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경린 장편 소설_밝은 세상
2007년에 나온 '엄마의 집'이란 소설의 개정판이다. 제목이 '자기만의 집'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그때 읽어보지 못한 책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내게 다가온 이유가 있겠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십 대 딸과 사십 대 엄마의 이야기가 어쩌면 나의 모습과 딸의 모습, 내 엄마의 모습과 그 시절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 몰입하며 읽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고는 한참을 '사랑'에 대하여 생각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가끔, 때때로, 어쩌면 자주 느끼는 반면,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결혼한 지 오래되기도 하였고, 사랑 아닌 정으로 사는 세월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주인공 '호은'이 엄마 '윤선'에게 하는 "엄만 아저씨를 사랑한다는 거 어떻게 알아?"라는 질문이 나에게 던져진 듯 오래오래 고민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지? 어떻게 나의 사랑을 확신하지?
주변의 친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여 일 년이 조금 넘은 딸에게도 물어봤고, 결혼한 지 이십여 년이 넘은 선생님께도 여쭤봤다. 그러면서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었다.
1. 엄마의 사랑
춘권을 먹다 보니 그사이에 엄마의 얼굴이 불 켠 종이 등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뺨은 홍조를 띠고 피로도 간 데 없이 표정이 청량했다. 헤어스타일도 그사이 자리를 잡아 우아하고 더 젊어 보였다. 아저씨도 온몸에 힘이 가득 차오른 듯 단단하고 팽팽했다. 소심한 인상은 사라지고 두 눈 속에 관대함과 충만함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생명의 제5원소 같은 초록색 파동이 바글바글 끓으며 서로의 몸속을 넘나들고 주변까지 물들이는지 모른다. 나는 다름 아닌 바로 그 모습 때문에 꼼짝없이 두 사람을 승인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근원을 알 수 없는 불가해한 광채가 난다. (124쪽)
사십 대 윤선은 남편과 이혼하고 홀로서기를 위해 호은을 친정에 맡긴 채 일을 하고 집을 마련한다. 호은과 다시 살게 되었을 때, 윤선은 호은과의 삐걱거리는 시간을 견디고, 이혼 후 만나 민경과의 사이에서 사랑을 재확인하며 그렇게 나이 들어간다.
사십 대 윤선의 삶을 보며,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내가 열두 살 때 아빠와 사별했다. 아빠가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두 분은 계속 여행을 다니셨다. 폐암인 걸 아신 아빠의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빠와 엄마가 함께 산 세월이 12년. 아빠가 돌아가신 후 몇 년 뒤 엄마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기셨다. 나의 결혼식과 출산 등 나의 시간에 아빠의 자리를 메워주신 분.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이십여 년을 함께 연인으로 지냈지만, 그 끝은 이별이었다. 아저씨는 엄마의 사십 대와 오십 대, 어쩌면 남편보다 친구가 더 필요했던 그 시기에 남자친구로 엄마의 옆에 있어주셨다. 육십 대가 되었을 때 아저씨는 엄마와 함께 살기를 원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거절했고, 그것이 이별의 이유가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도 일 년에 한 두 차례 만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처럼 그렇게 지냈셨다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사십 대 남편의 존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엄마의 그 젊디 젊은 시절에 아저씨는 남편으로, 또 친구로, 그렇게 엄마의 곁에 있어주셨음을, 엄마에게 그 시간은 사랑이었다.
청소년기 아빠의 자리를 꿰찬 아저씨가 한 번도 밉지 않았던 것은, 돌아가신 아빠보다 살아계신 엄마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혹여 엄마가 아플까, 엄마마저 우리를 떠날까, 나는 그게 더 불안했다. 하지만 아저씨와 만나는 엄마는 지극힌 안정적이었고, 어떤 자리에든 아저씨와 동행했으며, 여행버스를 운행하는 아저씨를 따라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니셨다. 그게 엄마 삶의 안정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어릴 땐 막연하게 느낌으로만 알았던 일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나이가 들면서 더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엄마의 행복이 자녀에게 미치는 그런 영향들처럼. 그 시절 엄마는 사랑을 했고, 우리는 엄마의 그 행복 아래 지극히 평온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 속 윤선의 사랑이 딸 호은으로 인해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내내 책을 읽었다.
2. 딸의 사랑.
사랑이 다신 온다 해도 난 뒷걸음질할 것만 같다. 사랑은 나를 격정적으로 만들고, 균형 잡힌 관계들을 훼손시키고, 내 일상의 페이스를 무너뜨린다. 내 사랑에 대해 내가 보는 눈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눈은 다를 것이다. 무엇보다 사랑은 반드시 끝이 난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중략>
사랑이 시작되면 나는 두근거림보다 먼저 슬픔에 젖을 것 같다. 내 속의 어둠과 허기와 이기심을 들여다보며, 나는 사랑을 시작할지 말지 망설일 것이다. 나 같은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180쪽)
호은은 고등학교 때 후배 K와의 사랑에 상처를 안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랑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으며,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바람,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 등 사랑의 감정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스무 살의 나는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남학생들과는 말도 잘하지 못했다. 호은이가 자기 안의 어둠과 허기와 이기심을 바라볼 때 나는 내 안의 작은 자아를 더 웅크리고 더 작게 만들었었다. 그런 나에게 그가 다가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이 늘 그리웠던 나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고, 많이 싸웠으며, 금방 포기해 버렸다. 어떤 기대감을 버리고 나니 좀 더 편안해지긴 했다. 그래도 다정한 그이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은 지루할 정도의 평화이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랑은 바라지 않아도 늘 있어. 너를 바라보는 이 순간에, 햇빛 속을 걸을 때나 비 오는 날 우산을 펼칠 때, 한밤 중에 창문 밖에 걸린 반달을 볼 때도,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할 때도, 차 한 잔을 마시거나, 홀로 먹을 밥을 끓일 때에도, 아침 일곱 시와 오후 두 시와 밤 열한 시에, 사랑은 늘 거기 있어. 많은 마음이 차오를 때까지 깊은숨을 쉬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273쪽)
윤선은 호은에게 ‘타인에게 사랑을 바라지 않게 되는 순간’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다. 그 말에 공감이 되었다. 이건 사랑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인해 살 수 있다는 말같이 느껴졌다.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충만함, 그것이 오히려 타인을 더 깊이 사랑하게 하고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윤선은 딸 호은에게 말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3. 정리
이제 스무 살 초반의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남자친구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하루의 끝에 늘 생각나는 존재가 남자친구이고, 그럴 때 자신이 남자친구를 참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단다. 결혼하신 지 이십 년이 넘은 선생님께서는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내의 마음에 다가가려 애쓰는 자신을 볼 때 아내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셨다. 사랑은 결국 누군가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각자가 머물 수 있는 집을 지어주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을 읽고 한참을 내 사랑에 대하여 생각했다. 여전히 나는 나를 사랑함으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침 일곱 시와 오후 두 시와 밤 열한 시에 사랑을 느끼며 그렇게 살고 있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당신이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2) 나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어떤 모습으로 자기만의 집을 만들어 갔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