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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Dec 18. 2023

책들의 시간 64. 공존하는 소설

# 공존하는 소설_안보윤 외_창비

 창비 출판사의 ‘테마 소설 시리즈’가 있다. 참 좋은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여러 작가의 소설을 주제별로 엮어 읽어 볼 수 있게 구성된 책이다. 예전에 ‘땀 흘리는 소설’ 을 읽으면서 이걸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때의 좋은 기억이 있다. 여러 단편을 엮어 다양한 작가의 책을 읽을 수 있으면서도, 주제가 비슷하여, 다양한 상황 속의 인물이 겪는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소설집이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공존하는 소설’ 주제가 ‘공존’이다. 늘 고민하게 되는 주제이기도 하면서, 나에게는 참 어려운 주제, ‘공존’     


  ‘공존’의 사전적 의미는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이 함께 존재한다,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한다.’이다.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하는 ‘공존’의 의미에 대하여, 이 책은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모습들이 마냥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프고, 힘들고, 서러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의 공감,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민낯을 들킨 그런 마음이 드는 책이다. 


  이 책에는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소설 모두는 관계를 다루고 있다. 유치원 선생님과 가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 좁은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언니와 동생, 조카를 돌보게 된 여자의 이야기, 아내가 죽은 후 쪽방촌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독거노인과 개의 이야기 등 누군가와의 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일면 공감이 가면서도, 피하고 싶은 어떤 관계, 그러면서도 더 나은 삶의 관계를 열망하게 되는 소설이다.      


1.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어린아이들

  얼마 전 체험학습을 신청한 아이들이 아버지에 의해 살인을 당했다는 ‘비속 살해’ 내용의 기사가 있었다. 기사 자체에서도 잔혹함은 그대로 묻어나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중학생들 나이의 남매가, 아버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그 기사에는 사실, 아버지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 및 아이들의 생활 모습은 담겨있지 않았다. 유추할 뿐이다. 아이들의 이름으로 된 적금을 깨서 고급 리조트에서 며칠을 보내게 해 준 아버지가 돌변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아이들을 죽게 만든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갔을 땐 아이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그래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내 소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낳았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내가 없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 테니, 너를 죽이고 나도 따라 죽겠다는 그 마음도 사실 아이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인 생각이다. 기사 속 아버지는 자신도 죽으려고 했지만, 가벼운 상처 정도로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두려운 죽음이었을 텐데, 아이들은 어떻게 죽일 수 있었을까? 무서운 세상이다. 


  5세 반 점심 반찬으로 시금치가 나왔었거든. 다음 날 애 아빠가 들이닥쳐서는 자기 딸한테 시금치를 먹였다고 머리채를 잡더라고. 그걸 먹고 애가 체해서 응급실에 다녀왔다나. 무릎 끓고 빌라고 난동을 피우다가 난데없이 시금치 한 통을 꺼내는 거야. 시금치가 그렇게 몸에 좋으면 네가 다 먹으라고, 자기가 보는 앞에서 당장 다 먹으라고. 

  먹었어요? 

  먹었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궁금해. 애가 아팠다면서 그 이른 시간에 시금치 무쳐 올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해질 수 있었을까.(37쪽)


  안보윤의 단편, ‘밤은 내가 가질게’는 가정 폭력을 당하는 어린아이 주승이를 맡고 있는 유치원 교사의 이야기이다. 유치원 교사는 처음에 분명, 사명감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을 맡으면서, 그 부모들을 상대하면서, 선생이길 요구하는 부모에게는 선생으로, 서비스를 요구하는 부모에게 서비스를 주는 사람으로 그렇게 변하게 된다. 그 과정에는 분명 부모의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 

  유치원 급식으로 나온 시금치를 먹고 체한 아이의 부모가 유치원 교사에게 무릎 꿇고 빌라고 말하는 비상식적인 사회. 자기 아이의 아픔에 응당 누군가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고, 비난을 퍼부을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는 길이었을까? 아이가 아프면 그 마음을 감당할 수가 없을 만큼 힘이 든다. 그 이면에 사랑이 있다. 아이에 대한 사랑. 하지만 내 아이의 아픔의 원인이 그날 시금치였다 할지라도 교사의 책임은 아닌데도 원망할 누군가를 찾아 그렇게 쏟아내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다. 잘못된 행동이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겠다는 일념으로 그렇게 부지런해질 수 있는 인간의 이중적 모습에 속이 상한다.      

