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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48. 시와 물질

# 나희덕 시집_문학동네

by 벼리바라기
시와 물질_사진.PNG


여름에 창비 출판사에서 기획한 나희덕 작가님의 강연을 줌으로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들으면서 작가님의 최근의 시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시 가운데,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와 '푸른 밤'은 참 좋아하는 시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타인을 향한 잘못된 비난을 멈추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적도 있었고, 무작정 달려 나가는 들뜬 사랑의 마음을 잠재웠던 적도 있었다. 작가님의 시와 수필을 읽고 가르치며 나 스스로가 배움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 적이 많았다. 작가님의 작품들은 내게 교과서에 실린 시여서 교훈적으로 다가올 때가 많았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시간을 지향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부끄럽게 시집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늘 교과서에 실린, 문제집에 실린 한 편의 시들만을 읽어왔다.

그래서 이번 시집 '시와 물질'은 참 읽고 싶었던 책이다.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작가님이 걸어왔던 시인으로서의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였으며, 시의 변화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시집은 주석으로 달린 다른 책들, 그림들, 작가들을 찾아보며 읽었다. 시집의 제목인 '시와 물질'의 경우도 '슈테판 클라인의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라는 책의 구절이 인용되어 있었다. 그래서 '시와 물질, / 또는 시라는 물질에 대해 생각한다'라는 시구에 대하여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 번도 시를 물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낯설고 어려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식 모두를 내 경험의 잣대로만 보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천천히 일렁이었다.


1. 깨진 창문들


깨진 창문들을 지나왔다.

꺼진 눈동자

날카롭게 금이 간 얼굴

창문 너머의 어둠을 알려주는,

찢긴 벽지와 부서진 가구와 무너 저 내린 천장을

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은 눈동자

하나의 창문이 깨지면

다른 창문들도 깨지고 말 것이라는 이론을 증명하듯

재개발구역에는 빈집이 하루하루 늘어간다.

창문들은 깨짐으로써

고립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깨진 창문들 덕분에 철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중략)

누군가 던진 돌 때문에

그곳은 더 위험해졌고 고요해졌고

마침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구역이 되었다.

이제 내부와 외부의 구별이 사라진 집은

텅 빈 눈동자로 행인을 바라본다.

지하철역에 가려면 깨진 창문들을 지나야 한다. (58~59쪽)



재개발 구역에 살았던 적이 있다. 유난히 하늘이 가까운 동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달동네라고 부르나 보다. 우리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재개발이 결정되어 산 아래 동네의 집들은 부서지기 시작했고, 마을 주택들마다 크게 빨간 엑스 표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꼭 그런 집들은 마주 보는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바람조차 머물지 못하고 통과하여 지나가도록. 벽은 허물어졌고, 그곳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으며, 누군가가 머물다 간 흔적인지 불에 그을린 벽들이 많아졌다. 흉흉한 소문들도 이내 돌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는 재개발에 포함되지 않는 아파트였기에, 주변의 무너지는 집들을 온전히 바라보며 함께 그 흉흉한 시간을 살았다.


시의 화자가 지하철역을 가기 위해 마주하는 집의 꺼진 눈동자와 날카롭게 금이 간 얼굴. 누군가가 던진 돌은 집이 집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진 무질서는 공포를 조장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게 만들었고, 전시된 위험으로 인해 마침내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구역이 되었다. 그렇게 용의주도한 설계로 인해 내쫓긴 사람들이 있겠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시였다. 텅 빈 눈동자로 행인을 바라보는 집의 시선이 그려지는 시였다.

시를 읽으면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떠올렸다. 재개발이 되면서 누군가는 다시 그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고, 누군가는 쫓겨 나가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재개발의 시간은 아주 더디 흘러 참 오랜 시간을 방치된 채 흉물스럽게 그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그곳은 완전히 새로운 곳이 되어, 내가 살았던 아파트만이 다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가진 채 거기에 머물러 있다. 건물의 시간과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이 이리 다르구나,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도 '용의주도하게 만들어진 무질서'로 공포를 조성하는 사회의 이기적인 면에 대하여도 오래 생각하게 만들어 준 시이다.


