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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Jun 03. 2024

책들의 시간 88. 오늘의 좋아하는 것들

#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_김이랑 지음

  소설을 읽으면서, 시집을 읽으면서, 또 사회문화 관련 책을 읽으면서 틈틈이 일러스트레이터가 쓴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림이 가득한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님들이 쓴 책들은 나에게 있어서. 쉽고 익숙하면서도 마음의 한 부분을 위로해 준다. 그래서 쉼이 필요할 때,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그림이 한가득 그려져 있는 책들을 잔뜩 빌려와 읽는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5월에만 10여 권 가까이 된다. 이래저래 행사가 많은 5월에 내 마음에도 쉼이 많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렇게 많은 책들 가운데, 모두가 다 의미 있고 좋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책은 ‘오늘의 좋아하는 것들’이란 책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달마다, 일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수채화로 그린 그림이 가득한 책이었다. 푸른 나무들의 그림을 보는 것, 식물들의 그림을 보는 것, 그리고 고양이를 그린 그림을 보는 것, 작가가 좋아하는 소품들이며,  물감이며, 팔레트이며 수채화 도구들을 보는 것, 작가의 가방 속 소품들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림도 좋았고, 짧게 쓰인 작가의 글들도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마음. 학교의 참 좋은 선생님에게 책을 선물했다. 함께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가고 싶어서.      


1.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귀결되는 삶. 


  저는 좋아하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귀엽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자주 하다 보니 이것이 제 인생관이 되었어요. 지나가다 마주친 작은 풀꽃도 귀엽고, 문구점에서 발견한 작은 지우개도 귀엽고, 과일 가게에서 본 바구니에 담긴 귤들도 귀엽다고 외칩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귀여움을 가지고 있고, 그걸 알아봐 주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매일 하나씩 ‘오늘의 귀여움’을 꼽아보곤 합니다. (5쪽)     

  저는 언제나 제가 행복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작고 귀여운 것에 소소하게 즐거워하고 그것으로 내 취향을 찾아가는 일은 늘 저를 행복하게 해요. 만사 미루는 습관을 가진 게으른 저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 되곤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임을 잊지 마세요. 행복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요. (7쪽)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_김이랑 지음 중>


  ‘오늘의 좋아하는 것들’이 참 좋아서,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았다. 최근의 책은 없었지만 2018년, 2019년 즈음의 책들은 있었다. 그중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는 책 자체는 더 이상 출판되지 않아서 중고책으로 구입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도 이리 그림을 잘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리고는 다시 그림에 대하여 소개하는 영상을 찾아보면서 선긋기부터 시작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수집한다. ‘오늘의 좋아하는 것들’에서는 그렇게 수집한 좋은 것들을, 오늘이라는 날에 맞춰 하나씩 그려나가고, ‘예쁜 쓰레기에 진심입니다’에서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을 항목별로 왜 좋아하는지, 어디서 만났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이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그림이 정말 예쁘다. 작가가 그린 물건들의 그림이 참 예뻐 그 물건에 대하여 검색해 보게 되고 찾아보게 되었다. 갖고 싶은 마음이 뿜뿜해지는 책이다. 


매년 그 해 띠 모양의 뜨개소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고슴도치, 선인장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자신의 취향을 잘 안다는 것이 행복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물었을 때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걸까? 워낙 많아서 하나하나 정리할 수 없지만,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는 것 좋다.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스타벅스에서 텀블러가 새로 나왔는데, 선인장 모양의 실리콘 뚜껑이 있으며, 텀블러의 중앙에 고슴도치 그림이 그려진 텀블러였다. 어찌나 갖고 싶은지 몇 날 며칠을 스타벅스에 들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사 주고 싶어서 여러 번 재방문했으나, 한 곳에서만 딱 하나 살 수 있었고, 그 뒤로는 구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리 직접 발품을 팔아 스타벅스에 다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한데, 그땐 그렇게 직접 사러 다니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선인장과 고슴도치가 함께 있는 텀블러. 


  고슴도치가 좋았던 건 실제 고슴도치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고슴도치 그림이 좋았던 것이었으며, 선인장은 실제 식물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한다. 선인장을 좋아했던 이유는 대학교 때 보았던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대본의 구절 때문이었다. 그 이후 좋아한 것이니 이미 25년이 넘은 애정이다. 온통 물밖에 없지만, 겉엔 잔뜩 가시로 뒤덮인 그 사실이 좋아 선인장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다만 기르는 건 실패했다. 선인장은 과한 관심에 물을 많이 줘서 죽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선인장도 말려 죽였다. 그 사실이 죄책감으로 남아 여전히 식물 기르기는 겁이 난다. 하지만 슬픔을 감추고 가시 돋친 삶을 보여주는 듯한 선인장의 상징성이 나는 좋아 여전히 선인장 그림을 사 모으거나, 선인장 그림을 핸드폰의 배경화면으로 두거나 선인장 양초를 만들어보거나, 직접 선인장 뜨개를 뜨기도 했다.     


  집 안 가득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가는 것이 참 좋았다. 하지만 마음이 간사하여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를 채우지 않는다. 집도 좁거니와 이미 있는 것들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에 대한 열망도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들이 있어 삶이 조금 더 행복해지고 있음을 분명한 사실이다.      


2. 정리


  책을 읽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된 꿈, 그림일기를 쓰는 일상.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이유를 또 하나 더 말하자면, 참으로 민망하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날들이 이어질 때 나의 시간이 그림으로 인해 하루가 금방 저물기를 원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요새 많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책을 읽고, 아이와 여행을 가며 하루의 시간이 무언가로 가득 채워지고 있지만 언젠가 한없이 쓸쓸해지고 외로워질 때 그림으로 인해 나의 시간이 채워진다면 좋을 것 같은 느낌. 시작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그 발을 떼고 싶다.     

 

  책의 작가님처럼이야 절대 그릴 수 없겠지만 작가님의 그림이 참 좋았다. 나는 수채화를 그릴 생각은 없지만 붉은 계열의 꽃 그림, 푸른 계열의 나무 그림이 좋아 책을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내가 이런 그림들을 참 좋아하는구나, 또 하나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기분이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좋아하는 것들을 수집하거나 모아본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것이 무엇이며,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나이가 들어갈수록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노년의 삶에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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