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류진 에세이, 밀리의 서재, 판란드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 연수'까지 장류진 작가님의 책은 늘 한 번에 끝까지 읽게 된다.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와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의 문체, 그리고 인물의 생각까지 때로는 나였고, 때로는 내 주변의 인물이었던 누군가를 발견하게 되는 소설. 그래서 이번 책도 얼른 읽고 싶었다. 민감하지 않아 책이 발간된다는 소식을 먼저 찾아보고 알지는 못하지만, 도서관에서, 인터넷 서점에서 이렇게 책을 발견하면,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설렘이 찾아오곤 한다. 그렇게 읽게 된 책. 사실 에세이라 더 많이 기대를 했다. 소설과는 다른 마음으로 일상을 엿보는 기분이 들 것 같아 괜스레 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책을 다 읽고는 우습게도 작가님이 자주 사용한다는 에코백을 검색해 봤고, 핀란드에 여행을 가고 싶어서, 어떻게 갈 수 있나 여행사를 들락날락했다. 작가님의 말처럼 처음엔 여행기인 줄 알았으나, 읽을수록 작가님의 마음 한 구석을 엿본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참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었다.
1. 아, 가고 싶다. 핀란드.
얼마나 '소유'한 상태로 태어났는지에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나온 순간, 누구나 '기본'적인 것들은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이 '박스'들 역시 누구나 자연을 마땅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만인의 권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것 같다고 이 숲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어렴풋이 생각했다. 뒤이어 이 숲을 나도 반년이나마 누릴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공연한 행복을 느끼곤 했다. 그건 마치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같은 행복이었다. 살갗에 닿아 금방 녹아내릴 테지만 내려오는 동안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잡고 싶어지는 그런 눈송이(107쪽)
책을 읽으면서 내내 핀란드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핀란드가 가고 싶었는데, 일상에 치여 잊고 살다가 책을 읽으면서 다시 그 가고 싶은 마음이 되살아났다. 더위를 워낙 싫어하기도 했으며, 그냥 추운 나라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핀란드에 가고 싶었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나중에 크면 어디에 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추운 나라, 눈이 많이 내리는 나라,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나라 '핀라드'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는 까마득하게 잊었다. 정말 가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저냥 일상에 치여 잊고 살 만큼의 나라였었나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리고는 이내, 곧, 가지 않을까 그런 마음마저 들었다.
핀란드는 교육과 복지의 측면에서 다른 국가와 비교되는 우수한 행정력을 가진 나라로 알고 있다. 아이들이 작성하는 보고서에 핀란드의 복지정책을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작성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책으로도 읽은 적이 있다. 핀란드의 교육정책에 대한.
이번 책은 대학생 때 교환학생으로 함께 핀란드에 갔던 친구와 함께 다시 핀란드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참 좋았던 기억을 안고 다시 찾은 핀란드에서 좋아했던 이유를 다시 발견하고 좋아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경험이 책 속에 담겨있다. 인용한 부분은 핀란드 유학생에게 주어지는 '서바이벌키트'와 예비부모에게 지급되는 '베이비박스'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적은 부분이다. 누구나 마땅히 자연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만인의 권리'처럼 삶에도 그런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 그걸 실천하고 있는 핀란드의 정책과 복지가 궁금해졌다.
작가님이 교환학생으로 쿠오피오 대학교에 갔을 때, '서바이벌 키트'를 받았다. 각종 조리도구와 이불커버, 배게 커버 같은 침구류, 그리고 자전거. 그래서 학교를 오갈 때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숙소에서 기본 조리도구들로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작은 배려들, 그런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나라에 교환학생으로 오는 외국인들에게는 어떤 정책이 있을까, 찾아보고 싶어졌다.
물론,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은 이런 복지와 행정정책에 대한 궁금함 때문은 아니다. 누구나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마음이 더 크다. 호수가 참 많은 나라라는 것, 여름에도 기온이 높지 않다는 것,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사우나 시설을 이용해 보고 싶은 마음이 핀란드에 가 보고 싶게 만들었다. 열심히 여행 자금을 모아야겠다.
