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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Dec 11. 2023

책들의 시간 63. 식물적 낙관

# 식물적 낙관_김금희 에세이_문학동네

   이사를 하고는 한동안 식물 기르기에 빠졌었다. 거실 한편에 화분을 하나, 둘 들이면서, 꽃집에 가서 나무들을, 꽃들을, 식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외부 베란다에서 상추며, 고추며, 가지며,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것에도 흥미를 붙여 흙도 사고 비료도 사고, 지지대도 사고, 무엇보다 식물들의 이름표를 사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나의 취미는 식물 기르기에는 정착하지 못하나 보다, 그렇게 결론을 냈었고, 결국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한 돌봄에는 희생과 배려가 포함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함을 아주 아프게 깨달았던 경험이 바로 식물을 키우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게 된다. 왜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식물이 주는 어떤 위로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고, 나무와 꽃들이 가득한 수목원에서의 휴식이 좋기도 하고 여전히 꽃집에 들러 꽃을 사는 일이 기쁨이기도 한 것이 식물 관련 책들을 찾아 읽는 이유가 되는 것인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김금희 작가의 다른 책들, 소설을 읽을 때면, 늘 제목에 감탄을 하곤 했다. ‘너무 한낮의 연애’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는 제목에 이끌려 읽었던 책들이었다. 책을 선택할 때 제목이 주는 이끌림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이번 책은 수필집이다. ‘식물적 낙관’, 제목을 읽는 순간 바로 읽고 싶었다. 궁금했다. 식물적 낙관이라니, 식물이 가진 낙관적 삶의 태도가 궁금했으며, 나에게 지금 필요한 ‘낙관’이 나는 궁금했다.      


1. 낙관적 태도가 필요한 요즘


  올해 역시 발코니에서 보낼 것이기에 동백나무는 자기 몸 전체를 이 환경에 내맡길 것이다. 사람으로 친다면 마음과 몸 모두를 스며들게 하고, 뿌리 밑의 어딘가를 간지럽히는 알갱이 하나의 움직임에도 달라지는 자신을 조용히 느낄 것이다. 식물에게는 지금 이곳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역설적으로 식물들의 낙관적 미래를 만들어 낸다. 환경에 적응하는 것, 성장할 수 있다면 환희에 차 뿌리를 박차고 오르는 것, 자기 결실에 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것, 삶 이외의 선택지가 없는 것, 그렇게 자기가 놓인 세계와 조응해 나가는 것, 이런 질서가 있는 내일이라면 낙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57쪽)


  작가는 역설적인 상황이 식물에게 낙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이곳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엄정한 상태가 오히려 삶밖에 선택할 수 없는, 그래서 삶을 살게 된다는 것. 그것이 식물의 낙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읽으면서 그래, 그렇구나의 공감도 있었지만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자기 결실에 대한 희비나 낙담이 없는 삶이라는 것이, 오히려 낙관이 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이해한 적이 있다. 기대하는 것이 없는 것이 삶에서의 자유를 만들어 낸다는 역설. 살면서 참 기대하는 것이 많아진다. 그럴 때 나는 때로는 우울에 빠진다. 기대하는 만큼 뭔가를 얻을 수 없다는 좌절이 크기 때문이다. 그럴 때 조용히 되뇌는 것이 ‘일희일비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요동친 마음을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남들보다 부족한 것들이 먼저 보이기 때문에. 


  얼마 전 집에 누수가 있었다. 아랫집이 피해를 보지는 않았지만, 공동주택의 계단에 물이 떨어져 위험을 초래하는 거라 얼른 고쳤다. 다행히 얼마간은 괜찮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 다시 계단에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가올 추위에 혹여 얼게 되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했다. 낙담이 되었다. 분명 고쳤는데, 왜 또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과연 우리 집 문제인가? 다른 집에서는 왜 이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 온갖 불평과 불만과 낙담에 마음이 괴로웠다. 내게 주어진 세상과 조응하지 못하는 기분이었고, 질서 없는 세상에 홀로 잘난 것처럼 질서를 찾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신물이 났다. 우울감이다. 

  걸었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 이상기후에 나타난 기온변화라고 하지만, 여전히 겨울의 나무는 낙엽을 떨구고 있었고, 헐벗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럼 괜찮지. 봐, 뿌리가 아직 있지?”

