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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Jun 04. 2023

나의 해바라기 ①

꿈의 학교 하랑 EP 5

“후.. 정말 푹푹 찌는구나.”

숀은 살짝 늘어난 옷의 목깃을 잡아당기며 연신 툴툴거렸습니다. 



중복을 지나 말복을 앞두고 있는 한여름밤의 학교는 어둠이 미처 가져가지 못한 열기가 운동장을 남아 맴돌고 있었습니다. 밤인데도 울리고 있는 매미의 맴맴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숀의 귓가를 때립니다. 



여름이 되어 하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소매길이가 더욱 짧아진 하랑의 학생들처럼(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숀의 옷도 눈에 띄게 짧아졌습니다. 네이비색 조끼는 통풍이 잘되는 그물로 이루어져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재질입니다. 숀은 그 안에 얇은 반팔티를 받쳐 입었습니다. 하얀 티의 살짝 늘어난 목부분이 안 그래도 후줄근하니 푸근한 인상을 주는 숀을 더욱 늘어져 보이게 만듭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그의 듬직한 배는 이제 막 식사를 마치고 만족스럽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곰을 연상시킵니다. 



가만히 시계를 들여다보던 숀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2를 가리키는 순간 앉아있던 의자에서 비척비척 일어났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림보 하듯 뒤로 크게 한 번.  



사계절 변함없이, 꾸준한 그만의 준비운동이 끝난 후 그는 탈탈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끄고 문을 열었습니다. 초여름의 비가 많이 오던 그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운 열기가 숀의 몸 전체를 강타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익어버리겠는걸?"




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지만 그가 남기고 간 열기는 운동장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여름밤의 열기는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숀의 정신을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고개를 휘휘 돌려가며 애써 정신을 차린 숀은 가까운 급식실부터 순찰을 돌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텅 빈 정자를 지나서 급식실로 올라가는 계단이, 오늘따라 하염없이 길고 멀게 느껴집니다. 



텅 빈 급식실을 한 바퀴 돈 후, 본관 2층으로 연결되는 연결다리를 건너며 숀은 여름이 덮쳐온 학교의 풍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붉은색 벽돌로 쌓아 올려진 본관의 기둥을 담쟁이덩굴이 두텁게 감싸며 자나라고 있었습니다. 겨울에는 입을 꼭 다물고 있던 파란 장미도 담쟁이덩굴 사이사이에 얼굴을 내밀며 붉은 벽돌과 어우러져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숀은 아름답게 우거진 장미덩굴 기둥을 넘어 조금 더 멀리 있는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름밤의 열기를 담은 습한 바람이 숀의 머리카락을 간지럽힙니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이야..”



꿈의 학교 하랑. 하랑의 커다란 본관 건물 너머로는 검은 안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아지랑이는 마치 살아 있는 듯 넘실거리며 이쪽으로 넘어오라는 듯 하늘거리며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그저 배경처럼 학교 밖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임을 알고 있지만, 처음 꿈의 학교에서 숀의 몸으로 깨어났을 때, 그는 검은 안개를 보고 엄청난 두려움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나 안개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일렁일 뿐 어떠한 해를 끼치지도, 학교 안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그것이 익숙해질 무렵, 숀은 검은 안개를 바라보는 순찰 중 막간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지금은 어쩐지 보고 있으면 편해질정도로 고요하고, 익숙한 기분이 듭니다. 



“아이코. 내 정신 좀 봐. 오늘은 후딱 돌고 시원한 냉커피나 한잔 해야겠어.”



잠시 멍하니 통로에 서서 풍경을 구경하던 숀은 이내 이마를 탁 치며 멈췄던 만큼 빠른 걸음으로 순찰 루트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명의 사람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지나, 1층 복도를 거닐고 교실마다 꼼꼼히 살펴보던 숀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습니다. 



지직… 지지직..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는 잡음이 복도의 오른쪽 끝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기계가 멋대로 켜지기라도 했나? 숀은 소리의 출처를 찾아보려고 하였지만 이내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나는!!! 1등이!!! 싫어!!!! 그만하고 싶 ~ 다 ~ 고~!



낡은 스피커 안에서 불청객의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밤의 하랑을 쩌렁쩌렁하게 메울 만큼 커다란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립니다. 마이크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는 무언가 토해내고 싶다는 듯 응어리져있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이제는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는 이 맹랑한 불청객들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숀은 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불청객이 있을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달려가는 숀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즐거워 보입니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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