2. '조금씩 나가는 상상' 방법론
상담사가 내게 그간 자라오면서 대인 관계나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었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다행히도 그런 면으로는 드러날 만한 문제까지는 없었고, 오히려 겉보기에 교우 관계가 좋은 편이었지만, 학창 시절에 늘 까다로운 사람의 마음에 들고 싶어 했으며, 친구든 선생님이든 누군가가 너무 좋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싫어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품었고, 그 때문에 늘 힘들어했다고 고백했다. 또한 항상-먼저 다가갔다가 막상 다가오면 다시 멀어지려고 하고 그래서 멀어지면 또 언짢아하는-고약한 연애 감정에 휩싸여 있었고 그 때문에 십 대 시절 내내 그리고 이십 대 초반까지 감정 소모가 스트레스가 무척 심했다고도 고백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러한 연애 감정 또한 나와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전형적인 패턴 그 자체였다. (276쪽)
그렇게 여러 버전의 나를 만들어내다 보면 점점 더 나로부터는 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멀어지고 멀어져, 종내엔 생김새도 성격도 사상도 가치관도 나와는 전부 다르지만 내가 생각해 냈기 때문에 내가 잘 알고 있다고 굳게 믿게 되는 한 인물이 보이게 된다.(280쪽)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면, 정말 너무 현실적인 인물과 내용에 혼동이 되곤 했다. 소설은 분명 창작된 인물의 이야기인데, 마치 바로 옆에서 보는 인물의 이야기인 것 같아서. 그래서 소설이 특별했고 재미있었다. 현실적이어서.
이번 책의 말미로 갈수록 여행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작가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에세이가 가진 특별함이라 생각한다. 진실함을 엿볼 수 있는 영역이라서. 이 부분을 읽고 자신의 상황과 행동영역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이 상담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것, 그것이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떤 패턴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상담을 받아 본 적은 없지만, 소설을 통해 여러 인물의 삶을 만났고, 그러면서 내 삶의 모습을 이해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내겐 책 읽기가 나를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며,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는 경험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또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다. 작가님의 인물 창작의 방법. '조금씩 나가는 상상' 방법론. 또 다른 유니버스의 나를 만들어 내는 것. 조금씩 다른 버전의 상상을 통해 인물을 만들어가는 것. 아, 장류진 작가님 소설의 인물은 이렇게 탄생하는구나를 알 수 있게 된 부분이다. 그래서 소설 속 인물은 때론 '나'이지만 항상 '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한땐 자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합니다. 나는 무엇을 싫어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도전 정신이 생깁니다. 나는 어떨 때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이런 상황에 화가 납니다. 등 등.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상황과 일이 더 많다는 것을 배운다. 현실 속 자아와 소설 속 자아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문제이겠지만, 또 다른 유니버스의 나를 상상하는 것, 그건 참 지난한 세상에 조그만 위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다. 또 다른 유니버스의 나를 만나는 방법이다.
3. 정리
그때 그 돗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 그 시절의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고 좋은 시절, 내 인생의 황금기가 끝나가고 있다고. 앞으로는, 이토록 소소하지만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기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그때의 내게 말하고 싶어졌다.
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 아니야. 훨씬 더 좋은 날이 많이 펼쳐질 거야. 15년 뒤에는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장면들을 품은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169쪽)
'우리가 반짝이는 계절' 책 제목도 참 좋다. 특히 에세이 속 작가님과 작가님의 십오 년 지기 친구 두 분 모두 반짝이는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참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는 일상이 있었지, 생각했다가도 지금도 여전히 반짝이는 시간임을 인지하게 되는 책이다. 15년 전, 전혀 작가가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던 작가님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장면을 품은 사람이 되었듯이, 어떤 삶의 반짝임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핀란드를 방문하게 된다면, 언제든 들어와 앉아서 침묵과 적막을 배부르게 향유할 수 있다는 '침묵 교회'와 돌들 사이로 황동색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암석 교회'를 꼭 방문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친구가 있습니까? 어떻게 알게 된 친구이며, 지금 어떤 사이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반짝이는 시간을 맞이하였는지, 앞으로의 삶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반짝임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