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우 May 11. 2023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①

꿈의  학교 하랑 EP 2

덜컥 덜컥 



하나밖에 없는 경비실 창문이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은 창문밖에는 하얗고 거친 눈발이 돌풍에 감겨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눈발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굵어지면서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건너편에 있는 야자실 건물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진 눈바람을 보며 숀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습니다.   



“순찰.. 돌고 올 수 있겠지?”



입으로 스틱 윗부분을 뜯고 막심 커피를 휘휘 저어 종이컵에 따라 마시며, 발밑에 놓아둔 전기난로의 온도를 높였습니다. 기본적인 난방은 들어오지만 외풍이 세게 들이치는 12월의 바람은 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와 숀의 발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두 겹으로 신은 양말 속에서 발가락을 연신 꼼지락꼼지락 거리던 숀은 어김없이 시침과 분침이 만나는 자정의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림보 하듯 뒤로 크게 한 번. 



오늘도 쭈우우욱 거창하게 기지개를 킨 숀은 캡을 눌러쓰고 두꺼운 경비외투, 커다란 곰발바닥 장갑까지.. 야무지게 순찰을 떠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곰발바닥 장갑은 안 그래도 덩치가 큰 편인 숀의 체구를 더욱 커다랗고 위압적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오늘도 식기 전에 다녀오겠네.”



언제나 있는 숀의 인사말에 전기포트는 조용히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거친 눈발은 내린 지 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운동장을 하얀 벌판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숀은 경비실 바깥에 있는 비품함에서 초록색 머리털을 가진 빗자루를 꺼내 들었습니다. 순찰을 가는 길목만이라도 눈을 치울 요량으로 쓱싹쓱싹 눈을 치우며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눈을 치우며 앞으로 나아가던 숀은 뒤를 돌아보더니 이윽고 빗자루를 내려놓았습니다. 


하얀 벌판의 꿈의 학교 하랑


“이거.. 해봤자 의미가 없겠구먼”



숙련된 제설병처럼 좌우로 종횡무진 쓸고 다녔던 길은 그 짧은 시간에 다시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숀의 제설 실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남긴 길은 흔적도 없이 새하얀 비웃음에 먹혀 사라져 버렸습니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조금은 망연자실하게 서있던 숀은 이윽고 빗자루를 던져버린 후, 본관을 따라 순찰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본관 건물에 다다른 숀은 평소 하랑에서는 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물체가 운동장 한편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거칠게 몰아치는 눈보라는 가시거리를 한껏 낮춰 놓았기에 터벅터벅 걷던 숀은 건물 바로 앞까지 와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오토바이가 여기 왜 있지?”



익숙한 민트색 바탕의 디자인에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배달캐릭터,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는 이륜 오토바이가 본관 건물 앞에 정차해 있었습니다. 민트색 컬러는 펑펑 내리는 눈이 소복이 쌓여 벌써 절반 정도 가려져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몇 달 만에 찾아온 불청객인가 봅니다. 



“오늘은 조금 더 열심히 순찰을 돌아야겠구나.”



으쌰! 하는 기함을 내지른 숀은 본관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토바이가 아직 정차해 있다는 것은 범인이 학교 내부에 있다는 이야기. 숀은 오랜만에 숨바꼭질을 하는 술래가 된 기분으로 경비아저씨의 본분에 과몰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그는 뜨거운 콧김을 킁킁 내뿜으며 교실문을 하나씩 열어보았습니다. 



1층에 있는 교무실과 교실에는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숀은 1층부터 잡히면 재미가 없는 불청객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입맛을 다셨습니다. 텅 빈 미술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살금살금 



덩치는 곰같이 커서 하는 행동은 새벽에 술을 먹다 들어와서 집에 몰래 숨어드는 새내기 대학생처럼, 숀은 살금살금 텅 빈 2층 복도를 걸어 다녔습니다. 혹여나 발소리를 듣고 도둑… 아니 불청객이 도망가버리면 곤란해지기 때문입니다. 2층의 양호실을 지나 복도 끝에 있는 연결다리를 건너면서 몇 달 전 찾아왔던 친구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설마 그 친구인가 싶어 기대반, 반가움반의 마음으로 숀은 야자실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아쉽게도, 야자실에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싸늘한 기운만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을 그 친구가 두고 간 걱정을, 야자실이라는 공간은 온전히 들이마쉰듯 차가운 공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누가 창문을 열어놓았구먼.”



어쩐지 춥다 싶더니, 야자를 마친 학생 중 한 명이 창문을 닫고 가는 것을 깜박했나 봅니다. 어쩌면 환기를 시키고 나가던 사감 선생님이 범인일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숀은 얼른 창문을 닫았습니다. 창문을 열어놓은지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창문 바로 옆에 있던 독서실 책상 위에는 벌써 눈이 얇게 쌓여 있었습니다. 



책상 위의 눈을 치울 행주를 찾고 있던 숀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창틀에 얼굴이 찌그러질 정도로 밀착시킨 채 건너편을 바라보았습니다. 본관 3층보다 위, 옥상에서 무언가가 언뜻 보였습니다. 잘못 본 게 아닐 테지. 슬슬 그쳐가는 눈보라 사이로 또 한 번 불이 반짝였습니다. 그러더니 몇 번 깜빡깜빡 연달아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악한 녀석!”



감히 옥상에 숨을 생각을 해? 숀은 자신의 날카로운 시력과 통찰력을 자찬하면서 옥상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어차피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그 문 앞에만 도착하면 불청객은 우리에 갇힌 생쥐와 다름이 없는 꼴. 숀은 금세 옥상 문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굳게 시건 되어 있어야 할 자물쇠가 풀어져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학교 하랑을 꼼꼼히 살피는 숀이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할 리가 없습니다. 불청객은 자물쇠를 따는 나쁜 손재주에도 일가견이 있는 녀석인가 봅니다. 더 볼 것도 없겠다, 숀은 힘차게 철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콰앙!




- 2편에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자실에 숨어든 삼수생 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