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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Man Jun 19. 2023

투어와 자유여행

히맨の이탈리아 기행

첫날 숙소에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단 호스텔의 매트리스가 허리가 쑥 들어갈 정도로 푹 꺼져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커플 여행자는 피곤했는지 옆 침대에서 코를 심하게 골아댔다. 오랜만에 장거리 비행으로 몸은 피곤했지만 뇌는 각성 상태에 있는듯했다. 결국 수면을 포기하고 새벽부터 첫날 일정을 짰다.




우선은 바티칸시국에 가볼 생각이었다. 호스텔 와이파이를 이용해 검색해 보니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인들이 하는 바티칸 투어가 몇 개 보였다. 반나절 투어 비용은 20~25유로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여행 오기 전에 만났던 오랜 지인과 유럽의 미술관 투어 이야기를 하다가 ‘투어가 꼭 나쁜 것은 아니야 ‘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그녀는 혼자 남극까지 다녀온 그야말로 베테랑 여행자였다. 그렇지만 투어 신청은 좀 망설여졌다. 아직 한 번도 여행하면서 가이드 투어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고 일단 나는 해외에 나오면 한국 사람들을 애써 만나려고는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것은 호주에 어학연수로 1년 동안 머물 때부터 생긴 습관인데 내가 다니던 어학원에서는 모국어 사용을 금지하고 오직 영어만 쓰게 했었기 때문에 한국말을 쓰지 않기 위해서 한국 사람을 만나지 않았었고 한국어 콘텐츠 역시 보지도 읽지도 않았었다. 당시엔 인터넷 검색도 영어로만 했었고 심지어는 한국 음식도 먹지 않았었다. 그랬더니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오랜만에 한국인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우리말이 약간 어눌해진 것을 처음 경험했고 내가 조금씩 영어식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영어회화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나는 유럽과 남미까지의 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여행은 중단됐었고 그렇게 아쉽게 귀국하게 됐었다. 그리고 얼마 뒤 제주에 내려와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낡은 건물에 터를 잡고 가게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해 왔다. 그 후로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마음은 항상 그때 이루지 못한 세계여행을 다시 떠나는 날을 꿈꾸지만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이렇게 일 년에 한두 번씩 간헐적으로 짧은 여행을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중이다.


고민 끝에 결국 투어 신청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시간은 체크해 두고 이른 아침 호스텔을 나왔다. 이때까지도 지난밤에 배드 버그에 물린 줄 모르고 있었다. 유럽산 빈대인지 진드기인지 하는 이 지독한 생물은 막상 물릴 때는 물렸는지 모를 정도로 통증이 미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어 오르고 번지며 마침내 미친 듯이 가려워진다. 모기는 한두 군데 물리면 곧 알게 되지만 이 녀석은 수십 군데 물릴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하루 이틀 뒤에야 물린 곳들이 점점 붉게 변하면서 알아차리게 될 즈음이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이렇게 될 것을 마치 알고 있었던 것처럼 버릴 옷만 입고 왔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그날 입고 있던 옷을 전부 버렸다. 겉옷은 벗어 옷걸이에 걸고 침대에 누웠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했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가방들과 함께 빨래방에서 고온으로 세탁 소독해야 했다.


알고 보니 내가 머물렀던 호스텔이 있던 때르미니 역 뒷골목은 로마에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추는 아침에도 거리는 우중충했다. 지나는 사람들도 표정에 생기가 없었다. 당장 그날 밤에 피렌체로 떠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로마의 교황청만은 꼭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략 바티칸시국의 위치와 간단한 정보를 확인하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때르미니역으로 다시 걸어 나왔다.


