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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23. 2023

책들의 시간 56. 연결된 고통

# 연결된 고통_이기병 지음_아몬드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주 배경 노동자를 많이 만나게 된다. 공원에 설치된 체육시설에 앉아 오랫동안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길 만큼의, 결국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서 시작한 물질적, 경제적 필요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아빠 생각이 나기도 한다. 1980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노동자로 일했던 우리 아빠, 아빠도 한 달에 한 번 도착하는 가족의 편지를 기다리며, 그렇게 외국의 건조하고 낯선 공기를 견디며 살아오셨기에. 


  이 책은 내과 전문의이면서 인류학에 대하여 공부한 의사 선생님이 쓴 책이다. 세바시 강연을 통해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무엇보다 마음을 끈 것은 제목, ‘연결된 고통’.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든 생각은 ‘마음의 병이 신체화의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은 지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병원인, ‘외국인 노동자 전용 의원’에서 군의관으로 보낸 작가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외국인 환자들을 대하면서 느낀 점과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의 표지에 적힌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이라는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궁금했다. 그래서 읽은 책.      


1. 우울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반성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화와 언어는 그 내용이 학문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적 사유의 세례를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근대적 사유의 힘이 미치는 곳곳에 뿌리내린 가장 유력한 개념을 하나만 꼽아 보라면 나는 ‘이분법’이라고 말하겠다. 우리는 주관과 객관, 자아와 타자,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문과와 이과, 자연과 사회 등의 도해에 익숙하다. 당연하게 보이는 것을 낯설게 탐구하려는 경향을 가진 인류학에서도 이런 이분법적 사유에 대한 한 가지 견해를 갖는데, 그것은 이러한 이분법이 모든 인류사회의 공통적이고 근원적인 사유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배워왔고 우리의 사고 과정에 당연한 것으로 내재해 있는 이분법적 도해가 우리에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거나 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204쪽)


  이분법적 사고가 너무나도 익숙하여, 모 아니면 도의 사고방식이 가지고 있는 함정을 잘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생각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이분법적 사고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있어 가끔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때 내 주관과 가치관도 사르르 사라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오히려 그때의 기분이 별로다. 결국 나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주관이 사라지는 기분.


  하지만 작가는 병의 진료 과정에서의 이분법적 사고가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하여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외노의원에 찾아온 폐암 환자, 자신의 병이 폐암이라는 것을 선고받았을 때 오히려, ‘벌을 받았다’라고 말하며, 돌아간 환자. 작가는 그 환자의 현재의 삶이 이미 고통스러웠으며,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히려 형벌이 끝나가는 순간일 수 있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의 전환. 삶의 끝이 죽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하여 나는 공감한다. 


  나의 잘못된 이분법적 사고는 ‘우울을 대하는 자세’에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울하다고 말하는 순간들이 많다. 그렇다고 우울과 관련된 병원 진료를 받거나, 약을 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우울을 받아들이는 건, 사람의 감정이 꼭 행복할 필요는 없으며, 행복에 대한 추구가 목적일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의 '슬픔이'가 한없이 슬퍼할 때 '기쁨이'는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슬픔을 온전히 슬퍼할 때 감정의 정화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우울과 관련하여 나는 부정적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과 관련하여는 ‘아니, 왜 극복하지 못하지?’의 잘못된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았다. 우울을 극복의 요소로 보는 것은 아니다. 우울을 그냥 하나의 감정으로 보는 것은 맞지만, 이미 내가 ‘왜 극복하지 못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나는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우울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어리석게도 나는 가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의 방식대로 조언하곤 했다. ‘걸어봐. 걸으면 달라져.’ 이렇게. 하지만 정재승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쥐를 물에 빠트리면, 헤엄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지를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조언은 나의 관점에서 나에게 적합한 처방이었음을. 그랬더니 이제는 말을 잘 못하겠다. 힘들어하는 그 사람을 보면서도 ‘조언’은 할 수 없는 내가 되어버렸다.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다시 책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나의 곁의 참 좋은 사람들을 통해 주관을, 나의 생각을, 가치관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 믿는다.      


2. 은유로서의 질병


예컨대 알코올중독, 비만, 식용부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발기부전, 폐경, 치매, 수면 장애,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등이 의료화의 대표적 사례들이며 이는 다시 말해 불과 수십 년 사리에 우리 삶에서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들이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사회적 재편이 일어났다는 의미다. 의료화는 일상적인 삶에 ‘건강’과 ‘불건강’이라는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시대적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의료화로 인해 우리는 그 이전에는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았던 어떤 행동 또는 상태를 질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의료화는 인간의 삶에 어떤 효과를 불러왔을까.(74쪽)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병원을 방문하는 외국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과정에서의 일화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병원 진료의 과정에서 인류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공부를 하게 된다. 분류 체계에서의 질병과 환자의 삶에서 이야기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 질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진료에 적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작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경계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할 것들이 참 많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료화’에 대한 부분이다. 예전엔 의료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들이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 많으며, 그로 인해 분명 좋아진 것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울의 감정을 약물로 치료할 수 있는 것, ADHD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 약물로 인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게 된 것들도 분명 뇌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의료화의 영역이 확장되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의료화’를 바라보는 관점, 책에도 나와 있지만 ‘의료화’를 사회적 통제를 위한 제도로서의 의료로 개념화한 학자도 있으며, 질병을 둘러싼 온갖 소문이나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하여 경고한 학자도 있다. 아직도 기억나는 광고 문구가 있다. ‘비만은 질병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의 뚱뚱함이 부끄러워졌다.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하면서 나는 이미 환자가 되었고,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으며,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비만의 원인이 생활 습관과 관련이 있을 경우, 사람에게 부여되는 이미지들이다. 게으르다, 많이 먹는다, 둔하다, 식탐이 많다 등 등. 그런 이런 것들이 바로 은유로서의 질병이다. 상징화되는 것,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이미지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부라고 여겨지게 되는 것. 그것에 대하여 우리는 충분히 고려하고 조심해야 한다. 

     

3. 정리


다만 우리 삶과 질병을 재단해 온 ‘이분법’이 고통을 줄이는지 아니면 되레 부추기는지 끈질기게 응시해야 한다. 이 책에서 면면히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모두 그러하다. 누군가에 의해 함부로 재단되어 목소리를 잃은 고통이 언젠가 나와 당신의 것일 수 있다.(252쪽)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다는 말, 그래서 고통의 원인을 하나로 파악할 수 없으며,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받아들인 책의 내용이다. 늘 그러하듯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나의 경험만으로 이루어질 때 나의 미비하고 하찮은 경험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더 많음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을 벗어나는 방식이 나에게는 책이다. 이렇게 다양한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 참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지금 현재 나를 아프게 하는 질병이 있다면 무엇이며 그 질병으로 인해 변화된 삶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우리의 고통은 겹겹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은 무엇이며, 내 개인의 고통이 몸과 마음, 삶과 죽음, 자아와 타자,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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