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강명 외, (주)은행나무 # 독서모임
이번 독서모임의 사회자를 맡았다. 책을 선정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그냥 혼자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할 때에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거나, 최근에 읽었던 작가님의 책이라든가 책 표지가 마음에 든다거나 이처럼 사소한 이유들이 모두 읽고 싶은 이유가 되지만, 독서모임의 책을 선정할 때에는 왠지 모르게 조심스럽다. 읽기에 너무 어렵지 않은 책이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또 너무 쉬운 책은 안될 것 같고, 시류를 반영하면서도 이야깃거리가 많은 책이었으면 좋겠고 동시에 술술 잘 넘어가는 책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도 읽어보지 않은 책 가운데 선정하려고 하다 보면, 부담감이 커진다.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고 읽어 본 책을 독서모임의 책으로 선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늘 책 선정은 참으로 어렵다.
이번 독서모임엔 소설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책을 검색하던 중 발견한 책이다. 좋아하는 강화길 작가님의 책을 읽어볼까, 그렇게 시작된 마음에 욕심이 생겼다. 최근 좋아하게 된 다른 작가님의 책도 읽고 싶어 졌고, 이왕이면 다양한 작가님의 책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으며, 독서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때 만난 책, '소설, 한국을 말하다'이다.
이 책은 문화일보에 연재된 작품들을 모아 만든 단편집이다. '한국, 지금, 여기의 우리'를 키워드로 주제를 정해 작가님들이 한 편씩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글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잘 읽었다.
사실, 수업에 활용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각각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드러낸 키워드가 마음에 들었으며, 학생들과 소설을 읽고 한국사회의 문제를 파악해 보고 그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어, 다음 수업에 구상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1. 거지방
고깃집을 나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남은 밑반찬은 결국 포장하지 못했다. 혜영 씨가 진상 손님이라면서 나를 뜯어말렸다. 반찬 리필을 요청한 뒤 일부러 남기고서 그걸 포장해 달라고 요구하는 손님이 속출하면 자영업자 입장에선 타격이 클 거라고 말했다. 나는 한 번 정도의 리필은 괜찮은 거 아니냐고 물었다. 혜영 씨가 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얘가 거지방에 들어가더니 정말로 거지 근성이 생겼나 봐." 두 사람은 낄낄거렸고 나는 기분이 확 상했다. "거지 근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합리적 소비를 하는 청년들의 연대라니까." 언니가 나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야, 그거 그냥 재미로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쓴 걸 전부 다 보고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 충동적으로 지출한 건 안 알리겠지. 그냥 경제학적 조크로 드립치고 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니야?" (51쪽)
- 이서수 '우리들의 방' 중.
온라인 폐지 줍기를 실천하고 있다. 온라인 폐지 줍기란 말은 딸에게 들었다. 핸드폰 어플을 사용하여 십원, 이십 원 모으는 것을 온라인 폐지 줍기라고 한단다. 아니 사실 이렇게 내 성향에 잘 맞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성실하게 걷기 어플을 활용하여 돈을 모으고, 몇몇 개의 어플 출석체크를 하고, 이벤트에 참여하며 돈을 모았다. 그랬더니 한 달에 치킨 한 마리는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모였다. 그래서인지 내 돈 주고 치킨 사 먹는 게 아까울 때도 있다.
이 단편은 '거지방'을 키워드로 하여 쓰인 소설이다. 거지방을 바라보는 극명하게 갈리는 두 시선이 소설에 담겨있다. 합리적 소비를 하는 청년연대라고 믿는 '나'는 그냥 경제적 조크로 드립을 치는 사람들이 모인 방 정도로 생각하는 '혜영과 언니'의 시선이 싫다. 그래서 나는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사지 않고, 거지방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폭우 속으로 뛰어들며 소설은 끝난다. 지금은 조금 뜸한 것 같긴 한데, 한때 '거지방'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 들리던 때가 있었다. 돈을 아껴 쓰기 위해 조언을 구하고 조금은 독한 말들이 쓰인 글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다지고 어떤 사람들은 비웃었다.
소비 단식을 실천하려고 마음먹었던 순간이 있었다. 소득보다 소비가 더 많아졌을 때,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사서 버려지는 것을 보았을 때. 소비 단식은 쉽지 않았다. 어쩔 땐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보상을 해 줘야 할 것만 같고, 때론 너무 아끼다가 왜 이러고 사나,라는 심한 우울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적절한 소비와 절제를 통해 분명히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스러운 마음을 지닌 기분이 드는 것은 정신승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거지방 청년들의 연대는 그렇게 연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든다. '고물가'를 키워드로 하는 김멜라 작가님의 '마감 사냥꾼'도 비슷한 의미로 읽혔다. 물가는 너무 비싸 아끼고 살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이다.
2. 중독
그때부터였다 미진은 영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영은은 미진의 속이 훤히 보였다. 미진은 자신이 영은의 말을 가로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솔직히 영은은 아무렇지 않았다. 선물에 대해 누가 뭘 어떻게 설명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설사 영은의 기분이 나빴다 해도 이렇게까지 눈치 볼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진은 눈치를 봤다. 신경을 썼다. 미진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런 생각뿐인 듯했다.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진 않을까. 실수를 하지 않을까. 만일 잘못을 했다면 어떻게 만회해야 할까. 특히 미진은 영은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어린 시절, 책상에 물을 쏟았던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왜일까. 하지만 영은은 미진이 자신의 허물을 계속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끝없이 배려하고, 사과하고, 용서받는 삶. (218쪽)
- 강화길, '화원의 주인' 중.
실려있던 작품 중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강화길 작가님의 '화원의 주인'은 우리 사회의 문제 중 '중독'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 '중독'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약물에 대한 중독이 떠올랐다. 하지만 소설은 약물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 중독’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면서 동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관점에 대하여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영은은 미진이 자신의 허물을 계속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배려하고 사과하고 그리고 용서받는 삶, 그런 미진의 삶을 영은은 즐기고 있었다. 처음 책에 물을 쏟은 일로 사과를 받았을 땐, 왜 저렇게 사과를 계속하고 안절부절못하나 생각했던 영은은 점점 미진의 사과와 배려를 즐기게 되고 그리고 자신이 용서를 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그 관계에 길들여지고 중독되었던 것은 미진이 아니라 영은이었다. 미진의 마음을 가늠하고 미진이 자신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미진이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다가 지각을 하기도 하고 상사에게 꾸중을 듣기도 한다.
영은의 심리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자신에게 사과하는 타인의 마음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그 사람에게는 자신밖에 없다고 믿는 것 같기도 하고, 타인의 괴로움을 상상하며 즐기는 것 같기도 한 사람. 뭐지? 뭘까.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또한 중독이다. 관계를 이끌어가고 싶은 중독.
가끔은 나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지극히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와 나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보다는 나의 불행 앞에 위로하면서 그 위로를 통해 위안을 받는 사람, 이상하게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래, 바란다면 나의 불행을 보여주겠다. 그렇게 마음먹게 되기도 한다. 참 서글프다. 나도 서글프고, 내 불행을 먹고사는 그도 서글프다.
3. 정리
이번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과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정말 선생님들이 선택한 소설이 다 달랐다. 우리가 지닌 지금의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각자의 시선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AI, 콘텐츠 과잉, 거지방, 사교육, 번아웃, 가족, 현대적 삶과 예술부터 노동, 중독, 돈, 식단’까지 다양한 키워드는 분명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주제들이었으며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건들이었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여러 가지 키워드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왜 그 단편이 좋은지, 그 단편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생각해 봅시다.
2)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중독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또는 자신이 생각하는 중독의 원인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