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금희 산문집_한겨레엔. # 남극
낯설고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김금희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예전에 식물에 대한 산문집(식물적 낙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엔 남극이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서일까, 예전부터 추운 나라에 대한 동경과 그 추위를 직접 겪어보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런데, 남극이라니, 남극에 대한 이야기라니, 과학자가 아닌 소설가의 시선으로 보는 남극에 대한 이야기.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읽고 싶었으며,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 조금의 고민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1. 남극.
눈으로는 망원경을 바라보지만 머리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뭔가가 석연찮은지를. 그런 끝에 인정해야 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고 실수하고 잘못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뼈아픈 사실’이었다. 동시에 내가 여태까지 해온 패턴대로 남극 생활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경각심도 들었다. 남극은 원래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고, 기지는 초대받지 않은 방문객들이 모인 일종의 ‘피난처’였다. 겨우 이를 경험했고 심지어 여름인데도 당연히 추웠고 바람이 강했고 길은 매끈하지 않았다. 외출을 위해서는 늘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내가 어디에서 뭘 하는지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했고 내 생활은 모두와 결속되어 있었다. 익명 속에 시간을 보내며 종일 하는 말이란 “아이스 라테 한 잔 주세요”뿐인 도시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나는 그날 다이어리에 “공동생활”이라고 적고 “사람들은 지금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썼다. 그러니까 나를 알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오해가 쌓이지 않게 그때그때 적극적으로 내 마음을 설명해야 한다고.(76쪽)
작가님이 남극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극지연구소에 대한 취재 이후 남극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여러 경로로 남극에 갈 방법을 시도했지만, 여러 경로로 거절당했었다. 그러다 드디어 허락된 취재. 그리고 작가님은 남극에 가기 위해 연수와 교육을 받는다. 수영장에서 헬프동작과 버디 라인 만들기를 할 때, 작가님은 자신의 겨드랑이로 뒷사람의 발을, 누구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붙잡았다.
그렇게 간 남극에서 작가님은 ‘공동생활’, ‘자신을 알리기 위한 애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남극은 누구의 나라도 아니며, 국경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인간이 원래 존재할 수 없는 곳이며,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곳에서의 공동생활은 규칙이었으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하여 오해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공동생활을 위한 과정이었다. 작가님은 그 시간을 통해 펭귄과 고래와, 바다 생물들과, 남극의 새들과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늘, 주인공처럼, 이 땅의 주인처럼 그렇게 사는 삶을 강조했던 우리의 교육은 점점 변해가고 있다. 생태적 감수성과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마음이 커져 가고 있으며, 자연과 우리가 공존하는 삶에 대하여 이제는 가르치고 있다. 각각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는 삶.
작가님의 말씀처럼 남극은 어쩌면 인간과 세계의 회복에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2. 과학자들
마침 카밀라 언니가 실험실에 들어왔다. 언니는 가장 늦게까지 연구실을 지키고 가장 일찍 일어나 실험 구역으로 떠나는 과학자였다. 내 힘으로도 가뿐히 들 것처럼 여린 체구이지만 언제나 눈빛이 반짝였고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을 잘 챙겼고 다감했으며 얼굴이 말갰다.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언니의 전공 분야인 대기, 그러니까 공기를 닮았다. (114쪽)
나는 은근히 서운해졌고 채집에 몰두하는 데 방해되기는 싫어서 혼자 돌을 뒤집으며 채집통을 채워나갔다. 벡터는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바다와 하늘빛이 이룬 푸른 비단 속 남극의 여름을 기록했다. 비록 포부만큼 옆새우에 대해 알지 못하더라도 따라올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오후였다. 막상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 장화를 신어 그런지 전혀 시리지 않았다. 나는 포말을 몰고 다가오는 파도를 아주 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가장 깊고 광활한 바다에서 오는 물결을. 안과 나, 벡터, 펭귄과 물법 이 모든 것이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야말로 남극해에 걸맞은 완벽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7쪽)
책에는 남극의 광활한 자연과 얼음이 빙하를 타고 내려와 바다 위로 퍼지며 평평하게 얼어붙은 빙붕과 시린 바닷물과 무리 지어 살아가는 펭귄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남극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과학자들의 일상도 담겨 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 시간 단위로 남극의 대기를 관찰하는 과학자. 그리고 남극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관찰하는 과학자, 남극에서만 서식하는 생물들을 연구하는 과학자.
대학생 시절 야간학교 교사를 함께했던 물리교육과 친구가 있었다. 워낙 잘생겨, 물리라는 과목이 주는 무게감마저 매력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던 친구. 그 친구와 함께 사랑도 섬에 가는 길. 그 친구는 끊임없이 과학적 현상을 이야기했다. 하늘의 구름, 빛, 반사, 바닷 물결, 길가에 피어 있는 식물들의 생장. 워낙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진심이었던 친구여서 사실 조금은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때는 ‘정말 재미있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그 친구의 과학에 대한 진심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과학적 현상에 흥미를 느끼고 사실을 이해하고 관찰하고 조사하여 결과를 알아내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과학자들의 노고에 새삼 경의를 표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극의 빙하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들이 있다고 한다. 또한 기후의 변화도 남극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남극에서 지금도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 책임감을 가지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어 우리의 일상이 일상답게 유지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가장 깊고 광활한 바다에서 오는 물결, 그리고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간이 남극해에 걸맞은 완벽한 여름이라는 작가님의 사유처럼 남극에서의 그들의 시간이 있어 우리의 시간이 있음을 나는 지금, 온전히 느끼고 있다.
3. 정리.
펭귄과 나, 그리고 흰 풀마갈매기 사이로 바람이 휘몰아쳤고 나는 그런 ‘우리의 거리’가 평화롭게 느껴졌다. 몇몇 펭귄들은 미동도 않고 바람을 등지고 있었다. 마치 낮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사람들이 펭귄을 좋아하는 건 용감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으르렁거리며 완력을 과시하는 용감함이 아니라 느리고 작은 존재가 신비롭게 보여주는 태연함. 극한의 날씨를 버티며 유빙의 바라들 수영하는 펭귄들의 모습에서 인간이 느끼는 감동과 경이.(63쪽)
“고래네요!”
파이어맨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기 전 나는 고래의 숨소리부터 들었다. 마치 지구의 한 꺼풀이 벗겨지는 듯한 아주 커다랗고 거친 숨소리였다. 바다에서 솟아올라 호흡을 내놓고 다시 물속으로 잠기며 헤엄치고 있었다. 그런 고래의 검고 반질반질한 등과 꼬리와 지느러미를 보고도 나는 믿기지 않았다. 흰 유빙들 사이로 뛰어오르는 고래의 움직임은 ‘살아 있음’ 그 자체였다. (250쪽)
이번 책은 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 책이다. 휘몰아치는 바람들 사이에 미동도 없이 등을 내 보이고 앉아있는 펭귄을 아주 오래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고, 흰 유빙들 사이를 뛰어오르는 큰 고래의 반질반질한 등과 흘러내리는 물을 상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환경 보호’에 대한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종의 생물들과 식물들, 그리고 우리. 어떻게 더 오래, 더 자신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발전하는 세상 가운데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연일 더운 폭염의 날씨 가운데, 이 기후의 변화가 어쩌면 우리의 책임이며, 미래를 위한 우리의 과제임을 생각하면서 나는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 남극에서 보낸 그들의 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남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이며,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환경보호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