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란_마음산책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궁금했다. 소설가가 애착을 느끼는 어떤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란 생각이 드니, 그 사물이 무엇인지, 그 사물에서 어떤 이야기가 그려지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 2018년도에 발간된 책이라, 어느새 책의 겉면 종이는 낡아가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다. 왠지 '책'이라는 사물이 가진 시간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책, '소설가의 사물'.
책은 단순히 나열된 어떤 사물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않았다. 작가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 사물에서 떠올린 생각의 씨앗이 다른 책 소개로 이어지기도 하고, 영화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작가님의 여행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사물이란 것이 그런 것이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사물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 사물을 보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쓰임, 그리고 미래의 기대감까지 떠올리게 된다면 결국 그건 그 순간을 공유한 사람에 대한 기억일 수 있겠다는 생각.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시간을 들여다본 것도 좋았지만, 결국 내 주변의 참 좋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1. 귀이개
조카들의 귀 청소를 해주면서 동시를 읊는다. 평화롭고 한가한 순간이다. 조카들도 이모 무릎을 베고 누워 그런 순간을 즐기는 것이리라. 그럴 리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지만 귀이개를 슬금슬금 움직일 때마다 나비가 꽃잎을 느긋하게 갉아먹는 듯한, 사사삭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간지러움 때문인지 조카는 두 손을 꽉 쥐고 있다. 귀 파기의 마지막은 역시 후, 하고 세게 입김 불어주기(43쪽)
작가님은 만화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가 궁금하여 찾아서 보게 된다. <심야식당>을 쓴 작가의 작품. 작가님은 그 만화를 읽으면서 누군가 그렇게 귀 청소를 좀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나이가 들어 누구의 무릎을 베고 누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엄마가 귀를 파주는 것이 참 좋았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눕는 것도 좋았다. 결혼을 하고 삼십 대가 되어서도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파 달라고 졸랐다. 살갑지 않은 딸이었지만, 엄마 무릎에 누워 있으면 엄마의 냄새가 났고, 그 냄새를 맡는 것이 참 좋았다.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귀를 파주면서 엄마가, "이젠 눈이 어두워 안 보인다."라고 말씀하신 이후부터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눕지 않았다. 이제는 체구가 너무 작아지셔서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엄마와의 그 시간은 내겐 참 다정한 시간이었다.
스무 살이 넘은 딸도 귀지 파주는 것을 좋아한다. 주말이면, 잠들기 직전 방에 들어와 침대에 벌러덩 누우면서, '귀 파죠, 귀 파죠'라며 노래를 부른다. 오랜만에 팔 때면 귀지가 많아 잘 파지지만 며칠 간격으로 귀를 파달라고 조를 때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없다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없다고 그리 말하면, "잘 들여다봐봐. 사랑을 가지고 봐봐. 오늘 나쁜 말을 많이 들었단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매달린다. 귀지를 파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도, 어릴 때부터의 습관이라 나는 나대로, 딸은 딸대로 그 시간을 참 좋아한다. 엄마에게서, 나에게로, 또 딸에게로 내려온 시간이 축적되어 가는 기분이다. 친밀한, 정말 친밀한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2. 달력
탁상용 달력을 조용히 거꾸로 넘겨본다. 1월에는 가족들과 경복궁 투어를 했고 2월과 10월에는 단편을 썼고 5월에는 대선 투표를 했으며 7월에는 폭염을 견뎠고 9월에는 기내에게 <굿바이 베를린>이라는 멋진 영화를 보았고 11월에는 김장을 담갔다. 요즘 일간지마다 앞다퉈 지면을 장식하는 국내외 10대 뉴스처럼 내 개인적인 10대 뉴스를 뽑아볼까 싶었는데, 되레 지난해보다 특별한 일,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어 보인다. 평범한 일상들, 그런 날들이 지속되었던 것 같은데 그건 좋은 일일까 아닐까.(289쪽)
달력을 한 권의 일기처럼 표현한 부분에 공감이 갔다. 예전에는 달력을 잘 활용하지 않았는데, 몇 년 전부터 달력에 메모를 많이 하곤 한다. 처음 시작은 업무 때문이었다. 기한 안에 제출해야 할 공문들을 표시하면서 달력에 메모를 하게 되었고, 핸드폰에 있는 달력에는 약속들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달력은 기억하고 싶은 중요한 순간을 표시한 기록물이 되었다. 그래서 한 해 말이면, 달력을 아주 신중하게 고르곤 한다. 학교에서도 달력이 나오고, 남편이 회사에서 받아오기도 하지만 마음에 드는 탁상 달력을 사는 것으로 한해를 준비하는 의식을 치른다.
작가님처럼 조용히 나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1월엔 딸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했다. 그 지출이 너무 커서 한동안 여행을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라나다의 성당과 야경은 마음에 남아 지친 어떤 날의 그리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주말마다 했던 딸과의 맛집 투어는 딸의 남자친구의 등장으로 이젠 자주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더 귀한 이벤트가 되었으며, 5월 연휴를 잘 보내고 돌아와서는 발가락 골절로 6주를 고생했다. 걷는 걸 참 좋아하는데 걷지 못함으로 인해 속이 상했던 시간들, 그리고 여름엔 전주의 도서관들을 다니며 '혼자와 함께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10월 연휴엔 가고 싶었던 경의선 숲길도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2025년도도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작가님의 말처럼 평범한 일상들이 지속되길 여전히 빌어본다.
3. 정리.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번 책도 작가님의 일상을 엿본 듯 좋으면서 작가님이 읽었던, 또 보았던 책과 영화, 시간들에 대하여 궁금함을 만들어 준 책이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기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며, 하고 싶은 일들이 잔뜩 생긴다. 한 해가 어느새 다 지나간다. 뭔가를 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다. 늘 한 해의 시작에 지루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곤 한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그럼에도 지나고 보면 그 시간 나는 뭔가를 향해 나아갔으며, 뭔가를 해 내곤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 생각한다.
지난번 읽었던 책과 이번 책을 통해 나는 좀 더 사물을, 사람을, 도시를, 환경을 잘 관찰하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을 해 본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이야기가 있는 사물이 있다면 무엇인지 떠올려 봅시다. 그리고 그 사물에 대하여 소개해 봅시다.
2) 천천히 올해의 달력을 넘겨봅시다.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