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사실주의 2025_김동식 외_문학동네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세 번째 책이다. 2023년을 시작으로 2025년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월급사실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들의 모임이며, 한국사회의 노동 현장을 소재로 소설을 써서 출판한다. 그 점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일하면서 느끼는 참 많은 감정들을 오로지 내 몫으로만 여기다가 책을 읽고는 '그래, 그렇지'하고 위로받는 마음이 들었다.
이번 책도 그러했다. 차마 제목이 너무 사실적이라 학교에서는 펼쳐 놓고 읽지 못했다. 괜스레 눈치가 보이는 삶. 직장인의 비애다. 그리고 충성된 노예의 삶에 오히려 자부심이 있는 나로서는 설령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한들,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펼치고는 덮을 수 없었다. 어떤 단편은 새로운 직업의 세계를 알게 해 주었고, 어떤 단편은 일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공통점으로 내내 마음이 아팠으며, 어떤 단편은 주인공의 선택에 공감하면서도 나는 저러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고, 어떤 단편은 일하는 것 자체가 정말 처절한 생존이라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그럼에도 책을 읽게 만드는 것, 소설의 힘이다.
1. 일일업무 보고서_아픈 몸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신변 관리와 청소를 도와주는 활동지원사가 출근할 때까지는 유튜브로 좋아하는 영상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주로 산골 오지 마을을 지키며 늙어가는 노인들을 담은 영상이었다. 노년의 삶은 내게 영영 가닿지 못할 신기로 같았다. 늙음에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노인들의 모든 일상이 경이로웠다. 척수가 손상되고 완전마비 판정을 받은 뒤 사고의 원인과 관련된 소송을 위해 받았던 내 신체 감정에서 기대수명은 62.6세였다. 그날까지 이제 이십 년쯤 남아있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더 길게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일찍 사라지고 싶지도 않았다. (225쪽)
활동지원사가 투덜댔다. 나는 엉덩이를 드러내고 모로 누워서 활동지원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활동지원사뿐만이 아니라, 언니든 엄마든 했던 말을 반복할 땐 그렇게 했다. 상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통증에 잠식당한 일상이나마 놓치지 않고 이어나가자면 어쩔 수 없었다. 매 순간 덮쳐오는 통증과 그로 인해 내 안에 독처럼 쌓여가는 분노를 다스리며 살아가기에도 충분히 벅찼다. (226쪽)
-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 중
소설을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아팠던 장면이었다. 오히려 담담하여, 그 슬픔이 배가 되어 몰려왔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산재로 인해 하반신이 마비되었으며, 근육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어 설사로 봉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음식도 철저하게 조절하며 먹는 사람이다. 장애인 채용으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백만 원 남짓한 월급의 40만 원씩 5년을 저금하였지만 그 돈은 이혼한 언니의 자립을 위해 받지도 못할 걸 알면서 빌려주었다. 산재로 인해 받은 합의금이 1억 조금 넘게 남아있었지만, 일하지 않고서는 먹고살 수 없는 돈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그 돈마저 빌려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통증에 잠식당한 일상을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나'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간 마음이 무거웠다.
통증에 잠식당한 일상, 그 구절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의 일상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소설을 통해 그 사람의 일상을 잠잠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끊임없는 애씀이 묻어있었다. 산골 오지 마을의 늙어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남은 삶에 어떤 마음도 쓰지 않고 살겠다, 그리 마음먹는 시간들. 그리고 일 다운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몸이었다.
연휴 동안 뜻하지 않게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아침의 루틴이 멈췄고, 우울감이 찾아왔다. 제대로 붙지 않으면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따랐다. 그렇다고 일을 쉴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다친 지 10여 일이 지났는데도 통증이 찌릿찌릿 온다. 낫지 않을까 봐 불안하다. 일상을 잘 지켜나가야지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이 작은 통증에도 쉽게 무너지는 마음이다.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 불편함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내일의 나 역시 오늘의 나처럼 아무 쓰임이 없을 거라는 사실에 절망할까. 어떤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다짐은 얼마나 부질없는가. 오늘만 생각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다가 정해진 때에 홀가분하게 통증에서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언제고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249쪽)
소설 속 '나'는 매일 업무보고서를 작성하여 보내지만, 하루하루의 달라짐이 없었다. 어떤 마음도 갖지 않겠다 마음먹어도 절망은 스멀스멀 마음속에 전해지고, 또 마음은 언제든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상황이 너무 사실적으로 이해되어 아주 오래 마음이 아팠다. 이토록 작은 발가락의 통증도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멈추게 만드는데, 소설 속 '나'의 엉엉 우는 울음이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길 바랐다.
