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우 May 25. 2023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完

꿈의 학교 하랑 EP 3

뚜벅뚜벅  


터벅터벅



교무실의 미닫이문을 연 이후부터, 물 흐르듯 1층의 교실들을 넘어 2층으로 걸어갈 때까지 고요한 공간에는 두 개의 발소리가 교차하며 좁은 복도를 채웠습니다. 무거운 발소리와 살짝 가벼운 구두소리가 서로를 배려하며 존재감을 표시합니다.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앞서 가던 숀은 발걸음을 어느 장소에 다다르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불이 꺼져 있는 야자실. 선생님은 불현듯 기억 속에 있던 두꺼운 뿔테안경의 학생이 떠올랐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여 야자실에서도 감독을 하며 자주 얼굴을 보았던 학생. 소심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녀석. 내가 못해준 게 많은, 별똥별 같은 학생.


차가운 기운만이 감도는 야자실을 보며 선생님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숀은 야자실을 쓱 둘러보더니, 이어서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순찰을 돌며 두 사람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저 숀이 앞서나가고 선생님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평생 누군가의 앞에만 서야 했던 선생님은 묘한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반 하나하나 문을 열고 꼼꼼하게 살피는 숀의 모습은 아까의 넉살스러운 경비아저씨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1반을 넘어 2반, 3반, 이윽고 마지막으로 숀은 10반의 문을 열었습니다. 잠시 숨을 멈춘 선생님은 10반으로 들어섰습니다.



그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어색한 공간. 어둑한 공간 속 숀이 손전등으로 비추는 공간을 보며 선생님은 조용히 숨을 삼켰습니다. 학생들과 작성을 하였던 입시계획표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칠판. 몇 번을 서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교탁. 그렇게 운동장에서 발을 털고 들어오라고 했는데, 쥐똥만큼도 듣지 않은 제자들 덕에 언제나 모래가 쌓여있는 교실 바닥까지. 수천, 수만 번을 보았을 풍경임에도 태어나서 처음 보는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하듯 선생님은 찬찬히, 오랫동안 숀이 훑은 공간을 살폈습니다. 선생님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던 바로 그때, 숀은 손전등을 든 채 교실 맨 앞 교탁 앞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저는 못 배운 놈이라, 어려운 말은 모릅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 길고 긴 길을 걸어오며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누군가는 실망하고 떠났겠고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주었겠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선생님의 흔적은 여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조용히 교탁 앞에 서서, 손전등을 든 숀이 가만히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 역시 누군가에게 샛별이고, 별빛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교탁 앞에 선 숀의 모습이, 선생님은 낯설지 않았다.



손전등이 지나치게 밝은 탓인지,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곰 같은 숀의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그런 숀의 모습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보였습니다. 교탁 앞에 서 있는 숀의 모습과, 교탁 앞에 서서 매일 수업을 했을 자신의 모습이 유달리 겹쳐 보이는 것은 밤의 학교가 주는 마법이었을까요.






“차렷 선생님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매번 듣는 형식적인 인사였지만 오늘따라 무언가 색다르게 들리는 하루였습니다. 선생님은 교실밖을 나가려던 몸을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다음시간만 지나면 점심시간인지라 학생들의 눈은 비교적 말똥 말똥 뜨여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벌써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에 엉덩이가 들썩 거리는 맨 뒷줄 녀석, 눈에 심하게 밟힙니다. 커튼에 몸을 교묘하게 가리고 낮잠을 즐기던 녀석도 보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제자들을 보며 문득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 고맙다 애들아.”



무심코 던진 말을 뒤로하고 교실문을 닫았습니다. 뒤에서 뭐 잘못 먹은 거 아니냐. 코크니 맞냐 등등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습니다. 교무실 바로 앞에 있는 거울을 보지도 않고 교무실로 뛰쳐 들어왔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칫 부끄러움에 잔뜩 붉어져 있을 자신의 얼굴과 눈을 마주칠 것 같았습니다.



“아, 교감선생님. 꽃선물이 하나 왔던데요?”

교무실로 들어온 선생님에게 옆반 동료선생이 책상을 가리키며 웃어 보였습니다.



자리에는 소담하게 꽃이 꽂아진 꽃바구니가 놓여있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봄햇살과 약간은 쌀쌀한 봄바람에 꽃잎이 흔들렸습니다. 붉고 짙은 카네이션과 푸른 장미, 하얀 안개꽃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꽃바구니 속에서 선생님은 편지 한 장을 찾아냈습니다.



가물가물한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글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읽으며 그는 이내 한 학생을 떠올렸습니다.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있던 뿔테 안경의 학생은 소박하게 웃으며 자그마한 합격 소식을 담고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보리라 다짐을 하며 편지를 써 내려가는 학생의 모습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 녀석”

선생님은 몇 번이고 편지를 다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창밖으로 노랗게 핀 개나리가 교무실 안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봄이 오고, 새는 알을 깨고 나올 준비를 마쳤다.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끝.



- 'EP4. 비가 올 땐 미술실문을 열지마'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① (brunch.co.kr)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② (brunch.co.kr)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③ (brunch.co.kr)

매거진의 이전글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③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