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현 지음_한겨레 출판_아파도 힘껏 살아가는 너에게.
도서관에서 한참을 거닐다 발견한 책이다. 늘 지속적으로 낮은 우울감을 안고 살아간다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책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조울증'에 대한 궁금함이 생겼다. '양극성장애'에 대한 이야기이겠구나, 작가님은 그 시기를 거쳤구나, 나을 수 있는 병이긴 한 건가, 그런 궁금함을 안고 읽어나갔다. 평범한 사람의 조울의 과정을 과감 없이 잘 서술하고 있어 작가님을 모르는데도 작가님이 겪었던 시간을 눈으로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늘 느꼈던 낮은 우울감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의 변화 정도이겠구나, 그렇게 느껴졌다. 동시에 주변의 누군가가 작가님과 같은 변화를 보인다면, 그분이 나의 소중한 지인이라면, 나는 그분에게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1. 조증을 겪을 때 필요한 것들.
나는 질주하고 있었다. 비록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정신적 핵은 유지하고 있더라도 그 속도가 엄청나 스스로 다른 사람처럼 느낄 정도였다. 생각이, 감정이, 에너지가 쉼 없이 넘쳐흘렀다. 그 이전엔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었건만 그 시기엔 잠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잠잘 시간이 없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멈추지 않았다. 생각은 마치 공중에 별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번쩍 나타났다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떠나갔다. 생각이 명멸을 반복하며 잠들지 못하게 했다. 어떤 생각은 채도 높은 선명한 이미지로 다가와 뿌리칠 수 없었다. (24쪽)
작가님이 병원에 입원하기 전 조증의 상황을 표현한 부분이다. 작가님은 조증과 울증을 반복하는 양극성 장애이며, 이는 단순하게 마음만 잘 먹으면, 의지를 가지면 해결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지금은 조울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고, 그것이 질병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예전엔 정말 '마음'과 '의지'로 그 병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을 의지가 약하다고 비난했던 경우가 있었으며,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마음의 병을 의지가 약해 극복하지 못한다고 숨겼던 것 같다. 조울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신의 상황을 조금은 너그러이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픈 것이라고, 자신의 지금 상황은 아픈 것이라고 인정하기만 해도, 스스로를 비난하는 일을 멈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증의 증상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기분이 좋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통해 조증의 증상을 알게 되었다. 단순하게 기분이 좋은 정도를 넘어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잠을 자지 못하게 되는 상황, 공중에 흩뿌려놓은 생각의 명멸을 따라가는 감정과 행동이라는 것이란 문장에 조증의 증상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조증은 아니었겠지만 젊은 시절, 일이 좋아서 그 시간을 조절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학교 출근하는 것이 좋아 늘 새벽 녁 집에서 나왔고, 학교에 도착해서도 수업 준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무에 시간을 쪼개 생활했다. 담임이던 시절에는 퇴근길에 걸려 온 학부모님의 전화를 끊지 못해 차 안에서 1시간을 통화한 적도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학생의 병문안을 가고, 과호흡이 온 학생을 보건 선생님과 함께 병원에 데려간 적도 있으며, 그로 인해 처리하지 못한 업무를 남아서 하느라 별을 보며 퇴근했던 때. 아침에 달을 보면서 출근하고 저녁에 달을 보면서 퇴근했던 그 시절과 지금은 비교해 본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시절엔 주말이면 딸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말했을 때 그냥 울어버리곤 했다. 나는 밥을 차리는 것보다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 더 급했고, 더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것을 정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때는 가능하지 않던 것이 지금 가능한 것은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시선을 조금 가지게 되었고, 익숙한 업무로 인한 여유와 1년 업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주말에 수업 준비를 하고 책을 읽는 시간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나는 업무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높은 세상을 꿈꾸지 않고 지금에 안주하는 삶이 나는 좋다.
만약 지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누군가가 상담을 요청한다면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사에게 정확한 상태를 알리고 힘겨운 업무에서 벗어나라고 할까? 아니면 나처럼 먼저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잘릴 때까지' 그 자리에 있으라고 할까?
아직도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 조증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술을 마시지 말아라. 사람과의 접촉면을 줄여라. 잘 안 되겠지만 혼자서 빈둥대라. 울증 환자에겐 이런 조언을 할 거다. 의사를 찾아가라. 아깝더라도 업무량을 줄여라. 산책하라. 스스로 먹을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라. 조증이든 울증이든 핵심은 이거다. 괴로우면 의사를 찾아가라. (150쪽)
작가님의 조언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작가님 또한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으시지만, 조증이 왔을 때 조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해야 할 일들과 울증이 왔을 때 울증을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잘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핵심적인 일, 의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내게 조울의 시간이 닥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내가 병원에 다닌다는 것이 혹시 다른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 될 것 같다. 하지만 병원을 선택하는 것, 의사를 찾아가 지금의 상황을 말한다는 것,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살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일이란 것을 잘 알겠다. 아프면 당연히 병원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예전의 치료 방법과 지금의 치료 방법이 약물 위주의 치료로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상담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정신질병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바뀔 수 있었던 이유는 매체의 역할이 크다는 생각도 했다.
2. 정리
웃음과 행복의 총액은 알 수 없는 적금 같다. 자꾸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고, 자주 행복을 느끼면 행복해진다. 입금을 많이 하면 출금 액수도 많아진다. 심란할 때 예전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 일기, 메모를 보면 과거의 내가 튀어나와 손 흔들며 격려하는 기분이 든다. 역시 살 만한 인생이야, 앞으로도 또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지.
뭐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고 듣지 않더라도, 행복의 경험은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곤궁에 빠졌을 때 살며시 흘러나와 어둠을 밝혀준다. 내가 조울병으로 파탄에 이르지 않고 그럭저럭 버텨온 데는 행복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 한몫했다. 마음의 근육에 스며든 행복의 물질이 힘든 때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할까.(224쪽)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 있다. 행복의 경험을 자주 하는 것. 이 책의 작가님도 자주 행복을 느끼는 것이 마음의 근육에 스며들고 힘든 시기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말씀하고 있다. 나는 행복의 허들이 참 낮은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행복해지고 쉽게 슬퍼지지만 그 유효기간과 짧아 쉽게 회복되는 편이다. 기쁨에서 평범한 일상으로 쉽게 돌아오고, 슬픔에서 걸어 나오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은 필요하다.
책을 통해 나는 지금 무슨 행복의 경험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지금은, 같이 일하는 참 좋은 동료들과의 시간. 급식 시간에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수다를 떨고, 한 달에 두어 번 저녁에 맛있는 것을 먹으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 참 좋은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행복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조금은 심심한, 일상의 하루가 나는 참 행복하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감정의 기복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까?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행복의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 어떤 일로 인해 행복함을 느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