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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Dec 04. 2023

책들의 시간 62.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

#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_마스다 미리 에세이_이소담 옮김. 


  다시, ‘마스다 미리’ 책이다. 이번엔 만화책이 아닌 에세이. ‘마스다 미리’는 1969년생이다. 나보다 9살이 많은 작가님. 직장에서 만났으면, 그냥 샘,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를 나이의, 그 정도로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그래서인지 이 책은 유난히 더 좋았다. 나는 이런 심심한 책들이 좋다. 


  ‘매일 이곳이 좋아집니다’는 작가가 20대에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사 왔던 그 시절, 그곳이 점점 좋아지던 그 경험의 이야기와 그리고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의 소소한 일상을 담고 있는 책이다. 작가의 말처럼 소소하게 자기 전 두세 편씩 읽기에 참 좋았다. 그렇게 한 주 천천히 읽은 책.   

   

  주중에 몸살이 났다. 체기에서 비롯된 몸살이라 생각했는데 독감 검사도 받았고, 다행히 음성이었지만 입술에 포진이 여섯 개나 올라왔다. 몸도 몸이었지만 마음이 말이 아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마음, 표도 내지 못하겠고, 괜찮다, 다 괜찮다 다독여 보았지만, 이럴 때 결국 나를 나답게 회복시키는 건, 책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일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작가의 말처럼, ‘잠들기 전 두세 편.’. 그랬더니 한 주 동안 책 한 권을 다 읽어내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책에는 무엇을 먹었다, 나는 무엇보다 무엇이 좋다, 누가 생각난다. 그런 이야기들이 많았고, 그런 심심한 이야기들이 마음을 잔잔하게 만들어 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은 맛있는 음식들도 생각나고, 어린 시절 그 시절의 이야기들도 생각났다. 나에겐, 참 좋은 책이다.      


1. 새롭게 생긴 소망 목록


  팬 체질이 아닌 나 자신에게 약간의 쓸쓸함을 느꼈다. 

  ‘최애’도 없다. 뭘 수집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컬렉션이 없다.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흥미가 있는 인간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쓸쓸하고, 그래서인지 뭔가에 푹 빠진 사람에게서 찬란함을 느낀다. 나는 '야쿠르트' 팬클럽에 들어가서 '야쿠르트' 팬을 눈부시게 바라봤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신 타이거스가 우승한 적이 있다. 1985년이다. 우승이 결정된 날, 아버지는 “고마워라”라고 말하며 울었다. 그러더니 엄마와 나와 여동생에게 만 엔짜리 지폐를 나눠줬다. 

  어떤 관점에서 하는 감사일까?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자기와 관련 없는 일에 울 정도로 기뻐하는 아버지가 부러웠다. 우승 다음 날, 한신 타이거시의 핫피(일본 전통 의상 중 하나로 옷 위에 걸쳐 입는다)를 입고 등교한 남학생이 있었다. 

  야구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응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동경한다.(208~209쪽)


  이번 한국시리즈는 29년 만에 엘지가 우승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은 물론 우승하지 못했지만, 우승의 경험이 있는 팀이다. 야구를 좋아한다. 10년 정도 되었나 보다. 야구에 빠진 지. 그 시작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나름의 몸부림이었지만, 야구를 좋아하고 나서는 참 재미있었다. 언젠가 기사에서 ‘한신 타이거스’ 야구팀이 우승할 수 있으니, 오사카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조심하라고, 특히 도톤보리 강가에 사람들이 뛰어드는 풍습이 있으니 여행을 할 때 조심하라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야구를 사랑하게 되면 그럴 수 있지,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아버지도 야구를 좋아했구나, 알 수 있었다. 좋아하는 야구팀이 우승을 하고 나서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고맙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재미있고 기뻤다. 


  작가는 ‘최애’도 없고, 뭘 수집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나는 사실 뭔가를 깊게 좋아하지 못한다. 쉽게 질리기도 하고, 쉽게 빠지기도 하는 그런 성격임을 잘 알기에, 진득하게 오래 뭔가를 좋아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뭔가를 쉽게 좋아하기에, 잦은 행복감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요즘은 짱구 ‘우표씰’ 모으기에 빠져 있다. 무가당 두유랑 먹으면, 두유를 달달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도넛, 거기에다가 귀여운 ‘우표씰’. 그래서 재미있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편의점에 들렀고, 그렇게 몇 번씩 딱 그 도넛만 사면서 눈을 계속 마주치는 편의점 직원에게 살짝 민망해졌고, 지금은 2킬로그램 살이 쪘다. 그래서 먹고 싶어도 일주일에 한 번만 먹기로 나 자신에게 다짐을 했다. 지켜질지는 잘 모른다. 