  어린 시절, 아빠는 내가 열두 살에 돌아가셨고, 아주 단편적인 기억에 의존해도 나는 넘치도록 사랑을 받았다. 엄마는 가끔 소리를 지르며 꾸중을 하시긴 했지만, 그건 정말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정도이며, 나는 만지면 부서질까, 소중한 자녀로서 자라왔다. 그리고 지금 우리 딸, 나는 그 아이가 너무 좋아 이십 대의 청년이지만 자고 있을 때 그 발만 보아도 좋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는 아이를 키우지 않았고, 그래서 그 아이의 청소년기와 사춘기를 보지 못했으며, 관계에서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어 친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싸울 일이 없었기에 가능한, 의견 차이가 없었기에 가능한 그런 일. 

  하지만 아무리 아이의 사춘기를, 청소년기를 지켜보며, 치열하게 싸우며 가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폭력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소설 속 주승이는 유치원 교사의 신고로 폭력을 행하는 엄마로부터 벗어났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또 폭력에 노출되게 된다. 그렇다고 유치원 교사가 주승이를 하루종일 봐줄 수는 없었으며, 할아버지 대신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옛말에 아이는 온 동네가 키운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이를 키우기 위해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양육이 있었고, 삼촌의 도움이 있었으며, 어린이집과 학교라는 사회의 기관이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돈을 주겠다는 것도 분명히 필요하겠지만 좀 더 실질적인 사회적 양육이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나도 방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 자매. 


  서울에 와서 처음 같이 지낼 때는 방을 얻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직장을 구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에 비해 서울에 대해 잘 몰랐고 독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지와 막연한 희망만이 우리를 끌고 가는 연료가 되었다. 자기 전에 불을 끄고 누우면 고단함이 발끝으로 흘러내려 발바닥이 뻐근했다. 우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치의 좌절과 고충을 가만히 털어놓았다. 넓은 도시에 의지할 사람도 대화 상대도 둘 뿐이라 수다는 종종 새벽까지 이어졌다. 신세 한탄을 좌절로 마무리하지 않고 희망의 불씨를 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깜깜한 하늘에서 우리가 품은 희망은 폭죽처럼 금세 빛을 잃고 말았다. 

  독립은 경제적인 것 외에 생활과 고민까지 분리하는 것이라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끼니, 청소, 빨래까지 우리가 다 해결하며 지내야 했다. 돈이 부족하고 사는 게 힘들다고 하면 집에 오라고 할까 봐 엄마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56쪽)


  책에 실려 있는 두 번째 단편은 서유미의 ‘에트르’이다. 백화점의 빵집 ‘에트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동생과 함께 상경하여 서울에서 살면서 그 생활의 고단함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제일 친한 친구는 삼 자매의 장녀이다. 세 사람이 각각의 가정을 꾸리고 다들 근처에 살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부럽다. 학교 다닐 때 언니나 동성의 동생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진 않았지만, 이렇게 나이 들고 보니 자매들의 삶이 부러워졌다. 그나마 다 큰 딸이 있어 그 마음이 조금 채워지긴 한다. 딸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좋은 것을 보고, 함께 걷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외동인 딸은 시어머니께서 키워 주셨다. 시어머니는 우리 딸만 키워 주신 게 아니라 삼촌네의 두 아이도 키워 주셨다. 다행히도 연년생이 아이들은 서로 재밌게 잘 지냈다. 얼마 전 조카와 딸이 서로 만나 밥을 먹었는데, 딸이 들려주는 둘의 이야기에 가슴이 짠했다. 

  조카는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혼자서 머리도 잘 묶고, 화장도 잘하고 옷도 잘 고르며, 예쁘게 잘 입고 다니는 아이였다. 대학교를 선택할 때도 계약학과를 선택하여, 지금은 우리 아이보다 한 살 어리지만, 벌써 취직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딸이 조카에게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니, 조카가 이런 말을 했단다.

  “언니, 언니가 노량진에서 공부를 한다면, 내가 매달 용돈을 보내줄게.”

  아니,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이 둘은 이미 자매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부모의 곁을 떠나 살게 될 때,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는 그런 사이. 그래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 딸에게 조카가 있어서. 조카에게도 우리 딸이 있어서 부모와는 다른 느낌으로 서로 살아갈 수 있어서.      


3. 정리. 

  바쁜 한 주에 책을 한 권 읽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주에도 책을 한 권 읽었다. 그리고 오며 가며, 아침나절에 걸으며, 저녁에 퇴근하며, ‘공존’이란 단어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지만 그럴 수 있는 건 함께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안다. 서로에게 친절한 것만이 공존의 원리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책의 구절을 빌어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가 내 앞에 있다는 거. 그래서 내가, 아직 상냥한 채로 남아 있어도 된다는 거. 그게 나한테는 정말 중요해.’처럼 아무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 그 존재의 인정과 존중, 그런 것들이 필요함 사회임을, 그런 사회가 될 수 있게 적어도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우리 사회에 ‘공존’이 가장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자매나 남매, 형제가 있다면, 어떻게 지내는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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