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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19. 2023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④

꿈의 학교 하랑 EP 2

그러나 그 시간의 끝은 결코 좋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수금을 시키더라고요. 그 자식들..”


양아치는 두려웠다.



그들이 입던 비싼 옷, 몰래 쟁여둔 담배와 술, 어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것들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진무리들 중 가장 늦게 들어온 양아치에게 그들은 수금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명목은 이달의 친구 비용. 순 억지 같은 삥 뜯기에 양아치는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에게 걸리면 어쩌지,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게 맞을까. 망설이는 양아치의 어깨를 일진친구는 위협적으로 턱턱 두드리며 지긋히 눈웃음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놀아주었잖아. 밥값 해야지. 그치?”



양아치를 바라보던 그의 눈은 한 톨의 감정조차 담겨있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물건의 품질을 살펴보듯 양아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차가운 눈빛이 양아치는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한낱 모래성처럼 얕은 성벽을 이루고 있던 그의 현 위치, 일진의 말 한마디에 금세 '지금의 위치'에서 끌어져 내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결국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다 변명이죠. 그때라도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부모님을 졸라서 비싸게 산 파란색 노수페이스 패딩을 갑옷처럼 받쳐 입고, 그는 1반부터 차례로 수금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부터 되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 학생들은 돈을 달라는 그의 말에 익숙하게 지갑을 열었습니다. 고작 반 하나를 돌았을 뿐인데 자신이 입고 있던 노수페이스 패딩을 두 개는 살 돈이 순식간에 모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신이 나서 양아치는 반을 돌며 수금에 속도를 붙였습니다. 친구들을, 아니 반학생들을 내려다보는 일이 즐거웠고 살아온 동안 만져 본 적 없는 큰돈을 들고 있자니 부자가 된듯한 우쭐함에 취했습니다. 이따금씩 투덜거리는 애들에게는, 주먹 좀 쓰는 일진친구들의 이름을 대거나 사물함을 위협 삼아 쾅쾅 차대면 으레 겁을 먹고 돈을 냈습니다. 



터벅터벅 , 타다닥 타다닥 



망설임이 남아있던 발걸음은 가벼워졌습니다. 양아치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습니다. 큰 어려움 없이 1반부터, 2반, 3반…. 각 반의 수금을 마친 후, 마지막반인 10반의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는지 반학생 들은 지갑을 열고 돈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 애들아, 얼른 친구비용 입금해라. 우리 잘 지내야지? '친구' 니까.”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는 양아치를 보며 하나둘 돈을 내고 자리로 돌아가는 반학생 들이었습니다. 



꼴값 떠네. 미친 X



그러던 중 유난히 강하게 양아치의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그저 중얼거리는 소리치고는 지나치게 큰, 그리고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 



“뭐? 친구야. 뒤지고 싶냐.”

딱딱한 웃음을 애써지어 보이며 태연하게,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친구? 너 같은 새끼랑은 절교한 지 오랜데.”



비웃음이 가득 담긴 채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린 사람은, 그가 잃어버렸던 친구, 이제는 타인일 뿐인 반학생이었습니다. 쉽게 꼬리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양아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 양아치는 움찔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강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 치고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양아치를 보며 반 학생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양아치에게 유리하게 불었던 공기가 점점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뒷목이 뻣뻣해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지면 안돼. 여기서 얕보이면 진짜 안돼. 



퍽 



생전 처음 누군가를 때려본 주먹질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프고 무거웠습니다. 친구의 얼굴에 내리 꽂힌 주먹은 양아치의 무게 중심을 그대로 끌고 갔고, 넘어진 친구 위로 꼴사납게 엎어진 그는 위에 올라타서 연달아 주먹질을 했습니다. 



퍽 퍽 퍽..



“야 싸움 났다. 담탱이 불러!”



“야야 일단 찍어 찍어!”



상황 밖에 있는 학생들의 소리가 들렸으나 양아치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그의 주먹은 빨갛게 부어있었고 그만큼 친구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상처로 덮였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끝내 그에게 주먹을 날리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끝까지 주먹을 날리지 않았다.



그저 멍 투성이가 된 얼굴을 든 채로, 양아치를 두 눈을 뜬 채 똑바로, 올려다볼 뿐이었습니다. 



그를 내려다보는 것은 양아치였지만, 왜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요. 양아치는 친구가 그를 내려다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른한테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처럼, 두 주먹을 쥔 채 양아치는 친구에게 연달아 주먹을 내질렀습니다. 그가 수금하던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돈다발이 팔랑거리며 교실 주변을 돌아다녔고, 와글거리는 군중의 목소리들, 부산한 소음이 뒤섞인 교실이 양아치와 친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리고 양아치는 주먹 끝에서 피어나는 끝 모를 외로움과 공허함에 몸을 떨었습니다.



“너는 그 친구를..”



“저는 친구라고도 부를 자격이 없어요. 그 친구, 저 때문에 전학을 갔거든요.”



싸움은 거기서 끝났지만 친구의 싸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른 일진친구들은 학교의 거대한 기득권인 자신들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고, 집요한 괴롭힘 끝에 친구는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예정된 수순대로였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세상은 결국 우물 안처럼 좁은 세상이었으며 졸업 후 세상 밖으로 내던져진 양아치와 일진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할 줄 아는 것 없이 덩치만 커진 어린이 취급일 뿐이었습니다. 졸업 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몸을 굴리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보니 쌓여가는 것은 피로와 함께 찾아온 더 큰 외로움, 공허함이었습니다. 



“그냥 두렵고... 미안해요.”



“그 친구에게 사과하고 싶어요. 꿈속에서의 저를 몇 번이고 패 죽였는데도 깨어나면 그 과거의 모습이 결국 저였다는 게, 지울 수 없다는 게 소름 끼쳐요. 그 친구를 볼 낯이 없어요..”



두 손으로 거의 다 먹은 육개장 사발면을 든 채, 양아치의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습니다. 숀은 그런 그를 지긋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양아치에게 다가갔습니다. 




 퍼어억! 



- 5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양아치는 옥상에서 청승을 떤다 ①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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