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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Apr 30. 2023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①

꿈의 학교 하랑 EP1

똑딱똑딱



삐이이익



조용하면서 아늑한 공간에 두 가지 소리가 번갈아, 경쟁하듯 울려 퍼졌습니다. 특이할 것 없는 심플한 원형 시계의 초침이 바쁘게 움직이며 스타카토를 하기 시작합니다. 시계의 밑에는 끓고 있는 전기포트에서 수증기가 찬공기와 만나 내는 증기 소리로 존재감을 표시합니다. 가만히 시계를 들여다보던 숀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2를 가리키는 순간 앉아있던 의자에서 힘차게 일어났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림보 하듯 뒤로 크게 한 번.



쭈우우욱 기지개를 거창하게 킨 숀은 신발끈이 잘 묶여있는지 상태를 확인하고, 푸른색 캡 모자를 깊게 눌러썼습니다. 선반에 있던 노란색 손전등을 챙깁니다. 그러면,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식기 전에 다녀오겠네.



알맞게 끓어 수증기를 뿜어대는 것을 멈춘 전기포트를 보며 숀은 한마디를 던집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데도 숀은 종종 경비실안에 있는 물건들에게 말을 걸곤 합니다. 조용하고 아늑한 이 공간은 그만의 공간이고 , 그곳에서는 사물에 말을 거는 미친 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고 탓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고독 속 아늑함을 숀은 즐거워합니다.



 문을 나서니 청아하고 맑은 달빛이 운동장을 비춰주었습니다. 10월의 밤공기는 적당한 차가움을 머금고 있어, 숀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가 매번 순찰을 도는 시간은 자정. 하루가 바뀌는 마법 같은 시간에 학교를 돌며 특이사항은 없는지, 혹여나 불청객이 오지 않았는지 살피는 일이 숀의 업무입니다.

 가장 가까운 급식실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철문의 시건상태를 직접 당겨보며 꼼꼼하게 확인한 후, 숀은 급식실과 연결된 다리를 건너 본관 2층에 도착했습니다. 낮에는 시끌벅적, 학생들의 발걸음으로 쉼 없이 가득 찼을 복도가 지금은 오직 숀만의 발걸음소리만을 담고 있습니다.



뚜벅뚜벅



숀이 언제나 신고 있는 군용화를 닮은 검은색 부츠는 약간의 굽이 있어서 걸을 때마다 제법 무거운 발소리가 납니다. 숀은 손전등으로 교실 안을 살피며 이따금씩 귀를 기울여 자신의 발소리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마치 숀이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듯이, 고요하고 조용한 복도에서 울리는 소리는 벽을 타고, 창문을 두드리며 멀리까지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고독을 즐기는 아저씨였고 자신의 소리만을 온전히 담고 있는 복도에서의 순찰시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찰 코스 였습니다.



흐흥~ 흐흐 흥 ~



건장한 조랑말이 여름감기에 걸려버려서, 코가 살짝 막힌듯한 괴상한 콧노래를 부르며 숀은 본관을 넘어 야자실로 향하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불빛이 비추어져 있는 것을 보며 숀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눈을 조금 찌푸리며 앞을 보니 야자실 창문틈새로 불빛이 쏟아지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야자를 마친 학생 중 한 명이 불을 끄지 않고 갔나?’



X의 학교, ‘하랑’의 야자시간은 10시까지입니다. 자정이 넘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학생이 있을 리는 없고, 숀은 어떤 학생 중 한 명이 급하게 집에 가느라 불을 끄지 않고 갔다고 생각하며 야자실 불을 끄기 위해 야자실문을 열었습니다.



드르륵!



“으아아…”



그러나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야자실에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었습니다. 책상에 막 앉아있다가 일어선 듯 상체는 앞으로 과하게 기울어진 채, 불안하게 흔들거리는 불청객의 손에서 땡그랑! 소리를 내며 들고 있던 필통이 떨어집니다. 숀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잔뜩 긴장했지만, 뻣뻣하게 굳은 몸을 날개를 활짝 핀 공작새처럼 억지로 부풀리며 손전등을 위협적으로 불청객에게 비추었습니다.



“ 거 누구요! 학생은 아닌 거 같은데, 이 시간에 여기 야자실에 있는 이유가 대체 뭐요? “



“ 아.. 경비아저씨. 저 진짜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요…그러니까 그..”



불청객은 당황한 듯이 들고 있던 가방을 급하게 뒤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젊은 청년의 나이로 보였으나 그렇다고 학생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아 보였습니다. 머리는 꾀죄죄한 더벅머리에 두꺼운 안경, 밀지 않은 수염… 여러모로 학생보다는 백수에 어울리는 모습이겠거니.. 숀은 생각했습니다.



“그… 이걸 봐주세요 아저씨!”



불청객이 급하게 꺼내든 것은 꾸깃꾸깃한 종이였습니다. 가로로 길쭉한 종이 위의 글씨를 읽어보던 숀은 예상치 못한 내용에 눈을 크게 떴습니다.



“23년… 수능 수험표?”



놀라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수험표 및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 숀은 이 불청객의 나이가 21살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꼬깃하게 접힌 종이가 떨리는 손에 의해 바르르 얇은 소리를 내며 떨리고 있었습니다. 불청객, 아니 삼수생의 눈은 두려움에 요동치며 숀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눈 밑에는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잠시 삼수생의 눈을 바라보던 숀은 그의 얼굴을 비추던 손전등을 내렸습니다.



“자네...”

그가 말을 걸자 삼수생은 당황한 듯 뒷걸음질 쳤습니다.



작은 충격에도 바람에 맞은 참새처럼 몸을 떨며 그는 이내 불이 켜져 있던 책상에 등을 부딪혔습니다. 그 충격으로 책상 위에 있던 물건이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빼곡하게 적힌 깜지노트, 검은색 샤프, 닳아서 짜리 몽땅해진 지우개가 각각의 소리를 내며 삼수생의 앞에 뒹굴고 있었습니다.



“ 아.. 죄송합니다. 얼른 치우고 나갈게요 경비 아저씨… 정말 죄송합니다..”



황급히 무릎을 꿇고 물건을 집어 들기 시작한 삼수생을 보며 숀은 한숨을 한번 포옥 쉬고는 같이 주저앉아 물건을 집어서 삼수생에게 건넸습니다. 당황한 삼수생의 동그래진 눈이 안경너머로 숀을 바라봅니다. 



“숀이라고 불러주게. 아저씨가 아니라.”



“아… 숀 씨..! “



삼수생은 숀의 예상치 못한 친절에 더욱 당황한 듯 바닥에 지진이라도 난 듯 손을 넘어 다리까지 바르르 떨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겁이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 야밤에 몰래 들어올 생각을 한 거지.. 숀은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 시간에 여기는 어쩐 일로 오게 된 건가.”



숀의 물음에 삼수생은 들고 있던 노트를 꽉 쥐며 힘없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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