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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21. 2023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①

꿈의 학교 하랑 EP 3

“차렷. 선생님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수업 중 발표를 시킬 때는 요리조리 눈만 피하며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수업종료를 할 때만큼은 우렁차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교실문을 나섰습니다. 무심코 위로 올리고 있던 손을 보았습니다. 자글자글한 손주름과 예전 과학실험을 하다가 플라스크가 터져버린 사고로 생긴 흉터가 눈에 띄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지나다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익숙한 2층 복도를 지나서 1층에 있는 보금자리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야. 코크니 지나간다.”



“으~ 코크니 변태 아님? 시험문제를 맨날 더 알아보기, 참고사항 이런데 서만 낸다니까.



지나가는 학생들에게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코크니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좋은 뜻이 아닌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쓱 돌려 학생들을 보며 크게 헛기침을 했습니다. 



“거 니~들. 복도에서는 뛰어다니지 마라. 망아지 마냥 여기가 들판이지 아주?”



괜스레 잔소리를 한 움큼 쏟아낸 선생님은 발걸음을 마저 옮겨 1층 교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저기 패인 미닫이문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봅니다. 나뭇결을 따라 느껴지는 세월의 감촉에 어쩐지 편안하고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 오랜 세월 학교에 몸을 담으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오랜 보금자리가 있는 이곳만은 변하지 않은 채 그를 맞이해 줍니다.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교무실 문을 열었습니다. 



드르륵 



미닫이문으로 되어있는 낡은 교무실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드르륵



“거 누구십니까?”



여느 때처럼 순찰을 돌던 숀은 교무실 문 틈 사이로 아른거리는 불빛에 미닫이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믹스커피 스틱을 입에 물고 종이컵에 뜨거운 정수기물을 따르던 할아버지가 화들짝 놀란 나머지 종이컵을 엎어버렸습니다. 하필이면 뜨거운 커피물은 유달리 코가 큰 할아버지의 콧잔등을 강타하고 지나갔습니다. 인생의 뜨거운 맛을 노년에 맛본 할아버지는 그럼에도 입에 물고 있던 믹스커피 스틱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연신 발을 동동 거리며 숨을 참았습니다. 뜨거운 믹스커피는 오밤중에 몰래 찾아온 선생님도 춤추게 만들 만큼 강력했습니다.


아이코 저런~




‘와 이건 사진이라도 찍어 놔야 하는데..’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보던 숀은 어른 공경을 해도 모자랄 판에 괘씸한 생각을 한 자신을 반성하며 눈앞에서 괴로워하며 괴상한 스텝을 밟고 있는 어르신께 손수건을 내밀었습니다. 



“어르신. 손수건으로 좀 닦으시죠. 그나저나…이 밤에 교무실은 어쩐 일로..?”



“아.. 실례했어요. 나 여기 학교 선생이라오.”



고맙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수건을 받아 든 할아버지는 자신을 하랑의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며 업무용 책상 위에 있던 명패를 탁탁 두드렸습니다. 명패를 두드리는 그의 손은 투박하고 주름이 자글자글 하여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아 선생님이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야간 경비를 맡은 숀입니다.”

숀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인사를 청했습니다. 



“아이고, 이 밤에 늙은이가 불청객처럼 들어와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어르신. 놓고 온 중요한 물건이라도 있나 봅니다. 이런 야밤에 찾아올 정도면..”



지나온 밤의 불청객들과는 다르게 연령대도, 직함도 너무나 다른 그였기에 숀은 한껏 예의를 차린 채 친절하게 선생님을 응대하였습니다. 그런 숀에게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인 선생님은 이내 씁쓸한 눈빛으로 빛바랜 명패를 바라보았습니다. 



“자네 괜찮으면… 잠깐 늙은이 말동무나 해줄 수 있겠나.”



혼잣말처럼 입 안에서 조용히 웅얼거려진 그의 부탁에, 숀은 반정도 돌은 순찰을 잠시 멈추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어둠 속에 늙은 선생님을 그대로 두는 것도 마음에 쓰였고, 어쩐지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익숙한 외로움의 향기가 나기도 하여서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 좋죠! 아 선생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숀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경비실을 향해 후다닥 뛰어갔습니다.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그의 손에는 네모난 모양에 파란 봉투의 과자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선생님을 향해 엄지를 척 올리며 과자를 뜯었습니다. 



믹스커피에는 이 녀석이 최고의 궁합이죠. 찐빵의 앙금, 라면의 김치, 마라탕의 푸주 같은 녀석이랄까요?



정사각형 모양의 비스킷. 포장지에는 큼지막하게 에이쑤라고 적힌 글자 사이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소녀가 프린팅 되어 있었습니다. 숀은 신이 나서 빛의 속도로 타온 커피 두 잔에 각각 비스킷을 퐁당 빠뜨렸습니다. 



“이게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너무 오래 담그면 비스킷이 죄다 녹아버리거든요. 둘셋.. 지금..!”



어느새 숀의 손끝을 집중해서 보고 있던 선생님은 코끝을 자극하는 달달한 커피냄새에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숀이 건져 올린 비스킷은 커피를 촉촉하게 머금어서 연한 갈색으로 번들거리고 있었습니다. 척보기에도 부드러워 보이는 비스킷을 조심스레 선생님에게 건넸습니다.

바삭한 비스킷은 커피를 만나서 비로소 완성된다.


“자 얼른~ 식기 전에 한입에 먹어야 합니다. 선생님”



숀이 내민 친절에 비스킷을 받아 든 선생님은 곧바로 비스킷을 입안에 털어 넣었습니다. 비스킷은 때를 잊고 늑장부리던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며 아낌없이 믹스커피의 달달함을 입 안 가득 선사해 주었습니다. 혀 끝을 따라 녹아내린 비스킷 알갱이의 적당한 고소함과 달콤 씁쓸한 믹스커피의 맛은 정말 숀의 말대로 환상의 궁합이었습니다. 



“아! 이제 좀 웃으시네요. 하하..”



가만히 선생님의 먹방을 구경하던 숀은 이내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비스킷을 믹스커피에 담갔다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야밤의 간식을 먹던 둘은 조금 더 편한 분위기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나갔습니다. 고요한 교무실, 깜박이는 스탠드 사이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조용히 점등하며 공간을 채워 나갔습니다. 



 “난 말이야…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이었어.”



-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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