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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07. 2023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完

꿈의 학교 하랑 EP 1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삼수생은 떨지 않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교문을 나섰습니다. 학교를 떠나는 그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 보였습니다. 숀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어쩌면 저 삼수생은, 아니 청년은 타지 않은 율무차의 가루일지로 모르겠다고. 물과 섞여 달콤하고 따뜻한 율무차가 되기 전까지 가루상태의 율무차는 율무차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그는 달콤하고 고소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숀은 그렇게 믿으며 마음속으로 그를 응원하였습니다.



어느덧 시침은 새벽 4시를 가리켰으나, 숀은 지금 이 새벽의 시간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피로감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개운함과 편안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그러나 슬슬 '그' 준비를 할 시간이었습니다. 찻잔을 정리한 숀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으며 이내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따르르르릉



길게 울리는 쨍한 자명종 소리에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부스스하게 진 까치집을 뒤로 한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습관처럼 화장실로 향해, 샤워를 하였습니다. 따스한 온수를 온몸으로 맞으며 그는 거울 속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아저씨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엿한 소년의 얼굴. 그곳에는 검은 머리의 앳되보이는 소년의 얼굴이 반쯤 감 긴 눈을 뜨며 거울밖 소년과 눈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꿈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네.”



숀은, 아니 소년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되짚어보며 삼수생과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해 보았습니다. 짧지만 재밌었던 시간이었으나 그것이 한낱 꿈이었을 뿐임에 아쉬워하며 소년은 넓은 집에 홀로 있는 자신의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을 한탄했습니다.



'어쩌면 이곳이 코끼리의 굴일지도 모르겠어.'




소년은 꿈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가족을 잃고 홀로 넓은 집에 남게 된 이후부터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기 위해, 아버지의 침대에서 잠들고 난 후부터..



꿈에서 그는 매번 꿈의 학교 하랑의 경비아저씨, 숀으로 깨어났습니다. 처음 숀의 모습으로 잠에서 깨었을 땐 기절할 듯이 놀랐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시간, 장소, 덩치가 큰 몸뚱이 삼박자에 한참을 삐그덕 거렸지만 지금은 오히려 숀으로 활동을 하는 꿈의 시간이 너무나도 기다려집니다. 현실의 소년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넓은 집은 가족의 온기대신 어둠만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꿈속의 숀은 그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 있었고, 그만의 작지만 따뜻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밖으로 나서는 대신 얼른 잠이 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현실은 마치 유빙 밑바닥의 심해처럼 너무나도 넓고 차가웠지만 꿈의 학교 하랑에서의 숀은 그 유빙을 뚫고 곧게 서있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번 학교 순찰을 돌아야 하고 순찰이 끝나면 경비실로 돌아와 따뜻한 차와 함께 오늘 하루를 곱씹으며 잠을 청하는 일은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랑은 숀을 필요로 하고 숀 역시 하랑이라는 학교가 준 역할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꿈으로의 일탈은 매번 즐거움의 연속입니다.



똑딱똑딱



밤까지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소년은 아버지의 침대맡에 놓인 시계가 11시 55분을 가리키자 책을 덮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습니다. 기억 속 밑바닥, 들여다보기조차 두려운 어둠 속에 아버지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사건 이후로 그의 얼굴은 떠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아버지의 포근한 향기가 남아있는 이불은 외로웠던 소년을 금방 잠에 빠져들게 하였습니다.





삐이이익



전기포트에서 수증기가 찬공기와 만나 내는 증기 소리로 존재감을 표시합니다. 눈을 감고 있던 숀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2를 가리키는 순간 앉아있던 의자에서 힘차게 일어났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림보 하듯 뒤로 크게 한 번.



쭈우우욱 기지개를 거창하게 킨 숀은 신발끈이 잘 묶여있는지 상태를 확인하고, 푸른색 캡 모자를 깊게 눌러썼습니다. 선반에 있던 노란색 손전등을 챙깁니다. 그러면,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식기 전에 다녀오겠네.”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끝.


- 'EP2.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① (brunch.co.kr)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②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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