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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8. 2024

내 삶의 중심에 서기


나를 위한 첫 걸음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는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다. 아이가 깨기 전 서둘러 밥을 하고, 빨래를 돌리고, 잠에서 깬 아이와 씨름하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저녁이 되어 있다. 나는 늘 땅만 바라보며 살았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고,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다시 잡아줘야 했으니까.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이제 제법 혼자 걸어 다녔고, 나는 그 뒤를 쫓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치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지 얼마나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무언가에 이끌리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처음엔 생소했다. 내가 왜 하늘을 보는 걸까? 하지만 곧 하늘의 끝없는 파란색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그 하늘은 너무도 맑고 깨끗했으며, 나와는 전혀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느릿하게 떠가는 구름,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새들… 그것들은 모두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동안 나는 아이의 발걸음만을 살피느라 내 세상을 잃어버리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거운 것이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내 삶은 온전히 아이와 가정만을 위한 것으로 채워져 있었고, 나 자신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나의 하루는 반복되는 집안일과 육아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나는 더 이상 내 자신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은 전부 뒤로 미뤄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하늘을 바라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도 이런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하늘을 바라보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을 본 건 그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파란 하늘은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잊고 살았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순간이 나를 위한 첫 걸음이 되었다. 아이의 삶을 지켜보며 나를 잊어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찾고 나를 돌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하루에 몇 분씩은 꼭 하늘을 본다. 짧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



내 목소기 찾기


어느새 나는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가족, 친구, 동료들이 기대하는 모습에 맞춰 행동하고, 그들의 칭찬을 받으면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혼란스러워질 때가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동안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는지조차 흐릿해졌다. 나의 선택이 진짜 내 마음에서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선택이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특히 일과 가정 속에서 나 자신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넌 잘 할 거야." "이건 네가 해야지." "너는 이 역할이 어울려." 이런 말들이 나를 이끄는 듯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잃어갔다. 나도 모르게 그 기대 속에서 나를 감췄고, 어느새 내 안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있었다. 그렇게 길을 잃고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나를 찾기 위한 노력을 조금씩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했다. '잘하고 있다', '이게 옳다'라는 외부의 소리들을 의식적으로 차단했다. 대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려웠다. 타인의 목소리에 가려져 있던 나의 욕구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하루를 찬찬히 돌아보며, 작은 순간마다 내가 진정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 무엇을 먹고 싶을 때, 어디에 가고 싶을 때, 누구를 만나고 싶을 때, 내가 먼저 떠올리는 감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다른 사람의 기대나 판단을 떠올리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며 조금씩 내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이 지쳐 있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나를 억누르고 타인의 기대에 맞추다 보니, 나의 감정과 욕구는 점점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걸 잘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했었다.

조금씩 나를 위해 시간을 내고, 나만의 결정을 내리면서 나는 점점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나에게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한지,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내 목소리를 찾는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이끌려 살았지만, 이제는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다. 타인의 기대 속에서 길을 잃었던 나는 이제 조금씩 나 자신을 되찾아가며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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