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해나 소설집_창비
이번 독서모임의 책은 성해나 작가님의 ‘혼모노’였다. 이미 북클럽 문학동네에서 ‘빛을 걷으면 빛’을 읽기도 했었고,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와 ‘혼모노’도 젊은 작가 수상집과 이효석 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어본 적이 있어 낯설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의 경우 참 오래 기억에 남았던 단편이었다. 그래서 이번 책의 첫 번째 수록 작품으로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 이걸 읽고, 한동안 ‘길티플레져’, 즉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에 대하여 오래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다시 한번 읽으면서, 마음속에 깊숙이 숨겨 두었던 나의 ‘길티플레져’가 생각나기도 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리 소설을 잘 쓰는 작가들이 많지, 그런 마음도 들었다. 배우 박정민 님이 ‘넷플릭스를 왜 보나,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고 적어놓은 구절을 추천사에서 읽었다. 공감이 되었다. 물론 넷플릭스엔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지만, 이 소설집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스토리 중심의 이야기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 다시 읽는 작품들도 재미있었고, 새로운 작품들도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해서 부끄러워졌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과연 진실과 거짓을 구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마음.
1.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
우리는 정말 좋아서 빠는 거잖아요.
오영은 ‘우리’의 사랑은 ‘저들’의 사랑보다 순도 높다고 했다. 저들은 김곤을 개발지로 삼으려 하지만 우리는 낙원으로 삼지 않느냐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오롯이 공감할 수 없었다. 신념에 취해 있는 듯한 오영을 보니 더더욱 그랬다. 김곤을 비호하면서도 의문을 감출 수 없던 순간들이 떠올라서였다.
익명의 네티즌이 기사 밑에 남긴 ‘얘 고딩 때 일진이었음’ 같은 댓글을 읽으면서 이게 진짜일까?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 김곤의 영화를 다시 보다 이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폭력의 전조나 코드를 목도하고 감독의 모럴이 투영된 건 아닐까? 의혹에 빠졌던 순간. (33쪽)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 전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65쪽)
‘길티클럽: 호랑이 만지기’ 중
감추고 싶은 어떤 마음을 발견한 듯 부끄러워졌다. 좋아한다는 감정의 순수함을 앞세우거나 당위성을 앞세워 내 사랑만이 고결한 듯 굴었던 어떤 순간도 떠올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와 비난에 열을 세우며 무조건적으로 옹호했던 순간도 생각났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지 않고 오래가지 않았으며 특별한 어떤 인물에 대한 덕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소설 속 김곤 감독을 좋아하는 ‘나’의 마음 전부를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무조건적으로 믿고 따르는 분에 대한 마음이 커졌던 적이 있다. 이때의 마음은 오로지 직장상사에 대한 믿음. 때로는 일의 처리 방식이 다른 부서원들과 갈등을 빚을 때도 있지만 나는 무조건 그분의 편이었다.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나중엔 이해되는, 그런 순간들이 오곤 했었다.
김곤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니 마음으로는 이미 예전에 알았지만 자신의 마음마저도 숨기고 무한정 믿음으로 김곤을 좋아했을 때, 그러다 나중에 그 마음이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은 죄책감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이 마음, 직장 상상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신뢰 그리고 존경. 때로는 추앙의 마음인지도 모른 이 마음도 끝이 있음을 잘 안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분에 대하여, 그분의 리더십에 대하여 뭐라고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잘 모른 채 아무 말도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변함없는 마음은 학교를 옮기기 전까지 그분이 하는 많은 일들에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길티플레져’라고 할지라도.
2.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삼층에는 여덟 개의 취조실을 배치해야 했다. 공간을 설계할 때는 요령과 경험도 필요하나 그것만을 불가결이라 할 수 없었다. 불가결은 상상력이었다. 무형의 공간에 선을 더하고 면을 채우고 종국에는 인간까지 집어넣는 일. 그곳에서 살아갈 인간을 위한 자문자답은 기본이거니와 미학과 독창성까지 살리는 일. 그것이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불가결이었다. 한데 이 취조실은 채우면 채울수록 공허함만 커졌다. 건축의 본질이나 사명, 순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가라앉고 이제는 세속이나 명욕 같은 불순물만 남았다고 여겼던 여재화였지만, 이 공간과 이곳에서 머무를 이들이 상상할 때면 잊었던 초심이 저변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건축 위에 사람이 있다고 믿었던 한 시기가 서서히. (180쪽)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중.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있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 '구의 집'을 읽으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과연, 생각이 도덕적이지 않다면, 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결국 우리의 생각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구의 집'은 건축과 스승 여재화와 그의 제자 구보승의 이야기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건축물의 건축과정에 대한 구보승의 집념이 읽는 내내 무서웠다. 건축은 인간을 위함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여재화는 취조실을 건축하게 되자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줄 제자 구보승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구보승은 여재화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자신의 그릇된 신념을 끊임없이 건축에 담아낸다. 평론가가 이 글에 대하여 비평한 '목적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이 없을 때,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식으로 말하자면 그에 대해 사유하기를 고의적으로 미룸으로써 자신이 택한 길을 상투적으로 걸으려 할 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거대한 폭력에 열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부분이 온전히 이해되었다.
우리는 삶에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할까?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게 익숙하여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때가 많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사는 것 같아서 반성이 되기도 한다. 구의 집을 읽고는 생각의 방향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생각의 방향이 그릇되는 것도 문제인 것 같다. 내 생각은 무엇을 향해야 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가야 할까? 작지만 선한 가치의 방향을 나는 잊어버리지 말아야겠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손에서 뗄 수 없었다. 몰입도가 정말 좋은 책이었다. 술술 읽히면서도 마음속에 묘하게 생기는 불편한 죄책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게 이 소설이 가진 힘인 것 같다. 소설이 가져야 하는 많은 가치들이 있겠지만, 내게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나의 삶에 대한 성찰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은 내게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오래, 아주 오래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길티플레져'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언제였으며, 어떤 마음이 죄책감보다 좋아함을 더 크게 만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요즘 자신의 생각이 머무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그 생각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