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들의 시간 150. 단 한 번의 시간

# 김영하_북북서가

by 벼리바라기
단 한번의 삶 사진.PNG

대학교 때 나는 윤대녕 작가님과 은희경 작가님의 책을 좋아했고, 국문학과의 친한 친구는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좋아했다. 그때는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잘 읽지도 않았으며, 책이 재미있는 줄도 몰랐다. 친구가 감탄하며 이야기하는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무감각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궁금해지긴 했다. 그러다가 ‘오직 두 사람’을 재미있게 읽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하 작가님의 책은 쉽게 선택하여 읽지 않는다. 그냥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도서관에 신간이 도착했다고 사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천천히 둘러보다가 발견한 책이다. ‘단 한 번의 삶’이란 제목과 소설 아닌 에세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좋아졌다. 참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것처럼 작가님의 어떤 모습들이 내 마음을 여유롭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었다.


1. 환대_생일 축하


구세주의 탄생은 그렇다고 쳐도 평범한 인간의 생일은 왜 축하하는 것일까? 그것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환대의 의례일 것이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좋은 곳에 온 사람들끼리 환대하는 것은 쉽다. 원치 않았지만 오게 된 곳,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 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31쪽)


나에게 생일은 아버지의 죽음과 맞물려 있다. 생일이 기념일과 겹쳐 있기도 하지만 생일날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결혼 전까지는 생일을 축하하는데 묘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생일을 축하하는데도 인색함이 있다.

책 속 작가님은 청년 성가대 활동에서 생일축하를 받은 경험이 있다.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케이크에 초를 꽂아 축하해 주는 그런 생일파티. 그것이 작가님에게는 인상적인 생일의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나는 케이크에 촛불, 노래까지 있는 생일파티를 민망해 견디지 못하겠다. 부끄러움이 더 크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는데, 생일파티는 온전히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한 자리이므로 그 관심이 나에게 몰리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어물쩡 넘어가거나, 케이크를 사지 못하게 하거나, 생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가족끼리 밥 한 끼 먹으며 넘어갈 때가 많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작가님은 막막하고 두려운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보내는 환대야말로 값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태어남은 어찌 보면 정말 삶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감이 갔다. 그런 세상에 태어난 이를 위한 환대, 어쩌면 응원. 그것이 생일 축하의 의식이라는 생각이 들자, 세상에 태어난 소중한 사람들을 축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 이 세상을, 어쩌면 두려운 이곳에서 함께 시간과 공간을 보낼 수 있음을 나는 참 감사하다. 그래서 그의 태어남이 참 좋다.


2. 사람 변하지 않는다는 말.


‘사람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흔히들 하지만 사람은 평생 많이 변한다. 노력으로 달라지기도 하고 환경에 적응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수준에서는 인간의 몸이란 테세우스의 배와 마찬가지이다. 세포들이 끊임없이 죽고 다시 생성되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세포는 거의 없을 것이다. 행동도, 마음도, 습관도, 조금씩 달라지다가 그 변화가 누적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린다. 아버지는 사십 대와 오십 대, 육십 대 이후가 모두 달랐다. 사십 대에는 혈기 방장한 두주불사의 군인이었고, 오십 대에는 술은 여전히 많이 마셨지만 성질은 많이 눅은 은행원이었다. 은행을 떠난 뒤에는 화를 거의 낼 줄 모르는 호인으로 변해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술과 담배도 자제했다. 그러나 육십 대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칠십 대에 암이 발병하자 술, 담배를 완전히 끊고 예민하고 성마른 사람이 되었다. (76쪽)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는 편이다. 사람의 본질적인 성격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지고, 언제나 변하지 않는 그 성격에 실망하여 사람을 떠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했다.


작가님은 노력으로, 환경에 적응함으로 사람들이 평생 많이 변한다고 말씀하신다. 행동도, 마음도, 습관도 조금씩 달라지다가 그 변화가 누적되어 다른 사람처럼 되어가는 것.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찌 보면 나도 그런 것 같기에. 예전에 친한 선생님께서 이십 대의 선택과 삼십 대의 선택이 다를 수 있으며, 그럼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다른 것 아니겠냐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사람은 변하는 것이 아닐까?

10대의 나는 반장이면서 발표도 잘하고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하는, 모임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세상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많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점점 그림자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는 싫지 않았다. 임용에 계속 실패하던 삼십 대의 시절을 지나 사십 대가 되면서 명예와 물질적 부유보다 정신적 평온을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나의 모습을 보고, 늘 너는 욕심도 없냐며 말씀하신다. 예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에. 나는 중요한 어떤 순간의 실패와 결정과 선택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 변화가 좋다.

함께 오래 근무했던 선생님께서 산책을 하시다가 “샘은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 않죠?”라고 물으셨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괜찮아 보이신다는 의미의 말씀이셨다. 당연하다고 말씀드렸다. 젊었던 어떤 시절보다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변화의 폭이 미세하지만 느껴지는 것도 나는 좋다.


3. 정리


원래 나는 ‘인생 사용법’이라는 호기로운 제목으로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내가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내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뿐, 그리고 소로의 단언과는 달리, 많이 이들이 이 ‘단 한 번의 삶’을 무시무시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적기로 했다. 일단 적어놓으면 그 안에서 눈이 밝은 이들이 무엇이든 찾아내리라, 그런 마음으로 써나갔다. (197쪽)


재미있게 잘 읽었다. 눈이 밝은 독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좋은 구절들이 많았고 포스트잍을 많이 붙였으며, 여러 번 다시 읽어 내려간 구절들이 있었다. ‘알쓸신잡’을 보고 있는 기분도 들었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어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작가님의 책 읽는 습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마음, 그리고 자랑하는 마음이 나와 비슷해 기분이 좋았다. 뭔가 닮은 어떤 점을 발견한 기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속도로 이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생일에 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생일축하 파티가 있었다면 언제인지, 왜 오래 기억에 남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신의 선택이, 또는 환경이 자신에게 변화를 가져왔던 경험이 있다면, 그래서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달라졌다고 느낀다면 언제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들의 시간 149. 작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