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시간 159. 뭐 어때

# 오은 산문집(2020~2025)_난다

by 벼리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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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학교에서 진행하는 시인님 강연회에 다녀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었지만 ‘오은 시인님’이 오신다는 공고를 보고는 한달음에 신청했다. 창비 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시가 실려 있기도 했고,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시리즈 중, ‘초록을 입고’를 정말 재미있게 읽어 시인님의 이야기가 많이 듣고 싶었다.

‘오늘 한 장면, 오늘 한 구절’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강의였다. 책에서 상상했던 시인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수다쟁이이지만 섬세한 옆집 동네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또 책에서 늘 이야기하는 언어들, 국어사전을 좋아하는 시인님의 모습을 확인하고 발견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강연이 끝나고 시인님의 책 ‘뭐 어때’를 읽으면서 강연에서 이야기하신 말씀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2025년도를 보내고 2026년도를 맞이하는 지금, 참 시의적절한 책이 내게로 다가왔다.

그렇게 시작한 올해의 첫 책, ‘뭐 어때.’


1. 귀담아듣는 일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나의 자리가 있었다. 내 자리 앞에는 매번 나의 스승이 앉아 있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삶이 있었다. 귀 기울일수록 더 생생해지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 시절이 흘러간다. 말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나는 듣는 사람이었다. 잘 말하기 위해, 아니 제대로 듣기 위해 꼼꼼히 책을 읽었다. 읽는 일은 겪는 일이었다. 그가 이미 한번 겪는 일을 머릿속에서 다시 겪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지평이 넓어지는 것은 물론, 내가 그간 일궈왔던 땅이 더욱 비옥해지기도 했다. (중략)

그 시간 안에서는 쓰기 이전에 읽기가, 말하기 이전에 듣기가 있었다. 보이지 않는 벽이 허물어지면 나를 둘러싼 세계가 한 뼘 더 넓어졌다. 듣는 일은 귀하다. 가려듣는 일은 보람차다. 귀담아듣는 일은 장하다. 귀함과 보람참을 거쳐 장함에 도달하는 일, 지난 육 년 삼 개월간 팟캐스터로서 사는 삶이 내게는 그랬다. (225쪽)



팟캐스트의 마지막 방송을 끝낸 후 시인은 ‘장하다’라는 선배의 문자에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한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부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시인에게 스승이 되어 준 ‘책’에 대하여 오래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언제 책이 좋았을까?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단단한 표지의 두꺼운 그림책으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 있기도 했고, ‘소공자‘와 ’ 소공녀’ 같은 명작 동화를 읽느라 시간 가는 것을 잊기도 했다. 학창 시절 늘 문예반이면서 지역 도서관에 오래된 책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는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삶을 듣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도 소설은 소설대로, 산문은 산문대로 인물의 내면 그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상처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참 좋다.

시인님은 제대로 듣기 위해 책을 꼼꼼히 읽었고, 책 속의 삶을 다시 겪었고, 지평이 넓어졌으며, 몰랐던 세계로 인해 편견이 깨지고, 다시 깨어났다고 말씀하신다. 시인님이 책을 대하는 태도에서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연히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이해가 나의 성장으로 이어졌음을, 책을 통해 나의 시선이 내 안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갔음을, 그래서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되었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나는 책을 여전히 많이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속의 이야기를 더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2. 글 쓰는 일.


개인적으로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과 나태함이라는 이름의 담을 넘어야 했다. 쓰는 습관이 익숙해질 때쯤 어김없이 찾아오는 담인데, ‘이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머릿속에서 기분 나쁜 종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그 소리에 맞춰 머릿속에 재빨리 담이 세워진다. 그럴 때면 ‘연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시는,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인 담과 개인적인 담이 내게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계속 떠올리게 하는 셈이다. (135쪽)

글쓰기도 어떤 점에서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와 불화하며 나를 수용하기, 발가벗은 나를 마주하기, 겉을 응시하며 속을 꿰뚫기, 글쓰기에서 꾸준함이 중요한 이유가 그저 글쓰기 능력 향상에 있지만은 않다. 내 속을 뜯어보는 것은 으레 아프고 자주 불쾌한 경험이다. 모든 발견이 희열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싫고 못마땅하고 밉고 못생긴 나를 직면하는 데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달아나는 척하며 본격적으로 연루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건에. (259쪽)



우연한 기회에 교육 관련 언론에 글을 쓰게 되었다. 열두 편의 글을 써 가는 중이다. 처음에는 그런 기회가 내게 다가옴이 신기하고 좋아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고 브런치가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마냥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두려워졌다. 글을 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뭔가 일상을 보여준다는 것이 부끄러워졌으며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랬더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시인님이 말씀하신 ‘담’을 만난 기분. 시인님이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회적인 담과 개인적인 담은 시인님으로 하여금 연상을 멈추지 않게 하고 시를 이어가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글 쓰는 두려움에 멈칫했다. 단순히 일기를 쓰는 것과는 다른 어떤 차원의 소통이 나로 하여금 담 뒤로 숨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건, 무엇 때문일까?

시인님은 글쓰기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이야기하신다. 그 어떤 불편한 경험을 직면하는 용기를 가지고 ‘나’라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일이 글쓰기임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도 결국은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며, 아프게 지난 시간의 나를 벗어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새로이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올해 나는 여전히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좀 더 깊이 있게 발견하는 내가 되고 싶다.


3. 정리.


2026년도의 첫 책, ‘뭐 어때’는 나의 올해의 시작을 다짐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여전히 시인님의 다양한 언어가 책 속에 담겨 있었고 어휘에서 발견하는 세상을 향한 다정함이 따뜻하게 머물러 있었다. 책에 적어주신 시인님의 글 ‘뭐 어때? 마침내 깃들었는데!’라는 구절처럼 책 읽기와 글쓰기에 온전히 깃든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야기 나눠보기]

1) 2026년도 가장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마침내 깃든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아프지만 자신을 성장하게 만든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 일로 인해 어떤 성장을 경험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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