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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14. 2023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③

꿈의 학교 하랑 EP 2

양아치는 처음 들어와 보는 경비실이 신기한 듯 좁은 공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침대 위에 쓰러지듯 철퍼덕 걸터앉았습니다. 



“오늘은 식기 전에 오지 못해서 미안혀~”



침대가 다소 더러워졌지만 숀은 신경 쓰지 않고 식어버린 포트에 추가로 물을 채운뒤 다시 전기포트의 전원을 켰습니다. 그는 이어서 찬장을 뒤져 그가 찾은 물건을 자랑스럽게 양아치에게 흔들어 보였습니다.   



“제설 후에는 뜨끈한 라면이지.”


숀이 꺼내든 음식은 누구나 아는 그 맛이었다.


동그랗고 얇은 플라스틱 용기에 , 얇은 면발이 담겨 있는 육개장 사발면. 숀이 물을 붓자 가느다란 면발은 수프가 녹은 국물을 흠뻑 들이키며 번들번들 먹음직스러운 빛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짜고 매콤한, 익숙하며 자극적인 인스턴트 냄새가 좁은 경비실을 기분 좋게 채워 나갔습니다. 침대에서 멍하니 사발면을 바라보고 있던 양아치의 목울대가 격하게 움직이며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후루룩 후루루룩 



양아치에게 사발면 하나를 건넨 후, 자신몫의 알맞게 익은 사발면을 숀은 요란하게 면치기를 하며 입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양아치도 질 수 없다는 듯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면치기 배틀에 동참하였습니다. 한동안 경쟁하듯 전투적으로 라면을 먹던 숀과 양아치는 젓가락을 놓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포옥 내쉬었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편해진 양아치의 표정을 살피던 숀은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네, 옥상에는 왜 들어왔나.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니던데.”



양아치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습니다. 고요했던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동심원을 그려나가듯 그의 눈동자가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양아치는 무거운 입을 떼며 그의 이야기를 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후회하고 있어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저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어요...”






그는 처음부터 양아치는 아니었습니다. 도토리 키 재기를 한다면 더도 말고 딱 중간, 반에서 자리 배정을 하면 인기가 많은 창가도, 공부에 열의를 가지고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는 것도 아닌 중간에서 한 두 칸 떨어진 자리에 앉던 학생. 적당히 지저분하게만 보이지 않게끔 멋을 내본 바가지 머리의 학생. 양아치는 평범한 고교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반의 일진과 친해질 계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걔가 숨기고 있던 담배를 대신 숨겨주고 혼이 났거든요. 그때 내가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한숨 섞인 자조를 섞으며 양아치는 말을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일진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맞지 않는 옷을 입은듯한 거북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 거북함은 한 가지 감에 의해 희석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의 눈으로 보였던 작은 세상은 돈과 법, 선생님의 회초리보다는 주먹이 가까워 보였고,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는 친구들보다는 화려한 패딩을 받쳐 입고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또래에 비해 돈도 많았고, 학교라는 울타리를 자유롭게 이탈하며 신나게 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어울리는 양아치를 바라보던 눈빛 역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움.. 그 눈빛에 저는 우월감을 느꼈어요.”



그가 예전에 일진친구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심정과 기분을, 이제는 그가 주인공이 되어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집어가도 눈을 피하며 무어라 못하는 친구들, 아니 반 학생들. 운동장을 전세 내도 구석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들을 보며 양아치는 하찮은 전능감에 젖어들었고, 호랑이를 뒤에 업은 여우처럼 학교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작스레 그를 따로 불러냈습니다. 



“야.. 너 변했다. 왜 그러고 사냐?”

친구가 말했습니다. 



“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양아치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너, 양아치 다됐어. 지금이라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라. 제발.”



하랑의 뒷산으로 사라지는 해가 노랗게 저물어가며 교문 앞에 서있던 그와 친구를 비추었습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바닥을 바라보던 양아치가 헛웃음을 켰습니다. 



“하… 너 , 그래. 한자리 만들어줄까? 그게 부러웠나 보네. 맞지?”



이게 아니라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고 양아치는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타인이 지껄이는 소리처럼 전혀 다른 소리가 튀어나왔습니다. 친구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한마디에 스스로 놀라고 있던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친구의 탁해진 눈동자 안에서 그럼에도,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양아치의 볼썽사나운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 그래. 잘 있어라.”


그는 그의 곁을 떠났다.


친구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새카맣게 물들어가는 바닥은 양아치의 그림자를 집어삼키며 커져갔고, 친구가 골목을 지나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는 알량한 자존심에 사로잡혀 그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그는 친구를 잃었습니다.



숀은 이야기를 꺼내는 양아치를 바라보았습니다. 턱밑까지 차오르던 그의 숨은 진정되어 있었고, 때 아닌 노동으로 몸을 덥히던 열기는 어느새 차갑게 식었습니다. 숀의 경비실은 따스했지만 양아치는 그 온기를 느끼지 못한 듯, 느낄 자격이 없다는 듯 온몸으로 거부하며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수그렸습니다. 더 이상 상처받기 싫은 동물처럼.



“더 이야기하기 힘들면 그만 이야기해도 된다네.”

숀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지금은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요. 좀 더 들어주세요.”

숀의 친절을 거절하며, 양아치는 말을 이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사람은 결국 흘러가는 존재이고 그 친구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어. 양아치는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며 남은 고교생활을 보냈습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친구와의 기억은 자극적이고 매일이 새로운 일진 친구들과의 시간으로 덧칠되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끝은 결코 좋지 못했습니다. 




- 4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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