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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52.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이다 지음_반비

by 벼리바라기
이다의 도시관찰일기_사진.PNG

예전의 이다 작가님의 자연관찰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얼마나 책이 좋던지, 그림이 재미있고 글이 술술 읽히던지, 작가님의 관찰일기가 좋던지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했었다. 이번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았다. 이번엔 ‘도시관찰일기’이구나, 그런 마음에 반갑기도 했고, 작가님의 시선이 무엇을 관찰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여전히 술술 잘 읽히는 책을 다 덮고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 책에서 작가님은 관찰일기를 작성할 때 그림은 중요하지 않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나는 작가님의 드로잉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동네의 공원 지도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 도서관 일기, 마을 시장 배치도 이런 것들,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저 마음 깊은 곳의 소망이 다시금 아주 천천히 나의 마음을 타고 올라왔다. 자신은 없지만 또 삶은 모를 일이니 그런 소망 한두 개쯤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건 괜찮은 일인 것 같기도 하다.


1. 이타적 화단


어떤 사람들은 도시의 비좁은 틈에 꽃을 기른다. 먹을 수도 없고 돈이 되지도 않는 꽃을 정성스레 기른다.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공유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그 계절의 꽃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마음을 쏟은 화단을 보면 ‘아, 세상에 아직 이타적 사람들이 있다니’하며 이 사회에 대한 믿음마저 샘솟는다.(오버라고? 진짜다.) (39쪽)

한참 동안 동네의 이타적 화단을 돌아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건물 앞에 활짝 핀 노란 꽃 화분이 있다. 아래엔 메모도 붙어 있다. “꽃이 피었어요. 같이 보고 싶어 잠시 여기에 둡니다.” 천사가 다녀갔나? “같이 보고 싶어서”라는 말이 머리를 때린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집 안으로 들어와 베란다에 놓인 수국 화분을 본다. 종로 꽃시장에서 사 온 지 한 달째 파란색 수국이 피어 있다. 내일은 나도 현관에 화분을 내려놓아볼까? (40쪽)



‘이타적 화단’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도 작가님과 같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빌라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빌라마다 풍경이 다르다. 어떤 건물의 빌라는 들어가는 현관문에 커다란 미술작품처럼 타일로 장식한 건물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건물은 나이 드신 어르신이 매일같이 쓸고 닦아 낙엽도 보이지 않는 깨끗한 건물이 있기도 하다. 또 음식물 쓰레기통이 가지런히 건물의 호수자리마다 모여 놓여있기도 하고, 쓰레기를 두는 장소에 툭툭 던져진 페트병들이 쌓여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빌라는 작은 정원을 활용해 꽃을 심어 두고, 나무를 심어 두고, 화분을 내놓은 빌라다. 작디작은 정원에 대추나무가 있어 지금 계절엔 대추가 한가득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화분에 꽃들이 잔뜩 심어 있어 색색의 화려함이 온 계절 내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가난한 마을에 마음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정원을 마주한 기분이다.


작가님이 도시를 관찰하며 도시의 비좁은 틈에서 꽃을 발견할 때 느끼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도시를 관찰하는 작은 기쁨이지 않을까?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걸을 때 색을 정하든 발견하고 싶은 어떤 것을 정해 걷다 보면 그것이 또 다른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나는 하늘의 구름을 발견하는 기쁨, 나뭇잎의 색을 발견하는 기쁨, 꽃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 크다. 이제, 공원이 아닌 이 도시를 걸을 때에도 많은 것을 발견하며 걷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2. 식당의 발견


나는 매일 먹는다. 매번 끼니를 선택해야 한다. 끼니를 선택할 때마다 가진 돈이 줄어든다. 그럴 때면 열심히 관찰하는 것으로 불안함을 달래려 한다. 치열하게 고민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결과는 랜덤이다.

그렇다고 먹던 것만 먹고, 가던 곳만 갈 수는 없다. 새로운 선택은 불안한 만큼 재미있다. 도시를 관찰하는 동안 나의 뇌는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원시인처럼 치열하게 돌아간다. 관찰 끝에 먹이를 구해 입에 넣는다면 이보다 큰 보상은 없다. 다음에도 새로운 단골집을 찾아 길을 헤매고 남의 가게를 염탐할 것이다. 내 관찰이 다 틀려도 괜찮을 것 같다. 하긴, 틀려봤자 배부르기밖에 더할까? (103쪽)


딸이 내려오는 주말은 ‘맛집 탐방의 날’이다. 풍자의 ‘또 간집’처럼 늘 먹던 것을 먹을 때도 많지만,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는 일은 작가님의 말처럼 치열하게 고민되는 일이다. 평일엔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퇴근하고 돌아와서는 지쳐 뭔가 주워 먹듯 먹고 말기에, 주말에 하는 외식은 일주일을 고민하고 찾고 또 찾아 만나게 되는 귀한 선물과 같은 시간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된다. 블로그를 탐색하고 카카오맵 지도를 보며 별점을 찾아보고, 그리고 식당의 이름을 본다. 나는 식당 이름이 참 좋은 곳을 좋아한다. 왠지 사장님의 귀한 고민의 결과가 식당의 이름인 것 같아 그런 마음이 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참 좋아하는 분께서 추천해 주신 맛집이 있다. 고구마묵밥을 주로 하는 집이다. 처음 소개받았을 때 식당의 이름이 너무 정직하여 의심이 되었다. 하지만 지역의 이름을 따고 고구마묵밥이라는 주 메뉴를 식당의 이름으로 하여 판매하는 것이 어쩌면 자부심일 수도 있겠단 마음이 들었다. 감자옹심이를 먹는 듯 쫄깃함이 다른 고구마묵 수제비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작가님처럼 관찰자의 시선으로 맛집을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3. 정리


관찰을 할 때는 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관찰의 핵심이다. 그러나 평소의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자꾸만 예전의 잘못과 아쉬운 점을 되새긴다. ‘나는 왜 그럴까?’‘나는 왜 그랬을까?’모든 게 ‘나는’, ‘나는’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관찰을 할 때는 잠시 나를 잊어버릴 수 있다. 내가 아니라 멀리 산꼭대기에 선 송전탑을 보고, 아파트 입구에 차단봉으로 눕혀놓은 쇠파이프를 본다. 그리고 그것들이 왜 있는지, 누가 이렇게 해놓았는지 생각한다. 관찰을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내가 아닌 것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168쪽)


책을 읽으면서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연휴 내내 내리는 빗방울을 뚫고, 잠시 멈춘 빗줄기에 감사하며 밖으로 나선다. 오랜만에 딸과 함께 가고 싶었던 경의선 숲길을 걷고 숲길을 품은 맛집에서 무화과화덕피자를 먹는다. 그리고 걷는다. 도심의 5분 정원 길을 발견하고, 이타적 화단을 찾으며, 산책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과 반려동물들의 킁킁거림을 흥겹게 바라본다. 좋다. 도시 관찰자로 살고 싶단 마음이 든다. 적당히 나에 집중하던 마음을 벗어던지고 나도 내가 아닌 것들의 의미를 발견하며 살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살고 있는 도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장소가 마음에 들고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알고 있는 맛집을 공유해 봅시다. ‘여긴 정말 맛있다’라고 느낀 곳이 있다면 어디이며, 무슨 음식이었는지, 누구와 함께였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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