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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May 08. 2023

책들의 시간 33_아라의 소설

# 아라의 소설_정세랑 미니픽션_안온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피플’ 책을 참 좋아한다. 독서모임에서 그 책을 읽었을 때, 참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경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는 여러 사람의 모습이 나온다. 숨이 턱 막힐 만큼의 어렵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폭풍우 속에 휘말린 어찌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다시 힘을 얻곤 한다. 그런 작가님의 책이었다. 이번 책은. 제목도 ‘아라의 소설’ 왠지 넓은 언덕이 펼쳐진 그런 느낌이 드는 제목의 소설. 그래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피프티피플’ 생각이 많이 났다. 이번 ‘아라의 소설’은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엽편’. 짧디 짧은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각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또 콜라보로 제작된 소설이 많았다. 패션잡지나 미술 전시회를 기념하여 지어진 소설. 그래서 공간적 배경이나 소설의 이야기들이 다채롭고 좋았다. 다른 영역과의 융합. 무엇보다 소설이,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삶 속에 있음이 나는 참 좋았다.    

  

1. 잘 속지 않는 세대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나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일. 


  아라도, 아라의 친구들도 작은 집에 살고 있어서 물건을 살 때는 오래 망설이고 경험을 살 때는 상대적으로 망설이지 않는다. 운동을 배우고, 강의를 등록하고 여행을 간다. 원데이 쿠킹 클래스를 듣지만 집에 오븐을 설치하지 않거나, 전자책을 읽고 유료 독서 모임에 나가긴 해도 종이책은 신중히 사는 식이다. 부동산 때문에 윗세대하고는 물론 같은 세대 안에서도 점차 격차가 커지고 있었다. (중략) 청장년기를 지나 중노년기에 접어들어 수입이 적어지면,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할지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 상상이 힘들어 일단은 일상을 가볍고도 풍성하게 꾸려나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끝없이 성장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윗세대가 오해하듯이 나른한 패배주의에 빠진 것이 아니고, 그저 팩트들이 가리키는 지점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속지 않으면서, 속이려는 모든 시도들이 실없다고 여기면서, 이 작은 행성에서 무언가가 무한하게 성장할 거라고 주장했었다니, 그런 걸 예전엔 잘도 믿었구나 싶었다. 20세기의 진취적이고 무책임한 표어들이 힘을 잃어갈 때 태어난 걸 뭐 어쩌라고? 잘 속지 않는 세대에 속했다는 것에 만큼은 자부심이 있다. 참지 않는 세대에 속했다는 것에도. (183~184쪽)


  이 소설은 단편보다 짧은 미니 픽션들이 모여 있는 책이다. 단편보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 잘 담아내고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 ‘아라’이다. 불렀을 때 물이 흐르는 듯은 느낌의 이름. 아라. 무언가가 끝없이 펼쳐진 듯한 느낌이 주는 무한한 상상력의 이름. 이 구절이 나오는 부분의 단편 제목은 ‘아라의 우산’이다. 월급이 30만 원인 시절에 3만 원짜리 우산을 산 아라의 삶. 결코 사치가 아니다. 소설 속에서는 요즘의 세대를 위의 구절처럼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공감이 갔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므로, 추구하는 삶의 모습도 형태도 다름을 잘 알고 있다. 부동산 때문에 위세대하고는 물론 같은 세대 안에서도 격차가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분명 가치관의 문제이다. 흔들리지 않을 그런 마음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다. 

  집을 소개하기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너무 작아서. 방도 작고 거실도 작아 덩치 큰 두세 사람만 앉아 있어도 꽉 차는, 그래서 누군가를 초대하기가 쉽지 않은 집이다. 어릴 때는 넓고 큰 집에, 서재가 있어야 하며, 때때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그런 집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어릴 때 살던 2층 주택 마냥 마당이 있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중·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2층 주택에서 살 때는 사실 몰랐다. 그때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고. 근데 나이가 들수록 다시 주택에 대한 열망이 생긴다. 마당 있는 집. 하지만 안다. 나는 작은 집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며, 혼자 조용히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걸 알고 나니, 더 이상 큰 집이 부럽지 않았다. 작은 집이지만, 조용한 우리 집이 참 좋다. 마당은 없지만 화분 텃밭을 만들 수 있는 그런 베란다가 있는, 나오면 하늘과 달과 구름과 별을 볼 수 있는 그런 집이 좋다. 

  요즘의 세대를 잘 속지 않는 세대, 참지 않는 세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건을 살 때는 망설이지만 경험을 살 때는 망설이지 않는 세대라고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참 좋다. 그런 세대.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 젊은이라 다 그런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렇게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나가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응원하게 된다. 많은 사람의 시선 속에서, 사람들의 표준화된 가치 기준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2. 연애소설


  변덕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현실 세계의 연애가 참혹할 때 그것에 대한 환상을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 세상이 드물게 나쁜 사람들과 평이하게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믿던 시절엔 마음껏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달콤하고 달콤해서 독할 정도인 소설을. 아라는 사랑을 믿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를. 모두가 무심히 지나친 특별함을 서로 알아봐 주는 순간을. 연예소설을 사랑했고 연애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3일에 한 명씩 여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 성매매 산업의 거대하고 처참한 실태를 알아버린 다음에, 화장실에 뚫려 있던 구멍들이 뭐였는지 깨달은 다음에, 디지털 성범죄 추적 기사들을 내내 따라 읽은 다음에 아라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죽어버렸다.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인으로 제대로 기능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는 시민이기만 해도 로맨스는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스스로가 얼마가 순진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29~30쪽)


  나는 연애소설이 좋다. 아니, 연애와 관련된 이야기들도 참 좋다. 그래서 따뜻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눈부신 연애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 그 모든 것이 나는 다 좋다. 또 모순되게도 실패한 연애, 이상한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도 좋다. 그래서 수요일 저녁, 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다시 보기로 보는 ‘연애의 참견’을 참 좋아한다. 그걸 보면서, 나의 일상은 매 순간 발견되는, 혹은 발견하는 사랑으로 그렇게 이루어져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 감사하게도. 

  이 단편은 아라가 더 이상 연애 소설을 쓸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라는 사랑을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라고 믿었었다. 그 믿음이 깨어지게 된 것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이었다. 나도 뉴스를 볼 때면, 무섭다. 산책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어제 본 그 뉴스가 생각나면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뒤를 돌아보게 되고,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사랑과 성이 별개가 되어버린 세상에 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상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것은 사랑, 사랑이다. 아침에 운동장을 걸으면서도 잠은 깼나, 출근은 잘했나 궁금해지고 점심은 먹었나 궁금해지는 것, 그리고 내가 먹은 것을, 내가 본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나에게는 그렇게 사소하고도 사소한 것이 사랑이다. 물론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해한다고 믿었던 순간의 배신이 참 많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사랑은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되어주기는 했다는 것을. 내 마음이 온전할 때에만 사랑이 가능했다는 것도.      


3. 정리.      


  재미있다. 매력적인 책이다. ‘피프티피플’의 순한 버전을 읽는 느낌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처럼 이야기가 이어지는 곳에서 누군가가 생각나는 책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를 응원하게 되는 책이기도 하고. 소설이 현실을 다 반영할 수 없으며, 소설의 환상적인 모습이 현실과 같지 않아 소설을 읽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발견하며, 나의 길의 방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히려 환상이 주는 위로도 삶을 살아가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요즘의 세대는 어떤 세대인지 자신만의 정의를 내려 봅시다. 또한 당신은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당신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과거형이든 현재진행형이든,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든 어떤 연애든 당신의 달콤하다 못해 독한 당신의 연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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