 내가 기억하는 다정한 아빠의 모습과 동생이 기억하는 무서운 아빠의 모습이 달랐으며, 엄마의 삶 속 아빠의 모습이 달랐다.

엄마는 아빠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으셨다.

이미 40년도 넘은 편지를.   

  

어떤 편지는 너무 낡아 부서지기 직전이었으며,

어떤 편지는 찢어졌고, 어떤 편지는 첫 장은 있는데, 뒷 장은 없고.

하지만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종이가 모자라 뒷면에까지 이어서 쓴 아빠의 편지를

하나하나 연도별로 정리하면서, 아빠의 삶을 추억해본다.

지금의 내 나이로, 치열하게 해외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오신 아버지.

참 다정다감하여 담배 가게 아가씨도 아빠와 세 시간만 이야기를 하면 아빠에게 좋아한다 고백했다던데,

그럼에도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아빠의 삶. 폐암에 걸려 돌아가시기 직전에 친구에게 전화하여,

‘과부 한 명 만들어 놓고 나는 간다’라 말씀하셨다던 아빠의 시간.   

   

아빠의 편지를 한 장 한 장 정리하면서 아빠의 시간을 들여다보려 한다.

편지에 자주 등장했던 ‘사랑한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부의 연을 맺어 가장의 삶을 살아내신.

그러다 끝내 살만하니 그 삶을 누리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만 아빠의 시간을.


사우디아라비아 타국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엄마에게 늘 사랑을 고백하셨던 ‘그 남자의 연애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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