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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Man Jun 13. 2023

로마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3월 1일 로마에 도착했다.


다빈치 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나오던 길에 우산을 빠뜨리고 온 것을 알았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에 현지 날씨 정도는 확인했기에  인천 공항에서 작은 여행용 우산을 살까 말까 기웃거리다가 결국 사지 않았다. 집에 널리고 널린 게 우산이라 돈이 아깝기도 했고 우산 정도야 없어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물건이라도 급하다고 아무거나 사고 싶지는 않았다.


13시간의 비행, 대한항공 직항. 오는 동안 맥주 5캔과 컵라면 하나 프레첼 몇 봉지 두 번의 기내식, 에브리 싱, 에브리웨어 올댓 원스'와 '엘비스'등 몇 편의 최신 영화를 질 나쁜 헤드셋으로 감상하며 항공기용으로 만들어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탑재된 Bose 무선 헤드폰을 안 가져온 것을 후회했다. 챙겨 온 두 권의 책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설레어서였을까? 어찌어찌 지겨운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호주에서 만난 일리아나  때문이었다.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에  후임으로 들어온 20대 초반의 건강하고 활달한 이탈리아 여성. 나보다 훨씬 어렸었지만 더 어른스럽고 일도 잘하고 다정했던 친구. 언젠가 퀸즐랜드주 포트더글라스의 어느 공원에서 여행자들끼리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자랑스럽게"everything from rome'이란 말을 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이번 여행 일정은 3주 정도였고 짐은 정말 최소한으로 콤팩트하게 꾸렸다.  일단 수하물은 당연히 없었고 여행용 힙색 하나에 여권, 현금, 보조배터리 지갑 핸드폰 속옷, 양말 두 개씩 그게 전부였다. 비누도 칫솔도 수건도 안 챙겼고 필요한 건 전부 현지에서 사서 쓸 생각이었다. 3월이지만 한국은 아직 추웠기 때문에 옷을 여러 겹 껴입고 갔다. 가서 모두 버릴 생각으로 구멍 난 속옷과 닳고 닳은 내복을 챙겨 입었다. 그 위에 얇은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또 낡고 오래된 긴팔 셔츠를 입었다. 건빵 주머니가 달린 얇지만 펑퍼짐한 유니클로 검은색 조거 팬츠는 제2의 가방역할을 했고 여행 갈 때마다 입는 검정 하프 집 업 상의는 양옆구리 쪽에도 세로로 지퍼가 달려있어 힙색을 망토처럼 덮을 수 있었다. 신발은 일단 검은색 크록스만 신고 왔다. 현지에서 맘에 드는 신발을 하나 장만할 때까지는 그냥 크록스를 신고 다닐 생각이었다.  검은색 선글라스에는 블루투스로 연결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고 검은 비니는 양 끝을 잡고 털어내면 넥워머로도 쓸 수 있고 헤어밴드도 되는 다용도 제품이었다. 돌아올 때 짐이 늘어날 것을 생각해 검은색 잔스포츠 빈 가방을 들고 갔다. 그것도 벌써 5년 넘게 사용한 낡은 백팩. 모든 게 검은색이었다. 적어도 겉옷은 그랬다.




출발하기 3일 전까지도 계획은커녕 숙소도 예약하지 않았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이렇게 세 도시를 둘러보겠다는 러프한 생각 정도만 있었고 베네치아에서 3주 뒤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언젠가부터 여행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는다. 계획해 봤자 계획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일단 귀찮다. 더 어렸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 어른이 되니까 뻔뻔스러워졌다랄까?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일단 떠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 친구들 모두 그런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고 나는 그런 내가 이상스럽게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도 이탈리아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첫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루트 정도는 한국을 떠나기 전에 대충 검색해 두었었다. 로마에 온 여행자들이 처음 모이는 장소는 때르미니 지하철역. 공항에서 때르미니역 까지 가는 방법은 트레인, 시내버스, 공항버스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서 각 이동 수단의 가격이나 예약 방법 티켓매표소 등을 폰으로 검색해서 캡처해 뒀었다. 혹시나 인터넷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서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꼭 현지 심 카드를 구입해서 편하게 다니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로마 공항에 겨우 오후 7시쯤에 도착했건만 이미 상가들은 전부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도 숙소까지 편하게 갈 수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 캡처해 둔 스크린숏에 의지하여 숙소를 찾아가야 했고 또 그렇게 첫날을 보내자 또다시 버릇처럼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며 결국 이번에도 여행 끝날 때까지 심 카드 없이 여행을 하고 말았다.




