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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연 Oct 18. 2024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반복적인 육아의 삶에서 나오는 용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반복되는 일상이 펼쳐진다. 아이를 깨우고, 식사를 챙기고, 옷을 입히고, 하루의 대부분은 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돌아간다. 육아는 늘 변함없는 일정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 익숙함 속에는 답답함도 함께 존재했다. 어느새 나는 아이의 필요에 맞추다 보니 나 자신을 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익숙하지만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있지만, 그동안 쌓인 습관과 두려움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익숙한 것은 안전하다. 나는 내가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일을 해내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도 없다. 하지만 그 안전함 속에서 내가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언제나 내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아이를 돌보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고, 스스로를 돌볼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계속해서 익숙함 속에 머문다면, 결국 내 삶에서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이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씩 생겨났다. 하지만 그 결심에는 두려움이 뒤따랐다. 내가 익숙함을 벗어난다면 과연 그 새로운 세계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육아의 반복적인 일상 외에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아이를 돌보는 시간을 줄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쩐지 죄책감마저 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작은 도전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 나를 위한 짧은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 산책은 길지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큰 여유를 주는지 깨달았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런 작은 도전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더 큰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데는 여전히 두려움이 존재했다.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었고, 그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실수나 실패는 나를 다시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게 만들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다. 익숙함을 벗어난다는 것이 단순한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나를 도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지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지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분명했다. 나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나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육아의 일상 속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찾고,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 잠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간단한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를 돌볼 수 있었다. 그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나는 비로소 익숙함을 벗어나도 괜찮다는 확신을 얻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용기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작은 시도와 실패,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나에게 자리 잡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익숙함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착한 아이 신드롬과 인정 욕구를 넘어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늘 ‘착한 아이’였다.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언제나 기대에 맞추려 노력했다. 남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애쓰는 그 시간들 속에서, 나의 감정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때부터 나는 언제나 "예"라고 대답했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곧 나쁜 아이가 되는 것 같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착하다"는 칭찬은 늘 달콤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그 말은 내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착한 아이로 보이면 인정받을 수 있었고, 남들의 기대에 부응할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남들이 나에게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를 채워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소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거절하는 것이 불편했고, 누군가 나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두려움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직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사로잡았던 ‘착한 아이’라는 역할과, 그 안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였다. "착해야 한다"는 강박은 사실, 사랑받고 싶다는 인정 욕구의 다른 이름이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려고 했다. 그들의 사랑과 인정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하지만 그 삶은 결국 나를 속박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 해도 나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인정과 칭찬은 사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마음은 무거워졌다. 거절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용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그 상처를 마주해야만 했다. 왜 나는 항상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는지, 왜 나는 타인의 인정 없이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깊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착한 아이로 자라왔던 나의 어린 시절이 만들어낸 이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거절하는 용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지만, 그 욕구가 나를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워갔다.


그때부터 나는 천천히, 아주 작은 것부터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사소한 부탁에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불편하고 두려웠다. 누군가가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혹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끊임없이 따라왔다. 하지만 거절의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그 속에서 새로운 자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며 타인의 기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먼저 돌보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거절하는 것은 단순한 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착한 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내 삶의 주도권을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정이었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힘을 키워가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거절할 때마다 조금씩 더 나다워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남들의 기대에 맞추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길러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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