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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16. 2023

책들의 시간 55. 괜찮아

#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_손미나 지음_코알라컴퍼니


  산티아고 순례길은 방송에도 많이 나오고, 이야기도 많이 들어 그냥 익숙한 느낌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왠지 언젠가는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참 많이 드는 곳. 가끔씩 방송이나 책에 나오는 순례길의 상징 같은 조가비를 볼 때면, 나도 가지고 싶다는 그런 마음도 들고. 종교적 마음도 없는데 막연히 그렇게 긴 길을 걷는다는 게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늘 그런 이유들이 궁금했다. 순례길로 이끄는 그 마음의 움직임. 또는 사연들. 사연을 안고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로이면서 일탈이 순례길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그런 이끌림으로 망설임 없이 선택하여 읽었다.      


언젠가, 당신도 그 길이 부르는 때가 오거든 주저 없이 한 번쯤 떠나 보기를! 그러나 혹여 현실을 뒤로하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하여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단언컨대 산티아고 길이 주는 선물은 우리 삶의 도처에, 무엇보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떻게 그것을 발견하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295쪽)


  책은 참 편안하게, 수월하게 읽혔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김숙, 송은이가 방송하는 ‘비밀보장’에서 처음 들었다. 워낙 김숙의 팬이라, 김숙이 추천하는 콘텐츠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이 책의 중간중간에 QR코드가 있고, 그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작가의 모습을, 순례길의 자연을 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재미가 있는 책.      


  오후가 되면 육신은 어김없이 녹초가 되고, 발바닥엔 더 이상 감각이 없다. 그런데도 저 멀리 마을이 보이면 힘이 솟고 뜀박질하듯 빠르게 다리가 움직인다. 

  그 힘의 원천은 이런 것이다. 항상 그날의 목표지점이 있고, 그 목표만을 생각하며 걷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 큰일 해낸 듯한 만족감이 있다. 그야말로 성공과 행복의 열쇠라는 스몰윈스 Small Wins!(75쪽)


 요즘도 열심히 걷고 있다. 요즘 같은 가을날의 선선함과 맑음이 정말 좋아서 걸으면 행복해진다. 나는 그렇게 걷는 게 참 좋다. 하지만 나는 산보다는 평지의 길을 걷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산을 좋아하지만 등산을 하지는 않는 것. 뭐 그런 이중적인 마음. 한동안은 걷는 데 목적이 있는 걷기가 좋았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거나 지하철역을 걷는다거나 그렇게 이동 장소 중 한 곳을 걸었다. 그런데 요즘은 목적 없는 걷기가 좋다. 그냥 그냥 걷기.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땐 작가의 말처럼 목적이 있는 걷기가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걸으며 마을과 마을을 넘어가는 시간. 마을이 보이는 순간에 샘솟는 힘. 


1. 참 좋았던 나만의 순례길. 


  좋아하는 길이 있다. 사실 좋아한다고 말은 하지만 많이 가보지 못했다. 딱 두 번의 방문. 그리고는 여태껏 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길이 나에겐 참 좋았던 나만의 순례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첫 번째 그 길에서의 여행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선운사 가는 길이 나에겐 그렇다. 대학교 1학년 때 문학기행으로 갔던 곳이었고 그다지 먼 여행을 해보지 못한 스무 살의 어린아이에게 선운사 가는 길은 뭔가 모를 자연 속에서의 여유를 주었던 거 같다. 그 마음을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선운사에 이르는 그 산책로가 나는 참 좋았다. 옆으론 계곡물이 흐르고, 나무는 울창하고 걸음은 한없이 느려지던 곳. 그리고 황톳길. 선운사에 대한 기억이다. 일상에 묻혀 살다가 다시금 문득 선운사가 떠오를 때가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선운사에서


  시를 만났을 때에도 좋아하는 누군가가 갑자기 확 떠올랐을 때에도, 일에 지쳐 조금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에도 그렇게 선운사의 길이 떠오른다.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확 일어나 마음이 일렁일렁한다. 근데 이상하게 선운사 가는 길은 혼자 걷고 싶지 않다. 혼자 걷는 길을 좋아하긴 하지만, 선운사 가는 길은 꼭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더 못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 ‘나만의 순례길’이 되어 버린 고창 선운사 가는 길. 그런 길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사는 것도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2. 가고 싶은, 걷고 싶은 길. 


20세기 들어서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러다 1993년 유네스코가 이 길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고, 1997년 출판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세계적인 밀리언 샐러가 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종교적인 의미를 더해 누구나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경험, 혹은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는 일종의 문화 코드로 자리 잡았다.(16쪽)


  산티아고 순례길은 참 걷고 싶은 길이다.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차승원과 유해진의 모습을 담은 방송도 있었고, 순례길을 다룬 책들도 참 많아서 정말 작가의 말처럼,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열망이 있다. 

  요새 아이와 함께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참 아름다운 길들이 많음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버킷리스트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장태산 자연휴양림도 가고 싶고, 독도와 울릉도도 가고 싶다. 그러면서 걷고 싶은 길들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순례길이라고 불리는 길들이 생겨나고 있다. 섬을 중심으로 여러 섬들을 돌아보는 걷기도 하고 싶다. 어렸을 때 걸었던 시를 넘나들던 고갯길도 걷고 싶다. 여전히 기사에 나오는 한국의 걷기 좋은 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스크랩을 하고 있으며, 언젠가 걷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고, 당장에 짐을 싸고 떠나고 싶은 욕구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기에, 다음으로 미루게 되어 나는 결국 집 앞 공원을 걷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고 싶은 길들이 차곡차곡 마음에 쌓이는 밤이다.      


3. 정리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는 눈이 시원해지는 책이다. 편하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작가의 시원시원한 마음이 책 속에도 그래도 담겨 있는 책이다. 걷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 그래서 산티아고가 아니더라도 당장, 이 가을 나가서 걷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걸어왔던 길 가운데, 다시 한번 걷고 싶은 길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디인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걷고 싶은 길이 있다면 어디입니까? 혹, 걷고 싶은 길이 아니라도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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