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_문학동네
예전에 이 책을 읽을 적이 있다. 그때는 이렇게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좋은 작가님의 책이니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앞서서인지, 읽는 내내 어렵고 힘들었다.
이번엔 독서모임의 책으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다시 책을 손에 들었을 때는 예전과는 달랐다. 슬픔과 우울의 강도가 다르게 다가왔고, 폭력적 시대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수 있었으며, 제목의 의미에 대하여 곱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작가님의 책도 떠올랐다. 예전 책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는 '새'의 이미지, '흰 눈'의 이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제주의 4.3 항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이 되었다.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여겼던 어떤 순간들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책의 묘사가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과 사건에 참 무심한 내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로 미안한 일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1. 그 모든 안간힘
처음 그 꿈을 꾸었던 밤과 그 여름 새벽 사이의 사 년 동안 나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했다. 어떤 것들은 나의 의지로 택했지만, 어떤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며 모든 걸 걸고라도 멈추고 싶은 것이었다. 오래된 여러 신앙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기록하는 거대한 거울과 같은 것이 천상이나 명부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거기 담긴 나의 지난 사 년은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무엇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어 하는 몸, 움푹 찔리고 베이는 몸, 뿌리치고 껴안고 매달리는 몸, 무릎 꿇는 몸, 애원하는 몸, 피인지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끝없이 새어 나오는 몸. (13쪽)
책의 시작은 경하의 고통으로부터 시작한다. 소설 속 인물 '경하'는 소설가이면서 학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난 후 악몽에 시달리고 공포를 경험하며 껍데기에서 몸을 꺼내 칼날 위를 전진하는 달팽이 같은 시간을 보낸다. 소설은 이미 허구의 세상이지만, 소설을 쓰면서 느끼는 작가님의 고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부분이다.
경하는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을 겪고 난 다음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살고 싶고, 온갖 견딜 수 없는 상처에 다시 죽고 싶으며, 살려 달라 매달리고 애원하면서도 또 죽고 싶은 삶을 살아간다. 경하의 고통이 무엇으로 시작되었고, 어떤 사적인 작별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그 고통스러움과 우울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모든 안간힘이 지나간 후 경하는 다시 일상을 회복하려 노력한다. 죽 한 그릇을 사 먹고, 생활을 다시 영위하는 경하는 인선에게 부탁을 받고 새에게 물을 주기 위해 제주로 떠난다.
책의 1부 '새'는 인선의 집을 찾아가는 경하의 이야기이다. 경하는 눈길을 헤치며 경하의 집에 도착한다. 이미 새는 죽고 경하는 새를 상자에 넣어 나무 아래에 묻어둔다. 인선의 집으로 찾아가는 동안 경하는 인선과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인선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두려움에 포기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물만큼
새처럼 가볍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그것들에게도 무게가 있다.
오른쪽 어깨 위, 스웨터 올 사이로 가칠가칠했던 아마의 두 발이 떠오른다. 내 왼손 집게손가락을 횃대 삼아 앉아 있던 아미의 가슴털은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아보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109쪽)
아미와 아마는 인선이 기르던 새였다. 아마는 인선이 사고로 서울 병원으로 이송되고 난 후 물을 먹지 못해 죽고 만다. 경하가 인선의 부탁으로 제주로 내려가지만, 살리지 못했다. 지극히 연약하고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 눈처럼, 새처럼 가볍지만 그것들에게 무게가 있음을 우리는 잊고 살 때가 많다. 하지만 경하는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참을 살아있음에 대하여 생각했다. 살아 있는 존재, 지극히 연약하여, 그 무게가 잘 느껴지지 않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만큼의 무게가 있는 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 모든 안간힘은 결국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으며, 총을 맞고 집으로 기어 왔던 어리디 어린아이의 안간힘도 떠올렸다. 연약한 존재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던 제주 그날의 밤에 대하여도 생각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던 그 시절 범죄에 대하여도 생각했다. 특히 연약한, 그렇지만 무게가 있는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들은 '절멸'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슬프게, 무섭게 다가왔다.
2. 작별하지 않는다.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밤마다 악몽이 내 생명을 도굴해 간 걸 말이야. 살아 있는 누구도 더 이상 곁에 남지 않은 걸 말이야.
아닌데, 하고 인선이 내 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 게 아나야. 너한테 지금.
그녀의 어조가 단호해서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물기 어린 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는다.
...... 내가 있잖아. (238쪽)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는 제목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떤 의미일까? 막연히 어떤 느낌인지를 알겠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한참을 생각했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만의 답을 찾아보았다.
제주에 도착한 그 밤, 경하에게 인선의 환영이 나타난다. 서울에서 손가락 봉합 수술을 받고 있을 인선이 제주에 나타난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니, 인선의 환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죽은 아마도 그날 밤 다시 나타나 벽에 그림자를 보여준다. 경하와 인선은 함께 내 넘어 학살이 이루어졌던, 또 학살을 피해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동굴을 찾아간다. 경하는 인선에게, 지난 자신의 작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살아 있는 누구도 남지 않은 밤에 대하여. 그때 인선은 단호하게,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인선과 경하는 작별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제주 4.3 사건의 학살 가운데 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시체에 쌓인 눈을 하나하나 닦으면서 식구들인지 확인하는 두 어린 소녀의 걸음 가운데 내가 있었고, 저 멀리 바다에 둥둥 떠 있는 하얀 천들을 바라보는 아낙의 모습에도 내가 있었다. 제주 공항에 무더기 발견된 뼈들 가운데에도 내가 있었고, 불에 타버린 대숲과 동백이 다시 울창해지는 걸 바라보는 감옥 속의 아버지 옆에도 내가 있었다. 수학여행 때 제주 4.3 평화기념공원에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도 떠올랐다. 아이들을 인솔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빨리 나오라고 소리 질렀던 어리석은 내 모습도 떠올랐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님의 인터뷰도 생각이 났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소설 '소년이 온다'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것, 역사의 현장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이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잘 안다. 그러니, 작별할 수 없다고 우리는 그 시대의 이야기를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의미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3. 정리
작가님의 말 가운데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라는 구절이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의 소설로 읽어냈다고 생각한다. 동생을 살리기 위해 손가락에 피를 내어 입 안에 흘려보내던 엄마의 모습, 그리고 오빠를 찾기 위해 제주 안팎으로 나가던 엄마의 행동, 나중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순간에도 폭풍우 치는 밤이면 딸의 입에 손가락을 물리던 엄마의 기억 모두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멈춰 서서 엄마는 저 건너를 봤어. 기슭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폭포 같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갔어. 저렇게 가만히 있는 게 물 구경인가, 생각하며 엄마를 따라잖았던 기억이 나. 엄마가 쪼그려 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311쪽)
참, 마음이 무겁게 아픈 책을 읽어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그 모든 안간힘으로 악몽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던 순간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 악몽의 시작은 무엇이었으며,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2)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