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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Oct 30. 2023

책들의 시간 57. 있을 법한 모든 것

# 있을 법한 모든 것_구병모 소설_문학동네


  나는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참 어렵다. 호흡도 길거니와, 읽었을 때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참 많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도 사실 개운한 느낌은 아니다. 워낙 직관적인 소설들, 현실적인 소설들, 마치 내 옆에서 일어날 것들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을 좋아하여, 나에게 SF소설이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은 그냥 읽기부터 술술 넘어가지 않고 막히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설 선택의 기준은 제목이었다. ‘있을 법한 모든 것’. 제목이 좋아 읽은 책. 책은 잘 읽혔지만, 책을 덮고 나서는 여전히 어려움에 마음이 꽉 찼다. 잘 읽혔지만,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 책이다. 

  소설은 총 여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몇몇 작품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작품들이 있었다. 생각할수록, 곱씹을수록 현실적인 내용의 소설들. 내가 마냥 어렵다고 느꼈던 어떤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생각하면 그건 현실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불편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불편했다.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의 어떤 관념들을 담고 있는 내용이라 더 불편했다.     


1. 엄마의 시간


그 시대의 클래시컬한 블리자드사의 게임에 접속해서도 던전을 훨훨 날아다니는 고수는 아니지만 어쨌든 캐릭터 조작은 할 줄은 알았고, 키오스크 앞에서 팔십 대 노인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망설이고 있으면 나서서 터치와 주문을 대신해 주는 한편, 무인 단말기의 형태와 방식이 점점 바뀌어 매번 새로운 도전 과제를 던져주어도 일흔 중반을 넘을 때까지 문제없이 수행했다. 그건 비슷한 문화 환경 속에서 평균 이상의 교육 혜택을 받고 부단한 향상심과 자립심 내지 창조성을 배양하거나 종용하는 분위기에 둘러싸여 평생을 산 엄마 또래 친구들 대체로 그러했기에 엄마만 특별한 건 아니었지만. 

  그러나 아무리 IT 문명을 제 옷처럼 입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그 옷을 낡아진 육체 위에 억지로 껴입을 권리까지 획득하지는 못했다. 특히 엄마와 같은 유형의 노인성 질환자들에게는, 우리 부모님이 고등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오신 전문가인데 이럴 수는 없다고 자식들이 항의하더라도 예외가 허용되지 않았다. (50쪽)


  책에 실려있는 첫 번째 작품 ‘니니코라치우푼타’는 가까운 미래의 사회 모습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국민의 평균 연령이 61세인 초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원에 있는 엄마가 말한 ‘니니코라치우푼타’를 찾고 있는 딸의 이야기이다. 결국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딸은 엄마가 말한 ‘니니코라치우푼타’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엄마의 생애, 비슷한 문화 환경 속에서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고 부단한 향상심과 자립심, 그리고 창조성을 배양하거나 종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잘 살아왔던 그 엄마의 생애, 그럼에도 결국은 피해 갈 수 없었던 노인성 질환으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책을 읽으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젊었을 때부터 글도 잘 쓰고, 운전도 잘하시고 옷도 잘 입으셔서 항상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우리 엄마. 또 공부를 적당히 잘하던 딸의 학교 생활을 위해 학부모회 회장을 맡았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였기에 늘 엄마보다 모자라다 여긴 나는 나만의 생활 방식을 찾았었다. 엄마처럼의 리더십은 없었지만 나는 나대로 잘 살아왔다. 근데 요즘 엄마는 핸드폰을 사용하여 인증을 해야 하는 일이나 온라인 쇼핑을 해야 할 때면, 나에게 전화를 한다. 바코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몰라 무인 커피점에서 온 쿠폰을 사용하지 못한다며, 어떻게 해야 하냐며. 인증을 해야 하는데, 핸드폰 무엇을 눌러야 하냐며. 그럴 때면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난다. 우리 엄마는 여전히 운전을 잘하시고, 말씀도 잘하시며, 눈도 밝고, 셈도 빨라 모임의 총무를 도맡아 하면서도 유난히 키오스크와 핸드폰 사용에 서툰 우리 엄마, 시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인터넷 쇼핑도 잘하시는데 왜 우리 엄만 못하지, 그런 마음에 서글퍼진다. 

