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정원에서 쓴 녹색손 그림일기_임종길 글, 그림_건미
재미있게 잘 읽었다. 너무 바쁜 일상 가운데, 지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책이 필요한데, 이 책은 가을에 어울리는 다양한 색의 색감들이 책 속에 가득 담겨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쉬어가는 느낌도 들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그림일기'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 그림일기.
미술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시고 제주에 정착한 분의 글과 그림이 담겨있는 책이다. 3월의 일기부터 다음 해 2월의 일기까지 담겨있다. 그 시기 관찰할 수 있는 식물과 새와 몇몇의 사물의 그림을 보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글의 분량이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일기는 결국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마련이라 읽으면서 비슷한 마음을 발견할 때, 작가님의 이야기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제주에서 잘 보인다는 식물들은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 무 뽑는 날
3월 작가님은 장모님이 텃밭에 뿌려놓은 무를 하나씩 뽑아 요리를 해 먹고 있다. 무를 뽑을 때마다 느끼는 신기한 마음,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덩이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 무 하나가 자랄 때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생명들의 노력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 그러고 나서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참 좋았다. 아직도 수많은 생명 활동에 대해 모른다는 말.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정말 아직도 수많은 생명활동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럼에도 그 생명활동이 보여주는 어떤 감동적인 장면을 마주할 때가 많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꽃을 틔우는 봄꽃의 개화와 초록의 잎을 다른 색으로 물들이는 가을의 낙엽을 마주할 때면 그 신비로움에 감동하곤 한다.
무도 그렇다. 특수학급에서 학교 정원 한편에 무를 심었다. 교내를 산책할 때면 오며 가며 무가 잘 자라나 궁금해 쳐다보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무의 초록 부분이 머리를 쑤욱 내밀더니 땅 위로 올라왔고,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땅 아래 숨겨진 무가 궁금해서 언제 자라나, 얼마큼 자랐나, 땅 속 무는 어느 정도의 크기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살짝 눌러보기도 했다. 같이 산책하는 샘들에게는 몰래 뽑았다가 다시 심으면 안 되냐며 우스개처럼 말하기도 했다. 특수학급 아이들이 무를 뽑는 날 함께 손뼉 치며 무 뽑기 행사를 구경했다. 생각보다 무는 크지 않았지만, 정원이었던 얕은 땅에서 그 크기를 키워 간 무가 참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예뻤다. 짤뚱하지만 그럼에도 무를 키워낸 수많은 손길과 땅 속 생명들의 활동이 새삼 감동스러워진다.
2. 꽃과의 인연
작가님은 학교에서 근무하실 때 학교 정원 가꾸기를 하신 모양이다. 학교 연못을 만들고 온실을 만들어 겨울 추위 때문에 키우지 못한 식물들을 키우셨다고 한다. 학교에 온실이 있는 것,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다. 겨울엔 추워서 산책도 못하는데 온실 식물을 구경하면서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님은 온실에서 키웠던 '멕시칸세이지'를 제주 집에 가을꽃으로 심으셨다고 한다. 사람과의 인연이 있듯 이렇게 꽃과의 인연도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어떤 꽃과 인연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꽃은 어떤 꽃일까? 정말 좋아하는 분이 있다. 십여 년 이어져 온 그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피로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나인데, 그분의 이야기 중 몇몇 이야기는 참 따뜻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꽃. 어린 시절 마당에 핀 수국을 보고 보름달이 뜬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수국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보름달 같은 수국을 보고 싶어, 밤에 수국나무를 보고 싶단 생각도 여러 번 했었다. 길게 꽃이 무리 지어 피는 수국보다는 동그랗게 꽃이 무리 지어 핀 수국을 좋아한다. 어디선가 수국은 땅의 성질에 따라 꽃의 색이 달라진다고 들었다. 분홍빛 수국보다는 파아란, 보랏빛이 섞인 파란 수국을 더 좋아한다. 흰 수국도 있겠지, 그 수국은 정말 보름달을 닮지 않았을까?
내게 수국은 사람과의 인연에서 이어진 꽃과의 인연이다.
3. 정리
겨울에 짧게 제주도를 다녀와야지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미리 읽어서 참 좋다. 책에 나온 수목원도 가고 싶고, 교래자연휴양림도 가고 싶고 작가님이 벽화에 참여한 대흘초등학교도 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전한 마음,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그래서 나도 이런 그림일기를 쓰고 싶단 생각이 계속 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그림일기를 그려 봅시다. 오늘 하루 일어난 일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사물, 자연을 그리고 일기를 적어봅시다.
2) 사람과의 인연이 있듯 꽃과의 인연도 있다고 합니다. 어떤 꽃과 인연이 있는지, 꽃이 아니면 자연으로 대상을 확대하여 자신에게 인연이 있는 자연을 소개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