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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40. 안녕이라 그랬어.

# 김애란 소설집_문학동네_신형철 평론가

by 벼리바라기
안녕이라 그랬어_사진.PNG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 소설집이다. 예전에 ‘음악 소설집’에서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의 단편이 참 좋아 이번 소설집이 나왔단 소식에 바로 찾아 읽게 된 책이다. 여전히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주 오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다.

이번 책의 해설은 신형철 평론가님이 적어주셨다. ‘네 이웃을 네 돈과 같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마지막에 실려 있다. 평론가님은 ‘그럴 필요 없는데, 아니 그래선 안 되는데, 언제나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라고 이 책의 인물들에 대하여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어떤 불편한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는데, 평론가님의 글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결국은 ‘돈’이라는 문제 앞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삶을 추구하며, 나 스스로의 속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책이었다.


1. 홈 파티


그러곤 화장실 거울 앞에서 혼자 그들의 말투와 동작을 따라 하다 관둔 뒤 싱겁게 웃었다. 세상에 주류다운 몸짓과 표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제 모습이 민망해서였다. 다만 이연은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꼈다. 상대에게 직접 가하는 힘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향한 통제력이라 할까, 오랜 시간 ‘판단’와 ‘선택’이 몸에 밴 이들이 뿜어내는 단단하고 날렵한 기운이었다. 얼핏 사람 좋아 보이는 박도 마찬가지였다.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23쪽)

이연이 오대표에게 사과한 뒤 허둥지둥 도자기 파편을 정리하려 하자, 오대표가 이연을 저지하며 ‘이러면 다친다’고, ‘자리가 곧 파할 테니 그때 제가 천천히 치워도 된다’고 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고 오히려 이연을 진정시키고 위로했다. 이연은 넋 나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오대표의 옆얼굴을 살피다 문득 몸이 굳었다.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41쪽)


가장 불편했던, 마음에 오래 남아 생각하게 만들었던 단편은 ‘홈 파티’이다. 사회는 점점 변해가고 평등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라는 것이 가지는 힘의 범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으며, 또 하나의 계급과 계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올바른 가치와 태도가 아님은 모두 알고 있지만, 아는 것만으로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단편 ‘홈 파티’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의 내밀하고 폐쇄적인 식사 모임에 초대받은 배우 ‘이연’의 이야기이다. 지인 성민의 초대로 이연은 오대표의 집에 성민과 함께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붙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말투와 동작을 자신도 모르게 따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이연은 민망해하면서도 그들을 관찰한다. 이연은 그들에게서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고, 스스로 그들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만족감을 느낀다. 모임이 끝나갈 무렵, 이연은 오대표가 아낀다는 찻잔을 실수로 깨고 미안함에 오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때 오대표의 얼굴에 스친 묘한 만족감이나 승리감의 표정을 이연은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그들이 바라는, 그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이연은 인사를 남긴다.

소설을 읽고 ‘그들만의 세상’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부유함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이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습들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고,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그들만의 세상이, 그들만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연이 그들을 보며, 편견 없는 자신의 태도에 우월감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들 또한 이연의 실수를 아주 아무렇지 않은 일로 받아들이면서 경제적 부유함이 주는 여유를 느끼는 것, 그 모두가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타인의 불행 앞에 좀 더 위안을 받는 사람들, 자신이 타인보다 낫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좀 더 여유롭고 당당해질 수 있는 그런 태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 하지만, 신형철 평론가님의 말씀처럼 그럴 필요가 없는 일들이라는 것,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2. 이물감


물론 나이 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빵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175쪽)


이번 소설집은 읽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부끄러움, 이런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소설 속 인물에게서 나의 못난 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단편 ‘이물감’의 기태는 희주와 이혼하고 지수와 만나는 사이이지만, 끊임없이 희주의 SNS를 살펴보며 희주가 만나는 사람, 희주의 새로운 학원 등을 관찰한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꼰대가 되어버린 사람이며, 어느새 자기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이물감에 의해 헛구역질이나 트림을 하는 사람이다. 기태는 질투심에 희주가 만난다는 요리사를 찾아가 그의 음식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서 희열을 느끼다 이내 스스로 불쾌해지고 만다.


기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나이 들어 좋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던 것은 이미 내 곁엔 좋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과의 관계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무례함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게 대했던 적이 많았다. 나 스스로 내 생활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늙음은 내가 아는 것과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소설 속 기태가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던 이물감과 냄새들처럼. 나도 나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신체의 불편함이 하나, 둘 생기고 그게 부끄러워 자꾸 움츠려드는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여전히 어린 마음이다. 소설 속 기태가 전 아내 희주의 새로운 인연인 차대표를 질투하여 차대표의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과 자신에게 마음을 다하는 지수를 자신이 편할 때만 찾는 모습을 보며, 나는 부끄러워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직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음을 느낀다. 예전엔 나이가 들면 관대해질 줄 알았다. 모든 일들 앞에.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속은 더 좁아져, 작은 일에도 삐지기 일쑤도, 나를 봐주지 않는 그 앞에서 투정을 부릴 때가 많다. 나는 그를 봐주지 않을 때가 더 많은데도 내가 필요한 순간에 그가 없음이 그렇게 화가 난다. 여전히 나는 참 어리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라는 기태의 고백처럼, 나 또한 늙어감이 겁이 난다.


3. 정리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은 쉬이 읽히는데, 아주 오래 생각하게 된다. 이번 소설집도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유난히 감정의 동요가 많이 일어났다. 소설은 담담한데, 왜 이리 내 마음은 요동치는 걸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여전히 결론은 소설 속 인물에게서, 또는 배경에서, 나를, 우리 사회를 만나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이 주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도 모르게 우월감을 느끼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런 우월감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늙음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내가 아는 늙음은 무엇이며, 내가 알지 못했던 늙음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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