  그런데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새벽 출근길에 물이 마시고 싶어서 편의점에 갔다. 그러고는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가 물도 사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무인 편의점이었으며, 분명히 출입 방법이 쓰여 있었지만, 읽고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어떤 것들에 대한 도전이 나는 두렵다. 그래서 발전해 가는 문명을 받아들이는 일이 서툴고, 오래 걸린다. 엄마의 시간을 이해하면서도 나의 시간을 받아들이기 힘든 그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험하고 있다.      


2.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


 “어, 그래요? 음. 그런 거 있잖아요. 그렇죠?”

 “맞아요. 딱히 뭔가 큰 사달이 나는 건 아닌데 왠지 모르게 이건 아니다 싶은 그거요.”

 “그래요, 그거. 표현이 잘 안 되고, 막상 말로 바깥으로 내버리면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뭘 그런 걸 갖고 그러느냐며 눈을 휘둥그레 뜨곤 도리어 이쪽을 이상한 사람 취급할 것만 같은 바로 그거.”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무엇의 성분이 비슷하다는 데에 합의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실은 서로를 전혀 모르며 서로의 인식 지형도가 비슷하지 않을 것도 염두에 두면서 비슷한 양 웃음으로 눙치고 넘어가도 되는, 우리는 그럴 만한 나이였다. (159쪽)     


나는 K가 토한 이유를 듣지 못했고 지금도 알지 못한다. 비둘기처럼 다정한 가족은 포근한 둥지를 짓는다. 가족은 그래도 된다. 가족인데 뭐 어때서, 가족은 이왕 생겨났으니까 함께 에너지 절약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세상의 똑똑하고 젊은 사람들은 더는 그런 의미로 가족 따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데도,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자신의 에너지를, 나아가 섬멸이라도 보아야 할 인류 절명을 통해 지구의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임을 닦은 거울 들여다보듯 알고 있는데도, 세상을 자꾸만 새끼를 깔 수 있는 형태의 가족을 만들라고 한다, 꾸역꾸역꾸역. 그러고 보니 비둘기 울음소리 같지 않은가, 꾸역꾸역꾸역.(165쪽)


  나는 사회 현상이나 분위기에 참 둔한 편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하지만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불편을 잘 감내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건 불편에 대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부끄럽게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네 번째 단편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목욕을 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던 사회의 풍조, 그것을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이라 가르치던 시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작은 집에 남겨진 그 시절 ‘국민학교’에 다니던 주인공은 숙모의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들어가 씻게 된다. 하지만 쌍둥이 사촌 남동생이 목욕탕으로 뛰어 들어오고, 삼촌이 문을 열어 옷을 건네는 그런 분위기 속에는 주인공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가족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이 있으며, 그런 이상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아동에 대한 학대, 가정폭력은 여전히 더 심해지고 잔혹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은 그래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다. 이 단편은 ‘역설’을 보여준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이라며 알려진 가족이 함께 목욕을 하는 일이 가족 간의 폭력이 될 수도 있으며, 가족의 구성원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인류의 절멸이야 말로 온전한 자연의 회복이 될 수도 있는 일임을 이 단편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옳은 듯,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인 듯 그렇게 사람들에게 충고를 한다. 또한 폭력 앞에도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러냐’며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자신과 같지 않음을 예민함으로,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에 대하여는 충분히 변화되어야 할 일이다.      


3. 정리

  책을 읽을 때에는 마냥 어려워서 무슨 말인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고민했지만, 막상 글을 쓰면서 내가 책에서 무엇을 이해했는지, 배웠는지 알게 된다. 여전히 나는 늙어가는 나의 시간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민감하지 못한 어떤 마음들에 대하여 반성하고 있다. 책은 그렇게 나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있음을. 어려웠지만 글을 쓰면서 책이 쉬워진 느낌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책에 실려 있는 단편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은 무엇입니까?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함에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무엇이었는지, 어떤 일 때문이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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