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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Sep 04. 2023

책들의 시간 50. 뇌전증 일기

# 뇌전증 일기_글, 그림 부엉이처방전_감수 김흥동, 신이진_위즈덤하우스

  좋은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책이 내게 참 좋았던 이유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으며, 내가 몰랐던 어떤 부분들에 대하여 알 수 있었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때문이었다. 


먼저 출간 제안을 주셨던 편집자님의 말대로 방향성을 내게 있었던 일 + 사회적 시선 + 기타 등등으로 잡고자 했으나 국내에 간단히 읽기 좋은 정보성 뇌전증 책이 아직 없다는 사실부터 시작해 질병 특유의 증상으로 인해 환자에 대한 편견이 막연하다는 사실, 뇌에 발병하는 복잡한 병이라 환자조차도 모르는 정보들이 아직 많다는 사실까지! 제 안의 욕심쟁이가 이것저것 들먹이며 정보를 최대한 많이 실어보고자 부추겼습니다.(173쪽)


  뇌전증이라는 용어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병이 예전엔 ‘간질’이라고 불렸던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읽고 싶었다.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있었고, 나이가 들면서 작은 질병이라도, 겁이 나기 마련이라, 이건 ‘무슨 질병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런 궁금함이 책을 손에 들게 했다. 

  그리고는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마음이 꿈틀꿈틀했다. 무지했던 어떤 것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편견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구나, 그런 것에 대한 생각. 또 결국 사람이란 경험했던, 알고 있는 그만큼만으로 세상을 보는구나, 그래서 앎이 중요하구나 그런 마음들.     

 

1. 뇌전증, 누구나 발병할 수 있는 질병.     

 

  중학교 때 ‘뇌전증’을 앓고 있던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사실 1990년 그때에는 ‘뇌전증’이란 용어가 익숙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오후 시간대의 수업시간이었다.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그 친구가 쓰러졌고,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몸을 떨기 시작하였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정말 거짓말처럼 원을 이루며 멀찍이 서서 바라보았고, 선생님이 반장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것 같더니,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이내 괜찮아져서 다시 수업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수업시간 내내 그 친구를 몰래몰래 쳐다보았다. 무서워서. 1992년 중학교 2학년, 그 친구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친구의 병이 ‘간질’이라고 했으며, 내 기억 속 ‘간질’은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병이라는 것으로 정의 내려져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내가 교사가 되어 담임이 되었을 때, 학급의 학생 중 ‘뇌전증’을 앓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부모님이 작성한 학생건강일지를 보고, 유의사항을 보면서, 내가 알던 ‘간질’이 ‘뇌전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자신만의 경험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앎의 힘이 이리도 중요한 것이구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뇌전증’은 2010년 대한의사협회에서 비하의 어감을 담은 병명을 폐기하고 명명한 용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뇌전증’이란 용어보다 ‘간질’이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있으며, 원인이 불명확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증상만으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책을 통해 ‘뇌전증’의 발병 원인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며, ‘뇌전증’ 환자가 발작으로 쓰러진 경우, 의식불명의 사람에게 행해지는 심폐소생술이 위험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뇌전증’의 증상이 다양하다는 것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처럼 이 책은 익숙하지 않은, 하지만 누구나 발생할 수 있는 ‘뇌전증’이란 질병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2. 우리 주변의 다양한 문제들. 


  얼마 전 연예인의 병역기피 비리에 관련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병역 문제가 청년에게 있어 때로는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군대의 문제에 대한 청년의 고뇌와 힘듦을 온전히 다 공감은 못하더라도, 크게 이해하려 노력할 때가 많다. 아들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더 할 것 같단 생각도 들고. 그런데 기사의 병역기피 비리 문제에 연예인이 ‘뇌전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한 점이 문제가 되었음을 보았을 때 실제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에서도 일상 속에서 겪는 편견의 문제들에 대하여 작가가 다루고 있다. 그 한 꼭지가 뇌전증과 병역비리 문제였다. 


  ‘뇌전증’의 발현 증상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실제 말을 하지 않는 경우,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아픔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전증’을 앓고 있다고 밝히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에서의 편견, 직장에서의 소외, 기회 참여의 박탈 등 더 다양한 문제가 그 사람들에게 다가온다. 말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그런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을 마주쳤을 때 선택의 순간에 좀 더 현명하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하여. 


  몇 년 전 담임반 학생이었던 그 친구는 ‘뇌전증’을 앓고 있었지만 다행히 일상생활에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이 년 동안 발작을 일으킨 적도 없으며,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느린 학생이었다. 내가 그때 그 아이의 느림을 잘 이해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 두렵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때 왜 나는 한 번도 ‘뇌전증’에 대하여 알아볼 생각을 못했을까, 그런 반성도 든다. 우연히 읽게 된 책을 통해 그때 내가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이해의 폭이 넓었을 것이며, 다른 방향의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반성이 되지만, 그것을 양분 삼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나는 지금, 간절히 소망한다.      


3. 정리.      


  책을 읽고 있는데, 한 학생이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이 읽으시기엔 너무 쉬운 책 아니에요? 학생의 질문에 바로 답해주었다. 아니라고, 선생님의 무지를 깨닫게 해 주는 책이라고,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고. 학생은 만화책이어서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물론 알지 못하던 어떤 것에 대하여 쉽게 설명하고 있어 그런 의미의 쉬운 책은 맞다. 하지만 소설가 정세랑 님의 추천서 내용 중 ‘탁월함이란 흔한 게 아니겠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병마다 이토록 정확하고 사려 깊은 책이 존재한다면’의 구절을 빌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참 탁월한 책이다. 좋았다. 우연히 발견한 선물 같은 좋은 책.     

 

[이야기 나눠 보기]
 1) 혹시 ‘뇌전증’에 대하여 알고 있었습니까? 알고 있다면, 어떤 계기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책을 통해 앎을 경험했던 순간이 있습니까? 어떤 책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자신의 경험을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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