  작가는 ‘응원하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책에 실려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이런저런 일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는 오십 대의 중반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녀가 없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잔소리를 해 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음을 알고,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영어 회화를 꾸준히 배우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걸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그런 내용들이 참 많았다. 다음번 야구에서 우리 팀이 우승을 한다면, 나는 학교 선생님들께 우승 떡을 돌려야겠다. 그런 재밌는 소망을 삶 속에 하나 더 추가해 본다.      


2. 그 시절 그 아이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아이가 어쩌다가 이런 말을 했다. 자기 몸을 잣대로 사용할 수 있게 길이를 알아두면 편리하다고. 예를 들어 팔꿈치부터 손목 볼록한 뼈까지의 길이. 손바닥을 펼쳤을 때 새끼손가락 끝부터 엄지손가락 끝까지의 길이. 그걸 알아두면 주변에 있는 어지간한 물건의 길이를 잴 수 있다. 

  이런 소리를 10대 남자아이가 했으니, 나는 점점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됐다.(155쪽)


  이 구절을 읽는데, 어찌나 가슴이 콩닥콩닥하던지, 귀엽고 좋아서. 나는 여전히 세상의 모든 연애가 참 좋다. 작가의 이 경험이 참 부러웠다. 좋아했던 아이가 했던 말이 오래 남아 길이를 재야 하는 어떤 순간들마다 그 남자애가 생각나는 마법 같은 순간. 기억이란 그런 것이니까. 

  근데 더 좋았던 것은 10대 남자아이가 그런 소리를 해서 점점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이다. 나도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10대 때 들었다면, 그 아이를 특별하게 여겼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왠지 모를 공감에 책을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다. 


  문득, 중학교를 같이 다닌 한 남자아이가 생각이 났다. 이름이 특별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중학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같은 학교를 다니는 우리 동네의 남자아이. 공부도 잘해서 눈이 가기도 했지만 버스 탑승 시간이 비슷해서인지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버스를 같이 타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참 좋았다. 지금은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왜 좋아했는지 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름만은 또렷이 남아 사십 대 중반의 내가, 십 대 중반의 그 아이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중학교 일기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이름이라 그렇게 기억에 남나 보다. 다만, 나는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그 아이에게 좋아한다고 말을 했고, 그 아이는 대학 가서 만나자며, 나의 고백을 아주 보기 좋게, 그러나 의미를 두지 않는 방식으로 거절했다.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는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 사실 같은 중학교를 다녔지만 짝사랑의 기억이라 그 아이와의 추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버스 안에서 마주치는 그 짧디 짧은 순간의 만남이 잦아지니, 좋아졌던 것이었으며, 고백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궁금하다. 그 시절 그 아이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3. 정리


  올해 벌써 ‘마스다 미리’ 책을 세 번째 읽는 것 같다. 재미있다. 나는 정말 심심한 책들을 좋아한다. 책을 읽으면서, 오십 대 싱글의 삶에 대하여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사는 삶의 두려움이, 나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새로운 나이대를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도 고민이 되었다. 오십 대 작가에게 다가온 팬데믹의 삶과,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를 기억하는 삶, 그리고 OTT서비스를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작가의 도전기까지 책 속에 담담하게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좋았다. 책의 마지막, 에디터의 글이 덧붙여져 있다. 그 글도 좋았다. 


상경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에는 본가에 꽤 자주 내려가곤 했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오래는 못 있겠더라고요. (이틀이면 족하다)

삶의 중심을 조금씩 옮겨가면서 내가 생활하는 장소가 더 편안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많이들 겪었겠지요.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든, 그곳에서 당신이 괜찮은 하루하루를 쌓아가고 있기를. 


[이야기 나눠 보기]

1) 무언가를 모으거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예전에 좋아했던, 또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그 시절 그 아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점 때문에 좋아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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