2. 쌀먹.
집에서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것도 아니니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전전해야 했지만, 그는 사람을 대하는 일 자체가 힘들었다. 조금만 진상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도 공황이 일어날 지경이었는데, 심지어 그렇게 고통받아가며 버는 돈이 크지도 않았다. 요즘 아르바이트는 죄다 주휴수당을 안 주려고 근무시간을 쪼개놓아 서너 시간씩만 일해서는 돈이 되질 않았다. 고작 세 시간어치 시급을 벌기 위해서 준비와 이동에 두 시간씩 쓰는 게 말이 되는가, 그렇기에 김남우는 '차라리'란 생각이 든 거다. 덜 벌더라도 고통받지 않고 싶다는 심정으로 찾아낸 하찮은 일, 그게 바로 쌀먹이 었다. (17쪽)
- 김동식, '쌀먹:키보드 농사꾼' 중
쌀먹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게임 머니 팔아서 쌀 사 먹는다'는 밈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게임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 쌀먹. 참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을 달리해보면, 이것도 직업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심리를.
'쌀먹:키보드 농사꾼'은 김남우라는 주인공이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겨우 찾은 일, 게임 아이템을 팔아 현금화하는 일을 하는 생활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대학을 나와 들어간 직장에서 김남우가 버틴 시간은 5개월이었다. 그동안 김남우는 스트레스성 탈모, 위염, 인간혐오를 얻었다. 그리고는 나와 찾은 자신만의 일. 덜 벌더라도 고통받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일, 그게 '쌀먹'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 생각이 났다. 내가 학원강사를 할 때, 임신을 한 줄을 모르고 학원을 옮겼었다. 그전까지는 아주 작은 학원에서 일을 했으며, 나름대로는 가르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힘든 줄 모르고 일을 했는데, 옮긴 학원은 지역에서 조금 큰 학원이었고, 수강생도 강사도 많은 학원이었다. 유난히 그때 몸이 피곤했었다. 계속 잠이 왔고, 학원 일은 많이 힘들었으며, 일을 못한다는 생각에 힘들었었다. 원장님께 꾸중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눈치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를 임신한 걸 알고는 바로 그만두었다. 채 3개월을 채우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를 가졌었기에 체력적으로 힘이 들었고, 일을 잘 버티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었다. 그냥 힘들었다.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이.
김남우가 직장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나온 건 일을 잘하지 못했다는 역량의 문제도 있었지만, 주변의 비아냥과 그것도 못하냐는 멸시, 따돌림도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회성 부족이란 이름으로 가해지는 어떤 폭력들. 나 또한 김남우의 선택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으로 김남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직장은 빨리 나와야지'하는 마음과, 동시에 '1년도 못 버티고 어떻게 그만둘 수 있지?' 하는 마음이 함께 있었다. 김남우는 고통받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쌀먹을 선택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떳떳하게 자신의 직업을 밝히지 못한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3. 정리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세 번째 책,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는 여전히 세상의 참 많은 사람들의 직업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회의 불합리와 비공정함을 고발하고 있고, 사람을 대하는 무례함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직업을 대하는 다양한 가치와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흔들리는 나의 가치와 생각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는 흔들리는 것은 가치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 경험의 한계가 내 생각의 한계로 굳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책을 통해 다양한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또 한 번 내 마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읽으키는 책이다. '서수진의 '올바른 크리스마스''에서 주인공 '주미'는 남자친구 '애런'에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셰어하우스에서 이사를 가고 싶은 이유를 말한다. 남자친구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주미는 폭발하고 만다. 그때 남자친구 '애런'이 하는 말. "미래가 왜 없어? 나는 이렇게 쭉 살 건데? 그게 내 미래야.".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다 다를 수 있으며, 그 다른 가치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그의 삶을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야기 나눠 보기]
1) 몸의 통증으로 인해 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월급 사실주의_우리가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들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