 물론 내게도 약간의 핑계는 있다. 모바일폰으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면 그만큼 폰에 의지하게 될 테고 여행하는 내내 핸드폰만 바라보게 될 거라는 것. 소중한 돈과 시간을 들여 이 먼 곳까지 왔는데 1분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그렇게 여행하다 보면 길 위에서 와이파이를 찾아 낭비하는 시간이 생긴다. 심 카드 하나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그래 그러니까 다음 여행에는 꼭 유심을 사용하리라 다짐한다. 요즘 세대들처럼 미리 예약 주문해서 여행 시작과 동시에 심 카드를 끼워 사용하고 인터넷에서 자유로와 지리라. 우버 같은 택시도 활용하고 편하게 여행할 것이다. 그러면 와이파이 때문에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될 것이고 어두운 밤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될 것이며 와이파이가 터질 때마다 구글맵에서 내 위치를 활성화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고 아무 때나 인스타그램을 과 카톡을 확인할 수 있으며 네이버에서 프로야구 소식도 볼 수 있고 유튜브도 볼 수 있고  한국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언제나 받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다음 여행에서도 또 이 불편한 짓을 반복할 것만 같다. 왜냐하면 여행은 원래 편하려고 하는 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저 옛날 사람이 되어 버려서 그런 것일까?




 아무튼 그렇게 또 헤매고 헤매서 첫날 숙소에 도착했다.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로마 때르미니 역 뒷골목에서 우산도 없이 스카프를 뒤집어쓰고 노숙자들과 불한당들이 우글거리는 어두운 밤거리를 걸었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구글맵스를 캡처한 숙소의 스크린숏을 들이밀며 최대한 예의 바르게 방향을 물어봤지만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심지어는 오히려 흠칫 놀라는 무서운 얼굴의 남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이 숙소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같은 장소를 왔다 갔다 몇 번을 헤맨 끝에 결국 찾기는 찾았는데 모바일폰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장소였다.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몰려드는 로마에서 하룻밤에 14유로라는 너무도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에  전혀 기대는 안 했지만 이 정도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최소한 호스텔 간판은 있을 줄 알았다. 무시무시하게 크고 낡은 건물에 (한 20층 정도는 됐었던 것 같다.) 딱 한층 그것도 여러 세대 중에 겨우 좁디좁은 한세대에 꾸려진 지저분하고 초라한 호스텔. 바깥 입구,  초인종 누르는 곳에 겨우 아스피린 한 알 만한 글씨로 "Sunshine hostel'이라고 쓰여 있을 뿐. 오로지 모바일에서 특히 아고다에서만 영업행위를  하는 모양이었다.  리셉션에는 딱히 친절하지도 불친절하지도 않은 아마도 모로코 출신인 듯한 직원이 발 냄새와 함께 맞아 주었다. 간단한 체크인 이후  6인실 도미토리로 안내를 받았는데 역시나 2층 침대의 위 칸을 배정받았다. 도미토리에 아직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혹시 아래 칸은 없느냐고 물었는데 그 작은 욕심이 그날의, 어쩌면 이번 여행의 가장 크나큰 실수이자 재앙이 되고 말았다. 직원은 이방은 단체 손님이 오기로 되어있으니 1층 침대를 원한다면 다른 방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새로 옮긴 방의 푹 꺼진 1층 침대에서 (아마도 베개에서) 몇 마리였는지는 알 수 없는 배드 버그에 뒷목과 손목등을 셀 수 없이 물려버려서 로마에 도착한 첫날부터 대부분의 옷을 버리고 가방 등 버릴 수 없는 물건은 전부 세탁 소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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