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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28. 2023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 ①

꿈의 학교 하랑 EP 4

비가 잔뜩 내리는, 여름이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거세게 때립니다. 사시사철 비바람을 막아주는 고마운 창문이 위태롭게 덜컹거리는 모습을 보며 숀은 순찰을 나갈 채비를 서두릅니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특히나 할 일이 많기에 단단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푸른색 우비를 뒤집어쓰고, 손전등에도 얇은 비닐을 씌웁니다. 양말은 벗어두고 맨발로 두터운 남청색 장화를 신습니다.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오른쪽으로 한 번. 마지막으로 림보 하듯 뒤로 크게 한 번. 



쭈우우욱 거창하게 기지개를 킨 숀은 냉장고에 있던 보리차를 꺼내 들어 벌컥벌컥 들이킵니다. 크기가 큰 델몬뜨 유리병에 담겨 있던 보리차는 머리가 쨍해질 정도로 차갑습니다. 목을 축인 숀은 문가에 있던 긴 장우산을 챙겨듭니다. 그러면 이제,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익기 전에 다녀오겠네”



초여름의 적당한 열기와 온몸에 올라타는 습기를 느끼며 숀은 경비실 밖을 나섰습니다. 어둑한 밤에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비가 그의 어깨를 치고 뚝뚝 떨어져 내립니다. 급식실 아래로 콸콸 거리며 흐르고 있는 배수구에서 흙탕물이 흘러넘칩니다. 급식실 아래 있는 차양대를 따라 최대한 비를 피하며 숀은 순찰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잔디가 깔리지 않은 흙바닥 그대로인 운동장을 지나왔기에 숀의 장화에는 번들번들한 진흙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찰박 찰박 



어느새 장화 안을 채운 빗물이 숀의 맨발을 간지럽힙니다. 순찰이 끝나면 쭈글쭈글해져 있을 발가락을 생각하며 숀은 가만히 한숨을 내쉰 채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급식실 밑에 있는 정자를 지나 차양대가 쳐진 시멘트 계단까지 그의 진흙색 발자국이 길게 찍힙니다. 여름비는 매섭게 차양대를 두드리며 불길한 밤의 오케스트라를 시작했고, 숀은 이 시끄러운 빗소리가 익숙해질 무렵 어느덧 본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따라 으슬으슬하네 그려.”



매번 순찰을 돌며 눈을 감고도 몇 반 앞인지 곧 잘 맞추던 숀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가 걷고 있는 복도는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으스스한 느낌이 물씬 풍겨 왔습니다. 창밖을 불길하게 때리는 빗소리는 점점 강해졌습니다. 교무실 앞에 걸려있는 큰 거울이 오늘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을 담고 있습니다. 



화장실 앞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 어두운 들판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사람이 3명이었나 아니, 4명 아니었나!? 한 명은 어디 갔지.



숀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습니다. 큰 곰 같은 덩치의 아저씨가 몸을 잔뜩 구부린 채 복도를 살금살금 걷는 모습이,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먹이를 노리고 있는 불곰 그 자체였지만 그는 진지하게 겁을 먹은 상태였습니다.



드르륵



찬찬히 살펴본 교무실은 다행히 조용하고 고요했습니다. 문을 닫은 숀은 교무실을 지나 복도 끝쪽 미술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따라 복도가 길게 느껴집니다. 초여름치고는 높은 기온과 그가 뒤집어쓴 우비로 인해 더울 법도 하지만 밤의 학교가 주는 음산함은 끝 모를 오싹함을 주었습니다. 



미술실 문을 열고 슬금슬금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얗게 조각되어 있는 석고 조각상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습니다. 어디를 바라보는지 모를 무채색 시선에 혹여 눈을 마주칠세라 숀은 휘휘 손전등을 돌리며 미술실 안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콰르르릉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찰나의 간격으로 천둥이 내리쳤습니다. 근처에 떨어진 번개인가 봅니다. 커튼이 쳐져 있지 않았기에, 천둥이 치는 순간 미술실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숀은 보고 말았습니다. 하얀 석고상인줄 알았던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리는 장면을..



콰르르릉!! 



“으.. 으아아악!”

손전등을 내던져버린 채 숀은 볼썽사납게 뒷구르기를 하며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으아악..!



연달아 친 천둥사이로 하얀 소복을 입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시고 있습니다. 서릿발같이 차가운 눈동자가 숀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영락없이 학교에 한이 맺혀 이승을 떠도는 귀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귀신은 그대로 숀을 향해 사박사박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숀은 그 큰 덩치에 맞지 않게 눈을 꼭 감고 앞으로 손을 어푸어푸 내저으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사박사박



조용히 다가오던 귀신의 발소리가 숀의 바로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쿵쿵 뛰던 숀의 심장도 따라 멈추는 기분이었습니다. 

등 뒤로 식은땀이 좌르르 흐릅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꿈이라고 해줘...”



"..."



"아 여기 꿈이지. 왜 안 깨는 거야 어흑.."



“괜찮으세요?”



바둥거리던 숀의 머리 위로 귀신에게서 나오기에는 상당히 친절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숀은 허우적거리던 손을 슬그머니 내린 채 눈을 떴습니다. 그의 눈에는 손을 내민 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는 듯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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