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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35. 조금 망한 사랑

# 김지연 소설_문학동네

by 벼리바라기


재미있게 잘 읽었다. 몇몇 단편은 문학상 수장집에서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때도 기억에 오래 남아 브런치에 글을 적었던 적이 있었다. 이렇게 다시 마주하여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좋은 것 보면, 참 강렬했나 보다. 소설의 내용도 제목만큼이나.

'조금 망한 사랑'은 김지연 작가님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제목이 좋았던 이유는 언제나 완벽한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한 번도 그걸 가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많아서였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대변하는 책 같아서 읽고 싶었고, 막상 읽기 시작하자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모든 단편들이 '사랑'을 어느 정도 중심 키워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짠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또 불행하기도 한 그런 사랑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 책이 참 좋다.

1. 포기_살면서 마주하는 한 두 개의 불운


나는 나중으로 미루는 버릇 때문에 될 일도 안 될 것이다. 그로 인해 평범하게 사는 것을 감당해야 한다. 내가 상상한 평범한 삶이라는 게 웬만한 건 다 충족된 삶이었다는 것도 나중에 깨달았다. 집이 있고, 차가 있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고, 함께 여행 갈 애인이나 친구나 가족이 있는, 그런 게 평범한 삶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 게 평범하던 시절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건 아주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삶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삶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지. 그날 호두가 민재에게 끝없이 전화를 걸다가 연결되지 않자 끝내 울어버리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25쪽)


소설집에 첫 번째로 실린 작품이 <포기>이다. 예전에 읽어 보았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소설 보다 여름'에 실린 작품이었다. 그때도 새로웠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다. 소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떤 장면들을 소재로 할 때가 많기에,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그를 찾아내기도 한다.

이번 소설 '포기'는 참 다양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삼촌 집에서 '나'와 함께 자란 호두, 그리고 나의 연인 '민재'. 호두는 나의 소개로 알게 된 민재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민재는 잠적해 버렸다. 그 일에 대한 미안함이 나에게는 늘 있었다.


사람을 사랑할 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그의 어려움이 나로 인해 극복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 나의 희생은 나의 사랑을 넘지 못할 거라는 그런 마음으로 충만해질 때. 나도 그러했다. 그를 둘러싼 배경은 흔히들 말하는 '흐린 눈'이 되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 나의 희생만큼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 내 사랑보다 그의 사랑이 한없이 적었음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사랑이 식었다. 다만, 사랑은 식었으나, 동지애는 남아 우리는 여전히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걷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을 채워가면서.

이번 단편 <포기>에서는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것'이란 구절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았다. 공감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늘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으면서도, 결핍은 그 삶 가운데 함께였다. 나에게 불행은 채워지지 않은 어떤 결핍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채워진 많은 것들보다 조그마한 결핍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누구나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보통의 평범함이란 것을.

나의 불행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행, 불행이 정말 어떤 고리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불행한 선택이 불러 온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나에게 행복을 주기도 했고, 자신만만하게 여겨 선택했던 행복의 순간은 시간이 지나 불행한 결말을 보여주기도 했다. 살면서 마주하는 한두 개의 불행은 그것대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살아야겠다.


2. 좋아하는 마음 없이.


어릴 때 안지는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은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찬반 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했고 친구의 것과 같은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수학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오는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같이 욕을 했다. (138쪽)


단편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참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다. 주인공 '안지'의 성격 일부분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런 마음. 주인공 '안지'는 평균적인 삶을 살고 싶어 했으며, 당연히 해야 할 시점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기에 결혼했지만, 남편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 안지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안지는 좋아하는 마음이 없었기에, 이혼을 하고 양육권도 포기한다.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가 보고 싶다거나, 아이를 키우겠다는 어떤 마음도 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 전남편이 죽고, 전남편의 아내가 '안지'를 찾아와 전남편과 안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양육비를 요구한다. 안지는 아이가 자신과 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게 되고 생각에 빠진다. 안지의 선택은 아이를 키우지 않는 것이었다.

한 때 아주 유행하던 말 중, '처음이어서'란 말이 있었다. 이번 생도 처음이고, 엄마도 처음이고, 누구나 처음 하는 어떤 일들은 서툴 수밖에 없으며,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란 말의 상징적 표현이다.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이혼을 하는 것도, 그리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모두 처음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안지'에게도 그러했다. 처음의 시간과 선택. 하지만 안지는 이혼 후 더 잘 지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도 하며, 좋아 죽을 것 같은 어떤 감정에 대하여도 어렴풋이 알아간다. 남편이 여자를 데리고 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할 때, 어떻게 저렇게 좋아 죽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안지도 좋아죽을 것 같은 감정 속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임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어떤 삶을 살아간다 해도, 결국 삶이란 자신만의 색깔이 있음도 생각하게 되었다. 안지가 뒤늦게 깨닫는 어떤 마음들도 이해가 되었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이별하며,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네 삶은 그 '적당히'를 넘어 불꽃같은 어떤 감정을 찾아가는 길임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그 과정 속에 있음을.


3. 정리


날이 더워질수록 나는 소설이 재미있다. 여름날에 읽는 소설을 나는 참 좋아한다. 이번 소설은 아직 완전한 더위가 오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시원함을 준 소설이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잘 몰랐지만 어느새 이름이 익어 기억에 오래 남는 작가님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도 참 좋다.

'조금 망한 사랑'의 모든 단편들은 조금씩의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재혼을 통해 달디 단 삶의 맛을 보게 되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쓰디쓴 시간들을 다루기도 하고, 동거하던 사람과의 편안한 일상이 사랑이라 믿었지만, 혼자만의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기도 한다. 이별 후에 남은 빚을 성실히 갚아가며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모두, 정말 조금 망한 사랑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참 공감이 가며, 나의 일상의 어떤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 이 소설이 지닌 참 크나큰 힘이라 생각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스스로 생각하는 '평범한 삶'의 정의가 있다면 무엇인지, 어떤 삶을 평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나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지, 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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