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벼리바라기 Oct 09. 2023

책들의 시간 54. 오색찬란 실패담

# 오색찬란 실패담_정지음 지음_RHK코리아. 


  ‘오색찬란 실패담’ 참 멋진 제목이다. 책의 첫인상은 그랬다. 제목이 주는 이끌림. 워낙 실패를 극복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실패를 무겁지 않게, 대수롭게 여길 수 있는 자세의 필요성을 늘 고민하고 있던 터라 쉽게 선택해서 읽은 책이다. 그리고 작가를 보았다. ‘정지음’ 작가. 도서관 프로그램 작가 초정 강연에 정지음 작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신청하고는 얼른 ‘젊은 ADHD의 슬픔’ 책을 사서 읽었던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강연 당일 다른 일로 인해 결국 작가 초청 강연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 책도 궁금했었다. 


  난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었다. 과거형을 쓸 수 있는 건 지금은 대담해져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져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실패할 일들에 대한 도전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며,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작은 성취의 기쁨을 자주 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실패를 받아들일 일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삶의 매 순간 작고 하찮은 일에도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인생에서 무엇을 실패라고 불러야 하나, 그런 고민들도 있어 지금은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감사한 일이라 늘 생각한다.      


1. 오색찬란 나의 실패담


  그때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과 불면보다,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는 패배감이 더 짙게 드리워진 상태였다. 문득 의심이 솟았다. 나란 애는 대체 뭘까? 난 아픈 것일까, 나약한 것일까? 나약한 거라면 문제의 해결책은 어차피 노력과 능력의 영역 아닐까…….

  그때는 내게 죄책감으로 도피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사람은 너무나 복잡하여, 죄책감에 짓눌리면서도 그 익숙한 고통에서 안도를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 (25쪽)     

하루를 푹 쉬고 나면 다음 날을 시작하는 에너지가 달라진다. 이틀을 쉬면, 그는 기분 좋은 사람이 된다. 사흘이면 좋은 기분을 남과 나눌 줄 알게 되고, 일주일을 쉬면 웬만한 일에 화가 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 한 달을 쉬면 반드시 성격이 바뀌고, 두 달 이상을 푹 쉬면 누구나 아기처럼 사랑스러운 상태로 돌아간다. 본인의 변화는 주변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본인에게 스며든다. (58쪽)


  다이어트는 나에게 평생의 실패다. 나의 전성기는 초등학교 6학년을 기점으로 끝이 났다. 엄마의 세밀한 보살핌이 있던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였으며, 스스로 머리를 묶고 옷을 단정히 입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그런 일들이 아주 귀찮게 느껴지고, 불편하여 견딜 수 없어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잘 꾸미는 아이들을 보면 존경의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것들 모두 타고난 것은 아닐까, 그래. 그건 재능임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예쁘게 잘 꾸미고 다닐 수 없다는 실패의 기저에는 스스로 뚱뚱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한 번도 날씬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옷을 살 때 예쁜 옷을 사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치수가 맞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중학교 때 엄마와 쇼핑몰에 가서 옷을 사는데, 내 몸에 맞는 옷이 없었다. 가슴은 너무 커서 셔츠의 단추는 벌어지고, 바지는 꽉 끼고. 그래서 몸에 맞는 옷을 발견하기만 하면, 그것이 예쁘든 예쁘지 않든, 여성용이든 남성용이든 신경 쓰지 않고 사서 입었다. 그냥 부끄러웠다. 내 뚱뚱함이. 스무 살이 되고부터는 늘 다이어트와 함께이긴 했다. 하지만 늘 실패였고, 오랜 걷기를 통해 나름의 최적 몸무게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그건 세 달을 유지하지 못했었다. 


  참, 오색찬란한 실패였다. 하지만 내가 이것을 ‘오색찬란하다’ 여길 수 있는 것은 그 수많은 세월 속에 나는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뚱뚱하지만 뚱뚱한 게 아니다. 뚱딴지같은 말이지만, 그때는 뚱뚱하다 여겼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리고 그때도 사실 내 마음이 나를 더 부풀려 뚱뚱하다 여긴 건지도 모른다. 


  작가가 ADHD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갔을 때 우울과 불면보다 더 짙은 패배감으로 힘들어하며, 결국은 죄책감으로 귀결되는 그 도피의 순간, 어쩌면 나도 어렸을 때 뚱뚱 하다와 부끄럽다를 연결하여 생각하면서 나를 불행 속에 가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한다 여겨 실패 속에 살아왔는지도. 


  결국 나는 그 실패의 길을 벗어났다. 많이 걸어서 살을 뺏기 때문에 벗어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어는 순간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는 걷는 게 있었고, 책이 있었고, 밤에 잘 잔 게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말한 하루를 푹 쉬면서 얻게 되는 ‘본인의 변화는 주변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본인에게 스며든다’라는 그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2. 때로는 농담이 필요한 이유


  심리 상담이나 인간관계론에서는 현재의 마음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부터 진심이 능사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상대방이 건네는 묵직한 진심들이 정말로 무거워서 끔찍할 때도 있었다. 그 무게감에 몇 번 허덕여본 후에는 자연스럽게 내 진심을 감추는 법도 터득했다. 나이가 들수록 농담만 늘어가는 이유도, 주변인들에게 나라는 무거움을 선사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194쪽)


  대상포진에 또 걸렸다. 사실 처음엔 대상포진이 아닌 줄 알았다. 워낙 수포 생기는 일이 잦아서, 그리고 예전에 앓았던 목 뒤 부분이 아니어서, 대상포진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일이 이렇게 생길까, 속이 상했다.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없었기에,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수포의 원인을 잘못 정의를 내렸고, 약해진 면역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밥을 먹으면서 선생님들께 말씀드렸다. 

 “아니, 나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열심히 걷고, 잠도 일찍 잘 자고, 정말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생활하고 있는데, 왜 나는 수포가 생기는 거지요?”

  그렇게 폭풍 같은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친한 선생님 한 분이 하시는 말씀, 

 “그럼, 담배를 피워요!”


  순간 내 모든 걱정과 생각들이 웃음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내 무거움이 다른 사람들을 무거움의 순간으로 이끌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나 스스로 무겁다 생각하는 일도  생각의 전환으로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음을, 선생님의 농담 하나로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갔고, 내가 생각한 수포가 아니었으며, 대상포진에 걸려, 나는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다. 

  삶에 농담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종종 생각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농담으로 절대 치환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정서도 있음을 잘 안다. 하지만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어떤 농담들은 사람을 위로하는 큰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안다. 그래서 선생님의 그 말에 비합리적이었던 나의 사고가 나를 이끌어왔음을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좋다. 참 좋은 사람들, 나에게 툭 농담을 던져, 나를 환기시키는 참 좋은 사람들.   

   

3. 정리

  ‘오색찬란 실패담’을 읽으면서, 함께 엮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다시 ‘젊은 ADHD의 슬픔’도 함께 읽었다. 참 젊은 작가의 맛깔난 글이었다. 제목도 좋았고. 유려하면서도 설명 많은, 대조적 개념을 많이 사용한 문장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술술 읽히는 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정말 다른 성향의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나의 실패담에 꺼내 봅시다. 오색찬란한 실패담, 아직 여전히 실패 중이어서 마음을 힘들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 그런 실패담을 꺼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농담으로 인해 웃음을 찾았던,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재미있는 그런 농담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책들의 시간 53.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