2. 지렁이를 향해


소나기 지나고

햇빛 쏟아지는 오후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 한 마리

길고 검붉은 몸

어느 쪽이 머리이고 꼬리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물기를 잃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가는 몸을 꿈틀거리는 것이

지렁이만은 아닌 듯도 해서

지렁이를 가까운 숲 그늘로 옮겨 주었다

(중략)

지렁이를 향해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사람

지렁이에게 빛과 어둠을 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마침내 땅속까지 따라간 사람

내가 숲 그늘을 쉽게 떠 너지 못한 것은

지렁이를 향해 다가가던 사람의 마음 때문인지 모른다. (18~19쪽)


나희덕 시인님 강연 때 '생태감수성'이란 용어를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교육과정에서 심심찮게 들리던 용어였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자연친화적,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등 문학 수업을 하면서 다루던 어떤 개념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연 관련 문제이겠거니 그런 마음은 들었어도 정확하게 서술하기는 모호한 그런 단어였다. 하지만 이 시를 읽고 제일 먼저 떠 오른 단어가 '생태감수성'이었다.


늘 인간 중심의 삶과 사고에 익숙한 우리들 시선의 저변에는 동식물을 바라볼 때 인간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에 대한 구분이 있으며, 인간보다 못한 어떤 존재라는 생각과 동물이나 식물이 인간을 위한 유용한 소재 정도라고 생각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하지만 생태감수성은 그런 인간 중심의 시선을 돌려 자연을 바라보게 한다. 시의 화자는 여름날 아스팔트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는 지렁이의 고통을 인지한다. 그런 지렁이를 가까운 숲 그늘로 옮겨주고 화자는 찰스 다윈을 떠올린다. 지렁이를 관찰하던 찰스 다윈은 지렁이의 생태적 습성만이 아닌 지렁이의 지성을 읽어낸다. 화자는 찰스 다윈의 그 행동이 지렁이를 향해 걸음을 멈출 수 없었던 사람의 행동이라고 여긴다.


비가 내린 다음의 교정을 걷다 보면, 학교숲 여기저기 비를 맞으러 나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채 한낮의 햇빛에 말라가는 지렁이를 만날 때가 많다. 걷다가 만난 발밑의 작은 생명체에 아이들은 무서워 소리를 지르고, 나도 징그러워 소리를 지르고 만다. 그러면 어떤 선생님께서 지렁이가 얼마나 이로운 벌레인데 무서워하냐며, 막대기로 지렁이를 옆 화단으로 옮겨 준다. 시를 읽으면서 그때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일상 속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모습이기에.

지렁이를 향해 다가가던 사람은 지렁이를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을 것이다. 그러니 눈도 귀도 없지만 피부로 빛을 감지하고 진동하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잎사귀와 진흙과 돌을 즐겨 먹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지렁이의 생태가 식물이 싹을 틔울 수 있게 만들었으며 인간의 유물이 보존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결국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지렁이를 향해 다가가던 마음, 생태감수성이 필요함을 이 시를 읽고 깨달았다.


3. 정리


시인의 말 중 '사람은 걷고 말하고 생각하는 무기질인 동시에 멈추고 듣고 느끼는 유기체'라는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생명 아닌 것들을, 존재를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있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난 다음 읽게 된 시라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온 점도 있었다. '누군가의 이빨 앞에서'라는 시는 나 또한 누군가의 먹이가 될 수 있는 '고기'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생명 가진 어떤 존재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곳이 이 지구이다. 또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시는 애나로웬하웁트 칭의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고, '존엄한 퇴거'는 조용히 울면서 읽어나갔다. '광장의 재발견'을 통해 광장의 역할에 대하여도 고민할 수 있었다. 시가 여전히 참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시집 '시와 물질'을 읽고 가장 마음에 오래 남았던 시가 있다며 무엇이며 왜 그런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생태감수성'이란 무언인지, 스스로의 삶 속에서 생태감수성을 발견했던 순간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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