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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05. 2023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②

꿈의 학교 하랑 EP1

“저는 하랑의 졸업생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공부를 조금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은 듯, 조그마한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숀은 그를 재촉하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야자실에 있는 불빛을 벗 삼아 그는 삼수생의 과거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삼수생, 그는 반에서도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하였습니다. 그만큼 자신감도 있었고 ,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전교에서 상위 50등 안에 들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이곳 야자실에서도 매일 친구들과 불을 밝히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즐거웠어요… 가끔씩 야자가 다 끝나고 학교 앞 편의점에서 불닭볶음면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먹고 버스비는 없어서 집까지 30분을 걸어갔던 시간까지… 전부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어요.”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즐거운 듯 처음으로 삼수생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웃음은 짙은 어둠으로 덧칠되어가고 말았습니다.



즐거운 시간, 열심히 공부를 하였던 시간을 비웃듯 그의 첫 수능 결과는 처참했고, 원하던 대학에는 모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원하던 대학에 간 사람도, 적당히 성적을 맞추어 대학을 진학한 사람도 있었으나 청년은 그런 선택지를 택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다시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그때의 그에게는 그런 끝 모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게 된 재수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은 대학에 진학하며 자신이 아닌, 대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의 교우관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청춘의 자유로운 공기와 설렘을 느낄 자격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맥주를 들이켤 때조차도 그는 친구들과 함께 홍대의 번화가가 아닌 조용한 방 책상에 앉아서 잔을 기울였습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일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음을 던져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말없이 기다려주는 부모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끝 모를 죄책감과 부담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은 청년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고 고독한 시간이었습니다. 


청년을 움직이게 했던 자신감은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흔들리기 시작했고, 추워지기 시작한 수능의 계절이 다가오자 청년의 자신감은 사그라들어 온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수능을 망치고… 삼수를 시작했어요. 죄인처럼.. 네. 저는 죄인이에요.”



삼수생의 몸이 다시 떨렸습니다. 야자실은 자정을 넘은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이야기가 원인이 되었는지 점점 싸늘한 공기로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코끼리는 죽기 전에 생전에 봐둔 동굴로 들어가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대요..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고 생전에 추억이 있었던 동굴로 들어가서 조용히…



“숀. 저는요. 자신이 없어요. 이제는 뭐가 정답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제가 맞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요. 어쩌면 저는 죽기 직전의 코끼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삼수생은 물기가 맺힌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의 더듬거림이 조금 더 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곳 야자실을 찾았어요. 그때의 온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까 하고. 지금이 아니면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았어요. 여기가 제가 생각한 저의 동굴이었어요.



말을 마친 그는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두꺼운 안경 렌즈 너머로 눈물이 흘렀고, 바닥에 떨어진 눈물은 구겨지듯 움켜쥔 그의 수험표를 적셨습니다. 그런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숀은 이내 바닥에서 일어나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리고 자리에 주저앉아있는 삼수생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자네, 시간이 되면 나랑 어디 좀 잠시 같이 가줄 수 있겠나?”



“어딜요..?”



“잠깐 들릴 데가 있어.”



숀은 잔뜩 위축된 삼수생을 데리고 복도를 걸어, 연결다리를 건너 처음 순찰을 시작한 급식실에 이르렀습니다. 2층에 있는 급식실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순찰을 마친 그는 계단을 내려와 그의 보금자리인 경비실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경비실의 문을 열고 그는 삼수생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습니다. 



“잠깐 있다 가게나~ 줄게 있다네. 자리가 협소하니 침대에 편하게 앉고.”



머뭇거리던 삼수생은 이내 한숨을 포옥 쉬고 조심스러운 행색으로 경비실에 발을 들였습니다. 마치 처음 집들이를 방문하는 친구의 모습처럼 그는 발가락을 연신 꼼지락 거리며 온몸으로 불편함을 표현했지만, 곧 엉덩이에 무게를 주며 침대에 살포시 앉았습니다. 



“거봐 내가 식기 전에 돌아온다고 했지?”



숀은 자기가 삼수생을 방에 들였다는 사실도 잊은 듯 말 못 하는 전기포트에게 대화를 시도하며 이내 찬장에서 익숙한 스틱 봉지를 뜯었습니다. 고소해 보이는 견과류와 모래알갱이 같은 고운 가루가 종이컵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숀은 이어서 전기포트에 담겨 있던 뜨거운 물을 종이컵에 붓고 티스푼으로 가루와 물이 섞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 정성스레, 마치 신에게 바치는 공물을 다루듯 스푼을 저었습니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경비실을 채웠습니다. 



숀이 삼수생에게 타준 담티 율무차



“자, 따뜻할 때 마셔야 맛있어. 아무에게나 타주는 거 아냐. 우리 교장선생님한테도 타준 적 없는걸”



물론 밤에만 출근을 하는 숀은 실제로도 교장선생님을 본 적이 없지만, 타주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껄껄 즐겁게 웃어젖혔습니다. 아재 웃음을 뒤로 한채 그는 삼수생에게 종이컵을 건넸습니다. 고소한 호두와 잣이 동동 떠다니는 담티 율무차를 받아 든 삼수생은 소중한 물건을 쥐듯 조심스레 종이컵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 쥐었습니다.



“율무차네요.. 이 브랜드 거 맛있는데..”



“맞아. 이런 야심한 시각에 순찰을 마치고 따뜻한 율무차를 한잔 하는 게 내 루틴이거든. 지금 이 시간에 먹는 율무차가 정말 존맛탱이라고.”



“존맛.. 네? 그게 뭐죠?”



삼수생은 율무차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갑작스러운 숀의 신조어에 외계어라도 들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하였습니다. 



“그 젊은 친구가… 존맛탱이라는 단어도 모르나? 요새 유행하는 언어라던데.”



“어.. 맛있다는 뜻인가요? 에이 아저씨, 한 20년 전에 쓰던 유행어 아니에요? 요새는 미미 라고 한다고요”



“미미..? 미미가 뭐지. 어디 바비인형 이름인가?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다?”



“하아… 한자의 아름다울 미! , 맛 미!  합쳐서 아름다운 맛! 미미 라구요. 이거도 모르면서 숀..”

삼수생은 답답하다는 듯이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가슴을 콩콩 치며 숀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숀 역시 지지 않고 나이도 어린 건방진 녀석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마주 보았습니다. 그러기를 몇 초..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 고맙습니다. 숀.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따뜻한 율무차도 오랜만이네요.”



삼수생은 진심으로 숀에게 고마워하였습니다. 사소한 말장난일 뿐이었고 그저 율무차 한잔이었지만, 그런 작은 온기가 그에게는 너무 절실했고 소중하였습니다.



“거 , 은혜를 원수로 갚는 청년이네. 율무차나 후딱 마시고 얼른 가버리라고.”



 말로는 툴툴거리는 숀 역시 조용히 율무차를 홀짝이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입가에는 어느새 작은 웃음기가 맺혀 있었습니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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