  나는 장담하면서 손으로 가리켰지만 그 순간조차 아닐지도,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안 되면 할 수 없다는 은근한 체념도 식물들과 계절을 통과하면서 나는 무엇보다 그 은근한 체념을 배워가는 중이다.(6쪽)


  작가가 식물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마음을, 계절을 통과하면서 다스리고 체념을 배워가는 것처럼, 나는 지금 체념을 배워가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이 지나쳐 지금의 삶을 비루하다 여기는 마음을 버리고,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것, 지치지 않고 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마음이다. 그것이 나의 낙관임을.      


2. 가지런하고 적당한 마음


  하지만 그런 수선 끝에 사고를 내고 말았다. 물꽂이를 해서 몇 달간 수북한 뿌리를 낸 베고니아를 화분에 옮겨 심다가 부러뜨린 것이다. 생수병에 담겨 있다 보니 줄기가 앞으로 휘었는데 그걸 펴서 지지대 가까이 붙이겠다며 힘을 불끈 준 순간, 톡 하며 베고니아가 부러졌다. 몰두하느라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있던 나는 그 튼튼한 줄기가 부러지며 공기 중으로 뿜은 오이 향처럼 청량한 비극의 냄새를 똑똑히 맡고 말았다. 

  가지런하고 적당한 마음. 상상해 보면 잘 접은 손수건의 네 귀퉁이나 현관 앞에 정리해 놓은 몇 켤레의 운동화들이 떠오르는 마음. 하지만 그 어디에도 통제나 강박의 긴장은 없는 마음. 과연 나는 앞으로 그런 마음의 균형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예측은 할 수 없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떠올릴 때 지지대를 멋지게 일으켜 세운 식물들보다 부러뜨리고 만 베고니아를 더 선명히 기억하리라는 것. 그때의 낭패감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굽은 것을 펴겠다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가 그것이 부러지는 순간 마음 전체를 평정하던 어떤 깨달음을 말이다.(30쪽)


  마음이라는 것이 어찌 가지런하고 적당할 수만 있을까? 그런데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싶어 안달이 나던 때가 있었다. 사실 아직도 그런 마음의 균형을 가지고 싶긴 하다. 가지런하고 적당한 마음. 통제나 강박의 긴장은 없는 그 상태의 마음. 평온함. 하지만 자연을 거스러는 어떤 가지런함은 오히려 통제나 강박이 될 수 있음을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이사 온 첫해 텃밭을 가꾸겠다면 베란다에 방울토마토며 가지며 고추며 잔뜩 심었었다. 집 외부 베란다라 햇살도 좋고, 바람도 비도 그대로 내려 계절을 고스란히 맞이할 수 있는 곳이라 식물들이 잘 자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 속 식물이 아니라 사람 손에 가꾸어지는 야채들이어서 사람의 부지런함이 필요했다. 며칠 바빠 제대로 보지 못했더니, 고추는 잎마다 벌레가 잔뜩 생겼고, 그나마 달콤함을 풍기며 열매를 맺었던 딸기는 새가 다 먹어버렸다. 방울토마토인줄 알고 심었던 식물은 그냥 토마토였으며, 내가 심었어도 선뜻 먹지 못했다. 결국 나는 식물을, 텃밭은 포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지혜라고 들었다. 나는 식물집사는 되지 못하겠구나, 그런 뼈아픈 깨달음이 나에게는 가지런하고 적당한 마음이다. 집에서 기를 수는 없지만, 자주 공원을 산책하며, 때마다 계절마다 바뀌는 식물을 관찰하는 것, 좋아하는 선인장의 그림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 학교 화단에 있는 꽃들에게 잘 자라라며 말들을 들려주는 것, 그것으로 나의 가지런하고 적당한 마음을 지켜야겠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구나, 부러움이 들었다. 작가에 대한 부러움이라니 얼토당토않지만 술술 읽히는 문장,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상상, 그리고 그림 그려지는 장면들. 식물이 가득한 어떤 집에서의 따뜻한 아침. 책을 손에 들 수 없는 바쁜 시기였지만,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바쁜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나날들이었다.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식물적 낙관’이라는 제목이 주는 위로를 경험한 책이다. 참 좋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식물을 키워 본 경험이 있다면 서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어떤 식물이었으며, 키우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작가가 말한 ‘식물적 낙관’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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