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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30. 2023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完

꿈의 학교 하랑 EP 4

비가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초여름의 빗물이 미술실 창문을 강하게 긁으며 흘러내립니다. 울음을 꾹 삼키듯 잠시 고개를 뒤로 젖히던 그녀는 이내 숀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랍니다! 시시하고 재미없는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셔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관람료는 5만 원입니다~”



진담과 농담 사이를 외줄 타기 하는 그녀의 반응을 줄곧 가만히 살펴보던 숀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살짝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미술실에 울립니다. 



“아가씨. 나는 말이야.. 매일 밤마다 이 학교 전체를 순찰한다네. 경비실을 나와 급식실을 지나지. 그 이후에는 본관을 거쳐 야자실까지 모든 곳을 관리하고 점검한다네.”

혹시나 자네 같은 불청객이 없는지 확인도 하고 말이야. 숀 역시 가볍게 웃어 보였습니다.



“이 미술실도 예외가 아니라네. 매일마다 찾아오며 이상이 없는지 점검하는 곳이지. 그런데 말이야. 항상 미술실을 올 때마다 신기한 경험을 한다네.



그는 미술실 뒤편을 가리켰습니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 그녀의 시선은 이내 그녀가 그렸던 그림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한 번 가까이에서 봐보게나. 떼어서 말이야.”

숀의 재촉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림 앞에 다시금 섰습니다. 예전이랑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그림. 한 때는 자신에게 자랑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퇴색되어 버린 꿈이 그곳에 담겨 있었습니다. 



“아니, 아저씨. 뭘 자세히 보란 거예요. 암만 봐도 제 그림이구만..”

그녀의 투덜거림에 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없이 옆에 있던 조각상을 가리켰습니다. 그림을 든 채 고개를 돌려 조각상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습니다. 



왜 제 그림에만… 먼지가 쌓여있지 않은 거죠?



그림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는 먼지 하나 묻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같이 미술실 뒤편을 장식하고 있던 조각상에는 회색빛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는데도 말이죠. 마치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먼지를 털고 가꾸어 주는 듯 그림은 칠이 벗겨지거나 먼지가 쌓인 곳 없이 그녀가 기억했던 과거의 상태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림만이 시간축을 벗어나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녀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고스란히 담은 얼굴로 숀을 돌아보았습니다.



“나도 자네 그림을 지켜준 우렁각시가 누군지는 모른다네.”

숀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의 질문에는 답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 누군가가 바라고 있다는 거지. 아가씨의 ‘새 출발’을.”



숀은 씩 웃으며 액자 뒤를 살펴보라고 그녀를 재촉했습니다. 



아가씨는 떨리는 숨을 참으며 그림을 뒤집어보았습니다. 자신이 학생 때 썼던 싸인과 이름이 멋들어지게 휘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글씨 위에, 하나의 글씨가 더 적혀 있었습니다. 부끄럽다는 듯 액자의 가장자리에 자그맣게, 그러나 정갈하고 바른 글씨체로. 그녀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너무나 작지만, 상냥한 글씨체는 그녀를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녀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다정함. 몇 번이고 고민한 후 작성했을게 뻔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적어 놓은 짧은 한 마디. 다재다능해서 글씨조차 잘 썼던, 나의 경쟁자. 그리고 나의 가장 친했던 친구. 그녀의 흐느낌은 더욱 커졌습니다.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진 눈물은 액자 뒤편을 적시며 자국을 남겼습니다. 숀은 그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려 미술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딴청을 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에게 숀이 할 수 있었던 배려였고, 초여름의 여름비도 그에 동참하듯 더욱 거세게 내리며 그녀의 울음소리를 지워주었습니다.



“정말, 정말 고마워요 숀.”



한참을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울어재끼던 그녀는, 슥슥 눈물을 닦고 그림을 제자리에 걸어두었습니다. 아가씨는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새 출발을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숀 역시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자 불청객씨. 이제 슬슬 나가주셔야겠는걸요. 야밤의 하랑에는 귀신이 나온다고.”



“에이 아저씨. 지금이 어느 세상인데 귀신이에요. 여기가 꿈속도 아니고.. 하여튼 겁쟁이 셔.”



어느새 농담 따먹기를 할 정도로 친해진 두 사람은 물건을 챙겨 미술실을 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때. 섬칫하며 느껴지는 냉기와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숀과 아가씨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콰르르르릉! 



여태껏 친 천둥 중 가장 큰 소리의 천둥이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숀은 보고 말았습니다. 교실 앞쪽 허공에 노랗게 반짝이는 두 개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혹시나 잘못 본 게 아닌가 옆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아아.. 그녀 역시 어둠 속 눈동자를 가리키며 입을 떠억 벌리고 있습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귀.. 귀신이 다아!!”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숀과 아가씨는 누가 먼저고 할 것 없이 미술실 밖을 뛰쳐나갔습니다. 어두운 복도에서 누군가 넘어졌는지 철퍼덕,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본관을 빠져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쳐 버렸습니다.






냐옹 



조용한 미술실에 울려 퍼지는 작은 울음소리가 정적을 깹니다. 미술실 창문 밖으로 노란 눈동자 한쌍이 운동장 쪽을 바라봅니다. 신비로운 회색빛을 가진 고양이는 창문에 몸을 기대며 경비실로 뛰쳐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긋하게 응시하였습니다. 고양이에게 표정이 있을 리 없지만 어쩐지 조금은 웃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색 고양이는, 아무도 없는 미술실을 한 차례 맴돌더니 하품을 크게 하며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처음부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미술실은 다시금 고요하게 가라앉았습니다.



냐옹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끝. 



- 'EP5. 나의 해바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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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① (brunch.co.kr)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② (brunch.co.kr)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③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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