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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33. 줍는 순간

# 북클럽 문학동네 #이달책 3호_줍는순간 # 줍는순간 # 안희연의 여행

by 벼리바라기

‘북클럽 문학동네 이달책 3호’. 잘 알지 못하는 작가님의 책이었지만,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참 좋아 읽게 된 책이다. 읽는 내내 함께 여행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2005년부터 2025년까지의 여행 기록. 중간중간 실린 작가의 흑백 사진은 어떤 것은 엽서로 만들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제목도 참 좋다. ‘줍는 순간’


길을 걷다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그것이 쓸모 있거나, 진귀하거나, 간직할 가치가 있거나, 그저 눈에 띄었을 때 인간은 그것을 줍는다. 또는 지금껏 지녀왔던 것을 어딘가에 흘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방으로 애타게 찾아 헤맨 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워 올리는 경우도 있겠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어쨌든 줍는다는 것은 허리를 굽히는 동작을 수반한다. 주운 것은 그것을 주운 자와 부지불식간에 연결된다. 무엇을 주웠는가, 왜 주웠는가, 물음의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심층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290쪽)


작가님에게 있어 ‘줍는 순간’은 여행의 순간이었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으며, 인간의 심층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줍고 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오래 생각했다.


1. 나에게 여행은?


여행을 통해 세상에 수많은 창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세상 어디에도 ‘멈춰 있는’ 창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저마다의 창문은 저마다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부표처럼 한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내 눈앞에 수천 평의 포도밭이, 노을 지는 해변이, 어둠을 쪼개는 햇빛이, 키스를 나누는 연인이 선물처럼 도착하곤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정박해 있는 시간이 좋았다. 풍경이 주는 위로에 덜컹이며 나의 삶도 누군가의 창밖으로 아름답게 흐를 수 있기를 바랐다. (35쪽)


집이 참 좋아 집에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여행에 대한 갈망이 늘 있다. 그래서 방학이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주말이면 반나절의 외출 계획을 세운다. 가볍게 집 밖 식당을 찾기도 하고 인근 도시의 풍경 좋은 카페를 검색하기도 한다.

얼마 전 강화를 다녀왔다. 꼬불꼬불한 길을 차로 달리면서 드넓게 펼쳐진 밭길과 저 멀리 보이는 푸릇한 산의 풍경에 눈이 시원해졌다. 그리고 도착한 카페는 통창이 주변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는 곳이었다. 멀리 바다도 보이고, 가까이 샤스타데이지의 꽃밭도 보였다. 흰 꽃들이 출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으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평화로운 풍경이, 그대로 내 마음을 비춰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풍경이 주는 위로였다.


이번 여름방학에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멀리는 아니더라도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며칠을 살아보는 것. 아침이면 일어나 주민처럼 동네를 산책하고, 오래된 집의 담벼락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찾고, 가지런히 놓인 화분들의 흙과 돌을 지긋하게 쳐다보는 것. 그리고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나의 여행 목적이다. 그렇게 지내다 돌아오면, 나의 삶도 누군가의 창밖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든다.


2. 이번 생의 행복과 슬픔은 이번 생으로 끝난다는 것.


그때 그 여행에서 만난 스라바스티의 대인스님은 “인도인들 마음에는 전쟁(다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으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라 했다. 이번 생의 행복과 슬픔은 이번 생으로 끝난다는 것. 그래서 더 나은 삶, 더 크고 좋은 집에 대한 욕망으로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오늘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고 지속해 나갈 뿐이라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려운 일을 어려운 대로 지켜보면서 나는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던 기형도의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렸다. (199쪽)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인도였다. 대학교 때 같은 동아리였던 후배가 인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자신의 인생 여행지라며, 한참을 이야기했었다. 인도의 물가와 인도의 자연과 인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궁금함이 들긴 했지만, 나는 그래도 인도라는 곳에 여행을 가고 싶진 않았다.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인도에 대한 불신과 불안감은 내 여행지 목록에서 인도를 늘 지워버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도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매일같이 강가에 나와 몸을 씻고,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죽으면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이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에 바탕이 된다는 말이 아주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윤회사상이 새로이 태어남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젠가 친한 선생님께서 윤회사상은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정말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도 인도인들은 이번 생의 기쁨과 슬픔이 더 크고 나은 다음 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삶, 그 자체로 끝나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때론 욕심 없는 어떤 삶이 지금 내 모습에 대한 합리화는 아닌지, 경쟁사회에서 먼 미래를 향한 확신 없이 지금 삶에 머무르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오늘을 절제하여 미래를 저축하는 것이 긴 생에 대한 예의는 아닌지, 끊임없이 갈등하게 된다. 답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엔 인도 어느 곳 작가님과 함께 머무는 기분이다.


3. 정리


빈손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줍는 사람입니까. (293쪽)

이제 나는 모험을 다시 정의한다. 모험이란 내 안의 얼어붙은 땅, 즉 경계심, 오만, 편견, 권태, 허무, 공포, 불안 같은 감정들을 잘 다스려 일상을 지킬 작은 불빛을 켜는 일이다. (317쪽)


나는 무엇을 줍는 사람일까?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발견하는 사람일까? 또 일상을 통해 무엇을 느끼는 사람일까? 나에 대하여 알아가는 것은 여전히 참 어렵다. 단단한 일상을 버리고 모험의 세계로 나가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님의 모험에 대한 정의처럼 감정을 잘 다스려 일상을 지킬 작은 불빛을 켜는 것, 나도 그렇게 조용히, 그리고 나만의 방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싶다. 이번 책은 이런 용기를 준 책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에게 여행은 무엇인지 정의 내려 봅시다.

2) 두려워 가 보지 못한 여행지기 았다면 어디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bookclub_munhak

@nandais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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