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시간 151. 공원의 위로

# 배정한 지음_김영사

by 벼리바라기
공원의 위로_사진.PNG

재미있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왜 이 책이 끌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반짝이는 표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막연히 생각했던, 공원이 주는 위안이 있다는 내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택한 책. ‘공원의 위로’. 그렇게 선택한 책인데,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히 공원에 대한 감상만 적혀 있는 책이 아니라 공원의 생성과 역사에 대하여도 알 수 있었고, 공원 사업의 과정에 대하여도 알 수 있었다. 작가님이 공원을 산책하고 느꼈던 감정과 더불어 그 시기 읽고 있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흥미로웠다. 책을 읽으면서 또 다른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빌려 읽었다.


아주 예전에 동네의 공원 지도를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조그만 섬 같은 우리 동네는 교통이 불편하고 진입하는데 시간이 걸리며, 아파트와 빌라가 오밀조밀 모여 있으며, 골프장의 진입로가 있어 한쪽 산은 벽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동네다. 작은 박물관이 있고, 유흥업소가 없으며, 아파트 상가나 몇 개의 상가 건물이 전부인 아주 작은 동네다. 어디선가 가난한 동네일수록 편의점이 많으며, 편의점이 방범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동네는 편의점이 많다. 또 아파트의 놀이터가 있지만, 빌라가 더 많은 동네라 어린이집도 많고 공원도 많다. 학군은 초등학교 밖에 없지만, 밖으로 나가는 교통이 불편한 까닭에 동네 안의 공원이 아이들 놀이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공원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공원의 나무, 꽃, 길고양이의 집, 놀이터를 그려 넣은 지도. 하지만 생각만 했지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나의 기대를 넘어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지식이 쌓인 기분이 들었다.


1. 공원의 의자


도시의 고독한 겨울을 나려면 화려한 가을을 마음속에 저장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은 가을을 가로질러 공원을 걷는 것. 걷기는 시간을 우아하게 잃는 일이다. 걷다 보면 계절이 거침없이 그 속살을 열어 보이지만, 걷는 사람은 계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133쪽)

공원의 의자는 걷는 사람을 멈추게 한다. 머물게 한다. 의자에 기대앉으면 숨을 고를 수 있다. 느긋하게 다음 걸음을 준비할 수 있다.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고, 기온의 변화를 살갗으로 느낄 수 있다. 빈 벤치에는 오후 한때를 보내고 막 떠난 연인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어느 고독한 산책자의 체온이 남은 자리가 새 주인을 맞는다. (135쪽)


공원의 의자가 공원을 바꾼 사례를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초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뉴욕 맨해튼의 브라이언트 공원은 마약과 매춘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하지만 가벼운 철제 의자를 둠으로써 그 공원은 주변 직장인, 도서관 이용자, 외로운 노인, 가난한 연인, 고단한 여행객에 의해 환대의 장소로 바뀌게 된다.


생각해 보면 걷다가 앉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공원의 크기가 작을 때는 괜찮지만, 조금 큰 공원이라면 걷다 보면 쉬고 싶은 순간이 생긴다. 나무 의자가 있지만 움직일 수 없고, 자리가 지정되어 있기에 내가 앉고 싶은 순간엔 의자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철제 의자는 그것대로 쉼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일 수 있는 의자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숲 속의 그네의자가 있다. 숲으로 둘러싸인 길목에 자리한 그네 의자는 옆의 수국나무와 앞의 큰 잣나무, 언덕의 고사리 잎들로 인해 숲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물론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의자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다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지만 나는 그 의자를 좋아한다. 발로 밀어 그네를 타듯 앉아있으며 자연스레 숲의 리듬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공원의 그 의자가 생각났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2. 잔디 정원에 대한 환상


전격 개방된 청와대 정원과 조감도 속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마당은 여전히 녹색 잔디 카펫의 권위를 붙들고 있지만, 지구촌 전역의 잔디 신화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기후 변화의 타격을 입고 있는 지역에서는 잔디밭 자체가 퇴출되는 중이다. 수년째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는 잔디가 말라죽어도 내버려 둬야 한다. 네바다주는 비기능성 잔디밭을 아예 불법화했다. 과도한 시간과 에너지, 막대한 양의 수돗물과 농약, 해로운 살충제와 제초제에 의해 유지되는 초원. 이제 미학적으로도 올드 패션이다.(229쪽)


푸르른 잔디밭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공원이나 성곽의 잔디를 볼 때마다 그 초록의 빛이 내 눈에 들어올 때 감동하곤 했다. 하지만 선뜻 들어가 걷지는 못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푯말은 없지만 이미 오랜 시간 그렇게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잔디 정원의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공원은 많은 사람들이 뛰어놀 수 있는 광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잔디는 그 광장의 역할을 막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통제가 공원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감상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이다. 이미 익숙하여 반론과 비판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을 텐데 책을 읽으면서 잔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원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이미 충분히 알고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공원은 쉼이며, 집에서의 탈출이며, 집에서 가까운 숲이고 관찰의 장소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 소개된 또 다른 책 ‘야생의 위로(에마 미첼)’도 함께 읽었다. 그 책의 ‘밖으로 나가 오두막집 뒤의 숲을 거닐면 어두운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더라도 분명 옆으로 비켜나가리라는 것’이라는 구절처럼 공원은 나에게 오두막집 뒤의 숲 같은 장소이다. 그런 공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3. 정리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지만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눈을 고정하고 걷는 사람이 없었다. 억압받는 팔다리의 능력을 해방시키고 건강한 리듬과 활기찬 표정으로 도시를 걷는 사람들을 경의선숲길에서 만났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2014)에서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는 말한다. “걷는다는 것, 그것은 지면의 단단함과 육체의 허약함을 깨닫고 땅에 발을 내딛는 느린 동작으로 자신의 조건을 실현하는 것이다.” (65쪽)


책을 읽으면서 <경의선숲길>을 걷고 싶었다. 지면의 단단함과 내 육체의 허약함을 깨닫고 느리디 느린 걸음으로 나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조만간 가봐야겠다. 경의선숲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걷는데 2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가장 좋아하는 공원이 있다면 어떤 공원입니까? 그 공원이 왜 좋았으며,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집 근처의 공원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집 근처에 어떤 공원들이 있으며, 그 공원의 특색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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