숙소에서 때르미니 역까지 가는 음산한 골목길에 식료품 가게인지 카페인지 구분이 애매한 상점들에서는 건설 노동자로 보이는 남자들이 입가에 설탕을 묻혀가며 크루아상이나 도넛 같은 빵을 한 손에 들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대부분 바리스타가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를 선체로 3분 안에 마시고 떠났다. 말 그대로 익스프레스. 때르미니 역 뒷골목은 어두운 밤이면 갑자기 타이슨 같은 남자들이 나타나 퍽치기를 하고 달아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고 투어 가이드가 말해주었다. 내게 해준 말은 아니었지만 바티칸 뮤지엄에 입장하기 위해서 줄을 서있을 때 앞뒤로 한국인 투어팀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거나 귀를 막지 않는 이상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로마 첫날에는 박물관에 가지 않고 성 베드로 성당과 산탄젤로성 정도만을 둘러보고 새로운 숙소까지 걸어서 돌아왔는데 그때까지도 바티칸 박물관이나 시스티나 예배당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로마에 있던 내내 아침에 바티칸에 갔었는데 둘째 날 길에서 만난 스티븐이라는 영국 친구 덕분에 바티칸 박물관의 존재와 위치를 알게 되어 가보았으나 그날은 이미 어마어마한 줄이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고 질려버려서 포기하고 숙소에 돌아와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하는 티켓을 예약하려고 보니 내가 있던 날 앞뒤로 몇 주는 이미 매진이었다. 할 수 없이 셋째 날 박물관 입장시간 한 시간 전에 미리 가서 줄을 서기로 했다. 한 시간 정도는 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8시가 되기 전에 박물관에 가보니 역시 예상대로 한국인 투어팀이 보였다. 다행히 줄은 아직 길지 않아서 9시가 되면 바로 입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 바닥에 일회용 수건을 깔고 앉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로마 편을 읽었다. 그 책은 꽤 두꺼웠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가져오길 상당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괴테가 로마에 왔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이지만 그가 보고 경탄해 마지않던 콜로세움과 판테온,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아직도 건재하지 않은가? 로마에 처음 도착한 괴테가 말했다. 드디어 자신은 이 세계의 수도에 도착했다며, “세상의 모든 것은 이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호주 케언즈에서 만났던 일리아나가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괴테는 특히나 시스티나 성당과 미켈란 젤로에 관해 많이 묘사했는데 그것들을 읽느라 입장시간까지 한 시간 동안 줄을 서있는 것(사실 바닥에 앉아있었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이제 곧 보게 될 천장화가 너무 기대되어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나는 마치 애니메이션 ’ 플란다스 개’의 주인공 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양옆에서는 한국인 가이드들이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로마와 바티칸에 관해서 열심히 안내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수십 번 반복했던 내용이었으리라. 나는 오롯이 독서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너무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무임승차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개중에는 간혹 내게 아주 유익한 정보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1.5유로짜리 로마 지하철 편도 티켓은 지하철을 타고나서도 버리지 말고 갖고 있으면 그 티켓으로 하루 종일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는 내용 같은 것들이었다. 어쩐지 나오는 개찰구에서 티켓을 회수하지 않았었다. 로마에 온 첫날과 둘째 날에 무식하게 많이도 걸어 다녔었는데 이날 이후로는 로마 시내버스를 아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아 이럴 때는 현지 투어가 참 유용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에는 꼭 심 카드와 함께 투어를 이용하리라 다짐했다. 과연...


드디어 9시가 되었고 박물관 문이 열렸다. 매표소에서 내 앞에 있던 한국인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돈을 걷어서 티켓 30장을 샀다. 분명 한국인인데 이탈리아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젊고 세련된 남자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여자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남자였다. 역시 이탈리아에 살아서 그런지 패션이 남달랐는데 현지어까지 유창하게 구사하니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내 차례가 되어 티켓 한 장만 달라고 했더니 양복을 입은 멋지게 생긴 직원 아저씨가 ’ 우노?‘라고 말하며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나 스스로 티켓 한 장을 샀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져 가벼운 발걸음으로 박물관에 입장했다. 그리고 시스티나 성당을 향해 돌진했다. 중간에 나오는 모든 무수한 조각상들과 유적들을 스킵하고 오로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 사이사이를 빠른 걸음으로 스치듯 나아갔다. 어차피 이 모든 사람들은 바티칸뮤지엄의 하이라이트인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가게 되어 있었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의 몸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투어를 신청하지 않은 본질적인 이유였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요즘은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입고, 신고, 먹고, 움직이는 모든 행위와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 이것이 과연 내 생각이었는지 남의 생각이았는지 때로는 아무런 의심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파 속에 줄을 따라 걸어간다.


그래서 가끔 여행을 떠나왔을 때 비로소 내가 살던 세상에서 줄 서 걸어가는 내 모습을 마치 유체 이탈을 한 내가 내려다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항상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삶을 살아낼 만큼 나 자신이 특별하거나 용기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대략 어느 정도는 주위를 살피며 적당히 보폭을 맞추며 살아가게 되지만 여행을 떠나왔을 때 만이라도 되도록 나 스스로 내가 가야 할 곳을 결정하고 싶었다. 물론 삶과 여행을 구분 짓는 것이 어쩌면 무의미하거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의 의미는 나에게는 관광이나 휴양보다는 낯선 환경에 나를 옮겨 놓는 일이다. 권태와 타성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보는 일이며 기본적으로 피곤하고 고달픈 일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눈이 빛나고 세포가 살아나고 영감을 얻는 일인 것이다. 그런 내게 투어의 효율성은 오히려 비효율적 일지 모른다. 그 수많은 정보들을 어차피 다 기억할 수도 없지 않은가. 차라리 최소한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순간 만이라도 내가 서고 싶을 때 서고 가고 싶을 때 움직이고 싶었다.


시스티나 성당에 아마도 그날 한국인 중에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을 것이다. 너무 기대한 나머지 실망하면 어쩌지 했던 마음은 예배당에 입장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말도 안 되는 거대한 천장 벽화를 보는 순간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고 동공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목을 뒤로 꺾고 침을 삼키며 천천히 시간을 들여 천장화를 감상했다. 예배당 중앙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조각상 뒤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마들이 보였다. 하늘에서는 천사들과 구원자가 내려오고 있었다. 최후의 심판이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빛의 양에 따라서 또 내 눈이 예배당의 조도에 적응하면서 그림의 빛깔이 조금씩 달라지고 선명해지기도 하였다. 그것은 내가 이때껏 본 한 인간이 연출한 예술작품 중에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나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두 시간인지 세 시간인지 예배당에 머물며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장화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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