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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시간 157. 우리는 나란히 계절을 쓰고

#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_김미리 X귀찮_밝은 세상

by 벼리바라기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많이 들면 고향에 내려가고 싶단 생각을 종종 한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유아시절부터 결혼을 하기 전까지 경상남도의 벚꽃이 예쁜 동네에서 살았다. 철길이 있는 마을이었고, 바닷가의 인접한 동네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결혼을 하고 수도권의 지역으로 올라왔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앓이를 한다는 데 내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지하철과 교통이 발달된 도시에서의 삶이 나는 익숙하고 편하고 좋았다.


사실, 고향이지만 본가는 농사를 짓는 시골도, 고기잡이를 하는 어촌도 아니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마음이 잦아졌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철길이 있는 도로에서 조금 올라와, 낮고 낮은 지붕들이 맞닿은 주택가에 작은 글방을 하나 만들어 살고 싶은 마음, 좁디좁은 마당에서 파와 상추를 심어, 라면을 끓여 먹을 때 그 파를 쑥쑥 잘라 넣어 먹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늘 낮게 출렁이고 있음을 잘 안다. 그때 만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1. 계절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


제가 이 편지를 스는 이유는 궁금증 때문입니다. 주말이면 충남 금산의 시골 마을로 향하는 사람이, 경북 문경의 산 아래 집에 사는 사람에게 갖는 궁금증이랄까요. 주말 시골 살이를 시작한 후, 저는 매 계절의 경계를 종종거리며 계절을 마중하고 또 배웅합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이 하는 크고 작은 일에 감탄하며 무언갈 기록하고요. 자주 봤지만 이름을 몰랐던 식물의 이름을 외우려 애쓰고, 마당과 뒷산을 오가는 동물들의 얼굴을 익히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곁에 두고 사는 행복을 누리다가, 어느 날 마을 한구석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줄곧 도시에서 살 때와는 다르게 무언가 태어나고, 자라나고, 사라지는 일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제 기쁨이자 슬픔입니다. (21쪽_김미리 작가님)



이 책은 충북 금산에 두 번째 집을 두고 '오도이촌'의 삶을 살아가는 김미리 작가님과 경북 문경에서 살고 있는 귀찮 작가님의 교환편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부제, ‘두 자연 생활자의 교환 편지’처럼 각 계절을 지나고 있는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좋았다. 내내 도시에서 살다가 방학 때 잠깐 시골 근처에서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가득한 내게 현실적인 조언처럼 다가온 책이기도 하다. 시골살이의 명과 음을 발견하고 보여준 책, 그러면서도 끝내 마음은 시골에서 살아봐야지 다짐하게 해 준 책이다.

김미리 작가님은 주말 시골 살이를 하면서, 계절의 경계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계절을 마중하고 배웅한다. 지금은 12월이다. 겨울이지만 며칠은 따뜻했고, 다시 추워졌다. 낮에는 햇살에 등이 잠시 데워지기도 하는 시기다. 나는 겨울을 마중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온 것 같지만 한편으로 오지 않은 것도 같은 겨울이다. 추운 계절을 참 좋아한다.


학교에서 근무하면 학교 숲의 사계절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봄에 만났던 찔레꽃은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바짝 마른 가지에 씨앗을 달고 있었고, 가을의 백일홍은 크지 않은 붉은 꽃을 떨구고는 꽃보다 큰,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고픈 씨앗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겨울은 겨울대로 그렇게 씨앗 속의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게 된다. 봄엔 저 자리에 찔레꽃이 피겠지, 가을엔 저 자리에 백일홍이 피겠지, 그런 마음.


작가님은 시골살이를 통해 식물의 이름을 외우려 애쓰고 동물의 얼굴을 익히려고 노력한다. 시골에서 맛보는 기쁨과 슬픔을 일상 속에서 발견하려고 나도 노력하고 있다. 반찬집을 지키는 고양이 복실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올해는 꽃이 피어 기쁨을 기다리게 만들었던 산천나무의 꽃을 기다리며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다가올 2026년도에도 나는 나를 둘러싼 자연의 변화를 감탄하며 살아가겠지, 그런 마음으로 마음이 포근해졌다.


2. 불편한 삶을 고집하는 마음


그럼에도 이 불편한 삶을 고집하는 건 작가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연에서 얻는 위로와 감상이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때문 같아요. 저 역시 막막하고 두려운 일들, 경솔했던 행동, 돌이킬 수 없는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자연 속을 거닐다 해결될 때가 많거든요. 물결처럼 일렁이는 논,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운 산등성이, 홀로 마을을 비추는 달, 자연이 선물한 순간을 만날 대마다 머릿속에 꽉 차 있던 문제를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깨달아요. 그 모든 게 사소한 일임을요. 이런 자연 속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무겁게 느껴졌던 일과 덤덤히 마주할 용기를 주더라고요. 흰뺨검둥오리와 중대백로를 보며 왈칵했던 작가님의 마음도 이런 감정 아니었을까요? 그렇기에 저 역시 조금 귀찮고 힘들어도 자연에 기대어 살 수 있는 이 삶을 스스로에게 가능한 한 오래 선물해주고 싶어요. 막막하고 힘들면 언제든 달려가 위로받을 수 있는 일상을요. (209쪽_귀찮)



‘귀찮’ 작가님의 그림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클래스 101에서 진행하는 드로잉 강의였다. 책을 읽을 때 처음엔 몰랐다. 한참을 읽다가, 책 중간중간에 그려진 작은 인물 드로잉을 보고는 예전에 들었던 강의가 생각났고, 마냥 신기했다. 이렇게 작가님의 그림 강의가 아닌 글을 읽을 수 있구나, 그런 마음에 재밌고 좋았다.

귀찮 작가님은 문경에서 생활하고 있다. 시골살이가 불편할 수 있지만 귀찮 작가님이 그 생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건 자연에서 얻는 위로와 감상이 정말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자연 속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히려 무겁게 다가왔던 문제를 덤덤히 마주할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잔잔히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나도 그러했기에, 나도 그러한 경험들이 있었기에.

살면서 참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저지르며 산다. 추구하는 삶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너무 달라 민망해질 때가 많다. 그런 날일수록 집에서 나와 무작정 걷는다. 오늘 같이 차가운 바람이 손끝을 시리게 만들 때면 걷는 발걸음이 더 가벼워지기도 한다. 나는 머리를 에일 듯 한 추위가 좋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한없이 부끄러웠던 마음이 차츰차츰 가라앉아 다시는 그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또 부끄러운 행동을 반복하는, 연약한 사람이다. 그래도 자연의 어떤 풍경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걸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참 좋다.


3. 정리


방학이 다가온다. 이번 방학에는 완주에서 며칠 지내보려 마음을 먹었다. 지난여름에 머물렀던 전주의 기억이 참 좋아 이번엔 전주 옆 동네 완주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겨울의 완주는 어떤 모습일까? 이번엔 최대한 동네를 벗어나지 말고 살아야지, 동네 구석구석 마실을 다니듯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고 살아야지, 그렇게 다짐해 본다.

온전히 시골살이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시골과 가까운 동네에서 작은 나를 인정하며 살아가고 싶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계절을 마중하고 배웅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이며, 그 계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지키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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