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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Nov 06. 2022

그 남자의 연애편지 2. 기막힌 사연도 많았던 돈.

1981년 12월 22일 밤 9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빠의 첫 번째 편지. 1981년 12월 22일. 

진아

당신을 당신을 홀로 외롭게 두고 이국만리 떠나와 이 글을 쓰는 나는 불현듯 같이 있을 때 좀 더 다정히 좀 더 잘 대해 주지 못했음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구려. 

이곳 시간은 지금 밤 8시 35분. 당신은 12/23일 새벽 2시 35분 종일 고단한 몸 지쳐 있겠구려.

방금 전에 진아가 과자 달라고 일어나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려. 

그곳에서 말로만 듣던 이곳 사우디아라비아가 지금은 한국의 4月말 쯤의 기온이다오. 한낮엔 조금 더운 것 같기도 하고 밤엔 가벼운 담요 한 장이면 충분하오. 

돈. 돈 기막힌 사연도 많았던 그 돈. 이제는 조금은 벌어지겠지. 

애기는 어떻게 되었지? 당신 몸은 괜찮은지. 어렵더라도 어머니께 말씀을 드려 약 한 첩 지어먹어야 해. 

내 어머님께도 말씀드릴게. 그리고 3년 꼭 참자. 

깊고 독한 마음먹고 3년 후 우리 집을 갖도록 노력하자. 당신이면 아무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머님도 기구한 운명에 불쌍한 처지가 아니요. 당신의 조금 양보와 이해면 어머니 문제는 처리될 수 있소. 매사 당신의 깊은 이해와 자상한 권유로 어머니께 대해야 하오. 어머니께서 어려운 나머지 불끈 화를 내시더라도 자초지종 침착한 당신의 설득이면 어머니를 달랠 수 있을 것이요. 

00, 000, 00 한결같이 내, 우리 생명과 같은 것 아니요. 

당신의 선명함은 내 일찍 알고 있는 바이니 그 문제로 이곳에서 머리 아파할 수만은 없소. 

그곳에서 떠나와 이 시간까지 며칠 사이의 수많은 사연을 꼭꼭 적어 두고 있소. 

막상 와보니 엽서 한 장,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어 3일 만에야 이 글을 쓰는구려. 

곁에 자는 분이 내게 배려를 잘해줘 많은 도움이 되오. 물도 공기도 식사도 잠도 강인한 내 건강을 해칠 수는 없나 보오. 건강합니다. 

이것저것 이곳에서 아는 것이라곤 없는 나에게 하나둘 실제 경험을 익히려 000 씨가 이일 저일 하게 하오. 

이번 주일(휴일은 금요일)에는 오아시스도 가 보아야겠고 옆 사람은 낚시를 가자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시내를 가자고 하고. 갈 때도 많구려. 사진을 찍어지는 대로 보내리다. 

술이라곤 없으니 자연 밥도 많이 먹게 되고 기침은 없어지고 집에서보다 잘 먹고 규칙적인 생활에다 매일 목욕이니 조금도 내 걱정은 마오. 4월부터 더위가 시작되는데도 편안한 생활을 할 예정이니 달리 걱정 말고 당신의 걱정은 집안으로 신경을 써 주길 바라오. 

어머니 편지, 00 편지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하지요. 당신은 당신과 우리 가정을 위하여 건강에 유의해야 하오. 또 편지하리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이만 안녕. 

                                                                                                      1981.12.22. 밤 9시. 아빠.     



  아빠의 첫 번째 편지. 1981년 12월 22일. 

  편지 속에서 아빠가 도착한 지 3일 만에 편지를 쓴다고 하신 걸 보니, 아빠는 1981년 12월 19일 도착하셨나 보다. 엄마의 편지 가방 속에서 봉투에 적힌 아빠의 준비물을 보았다. 한영사전과 영한사전. 그리고 일기장과 소금. 

  일기장. 아빠의 일기장이 궁금하다. 지금은 한 권만 남아있지만, 분명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아빠는 편지 말고 일기도 쓰셨을 것 같은데.      

  아빠는 엄마를 ‘진아’라고 불렀고, 편지의 마지막은 늘 아빠라고 보내셨다. 나중 편지들을 보면,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는 안 해(아내)’라고 불렀고, 마지막은 여전히 ‘아빠’라고 보내셨다. ‘진아’는 우리들의 이름이다. 지금도 여전히 자녀 이름을 붙여 ‘누구 엄마, 누구 아빠’라는 이름을 부르긴 하지만, 나는 ‘아빠’라고 보내는 아빠의 마음을 왠지 알 것 같다.     

 

  기막힌 사연도 많았던 돈 때문에 아빠는 외국에서 일을 하셨고, 그것이 기반이 되어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하셨나 보다. 아빠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빠의 결단이 엄마에게는 외롭고 힘든 시간을 안겨 주었지만, 두 분의 마음이 같았음을, 자식에게는 경제적 힘듦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음을 느낀다.

  40여 년 전 이국 땅에서의 아빠의 외로움과 아직 몸도 풀지 못한 엄마의 고단함을 나는 이제야 이해하는 중이다. 


* 아빠의 편지 중 몇 글자는 오타를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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