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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14. 2023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②

꿈의 학교 하랑 EP 2


콰앙 



“잡았다 이 도둑...! 아니, 이 야밤중에 옥상에서 뭐 하는 거요!’



“아오 깜짝이야!  뭐.... 에요?”



갑작스러운 숀의 등장에 불청객은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렸습니다. 가느다란 연기를 흘리며 끝이 타고 있는 담배가 옥상바닥을 따라 데구르르 굴러갔습니다. 당황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숀에게 짜증을 부리려던 그는 곧 숀의 위압적인 덩치와 경비모자를 보더니 살짝 겁먹은 듯 황급히 말을 높였습니다. 



숀은 그런 그를 말없이 응시했습니다. 먹잇감을 앞에 두고 조용히 먹이를 응시하는 곰처럼, 그는 살짝 쫄아있는 불청객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염색을 한지 오래됐는지 정수리부터 까만 머리가 자라나고 있는 지저분한 노란 머리에, 철 지난 파란색 노수페이스 패딩, 불안한지 달달 떨고 있는 다리… 그러면서 지기는 싫은지 날카로운 눈을 이쪽으로 치켜뜨며 소소한 반항을 하고 있는 이 불청객…. 누가 봐도 삼류 악당 영화에 나오는 양아치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섭게 패거리로 다니는 조폭이 아닌, 강한 주인공에게 초반에 정리당하는 그런 양아치의 표본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아씨.. 아저씨! 나갈게요. 나간다고요.”

이내 꼬리를 내리며 조용히 사라지려는 양아치의 뒷덜미를 숀은 강하게 움켜잡았습니다.



“잠깐.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자네는 지은 죄가 한두 개가 아니라고.”



“아니 옥상 좀 잠깐 빌려 썼다고 뭐가 문제에요!? 그리고 나 여기 졸업생이라고요! “



“졸업생?”



“그래요~ 재작년에 졸업했지만, 하랑 졸업생이라고요.”



양아치는 억울한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숀에게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따위 협박에 물러 설정도로 숀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양아치의 죄목을 하나씩 읊기 시작했습니다. 두툼한 곰발바닥 손가락이 하나씩 접혀나갈 때마다 양아치의 얼굴빛은 눈에 띄게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그렇다 해도 자네가 죄를 지은 것은 변함이 없어. 우선 밤늦게 출입이 통제된 학교에 들어온 무단침입죄, 옥상은 금연인데 흡연을 한 금연장소 흡연죄, 어르신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친 어르신 불공경죄, 머리염색 제때 안 한 풍기문란죄….



“아니 , 뒤로 갈수록 죄목이 이상해지잖아요!? 와 나 진짜 억울해죽겠네”



“보자… 우선 교장선생님께 전화 돌리고, 경찰에 이어서..”



억울해서 가슴을 쿵쿵 치는 양아치의 모습이 어딘가 익숙했지만 숀은 그를 무시하며 짐짓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양아치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이제 주도권은 하랑의 경비 아저씨, 숀이 전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네 상황이 딱하기도 하니 내가 눈을 감아줄 수도 있지…”

양아치의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당근과 채찍을 살짝 흔들어봅니다.



“네. 진짜 오랜만에 여기 와서 담배 한 대 태우고 가려했다니까요. 제발..”



내 부탁 하나 들어주면 조용히 넘어가 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야…”



“부탁요..?”



숀은 눈발이 그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고, 이어서 양아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곰처럼 큰 덩치에 순진해 보이는 얼굴에서 하얗게 드러난 새하얀 미소를 보며 양아치의 몸은 애처롭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슥삭 슥삭 



“아니 거 젊은 사람이 빗질도 제대로 못하나? 군대에서 뭘 배운 거야.”



“아저씨 저 아직 미필이거든요?”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제설을 돕는 양아치


양아치는 숀이 집어던졌던 빗자루를 들고 운동장 트랙을 따라 눈을 치웠고, 숀은 그 옆에서 초록색 제설삽을 가져와서 열심히 눈을 가장자리로 퍼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추운 날씨임에도 제설로 데워진 두 사람의 외투 위에서 땀과 열기가 아지랑이가 되어 일렁일렁 피어올랐습니다. 양아치는 줄곧 투덜투덜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숀을 곁눈질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열심히 빗질을 하였습니다. 



어느새 밝게 뜬 보름달이 숀과 그를 비췄습니다. 달빛은 바닥에 쌓인 눈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바스러졌고 쏟아진 빛의 알갱이는 학교 전체를 평소보다 밝게 비춰주었습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제설작업 두 시간 후, 양아치의 골골거림에 숀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운동장의 트랙과 등교길목은 말끔하게 치워졌습니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트랙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고 그는 내심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양아치는 손을 놀리지 않고, 성실하게 숀을 도와주었습니다. 그게 비록 자의는 아닐지라도요. 



“수고했어. 잠깐 들렀다 가라고.”



 숀은 오토바이를 향해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도망치려는 양아치의 덜미를 잡고 경비실 안으로 그를 초대하였습니다. 순찰 전 켜놓은 전기난로 덕분에 경비실 안은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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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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