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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21. 2023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②

꿈의 학교 하랑 EP 3

“난 말이야…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이었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을 가리키며 선생님은 그리운 눈빛으로 사진 속 인물을 바라보았습니다. 짧은 머리에 단정하게 다듬은 눈썹,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 복스럽고 커다란 코. 숀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허허.. 미남이었습니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네, 숀의 칭찬에 멋쩍은 듯 허허 웃던 선생님은 이내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듯 눈을 감았습니다. 달콤한 꿈을 꾸듯 그의 눈매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처음 모교로 부임하고 과학선생님으로 배정되었던 그는 열정이 철철 넘치는 젊은 피였습니다. 학생의 자리에서 항상 바라보기만 했던 교탁 앞에 서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동과 뚜렷한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반장의 선창에 맞춰 인사를 하는 제자들의 소리가 귓가에 쿵쿵 울렸습니다. 어쩌면 그의 심장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이제 막 과학 교사로 부임한 막내 담임이지만, 그는 진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에 들떠 있었습니다.



“교사 준비를 할 때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네.”

그는 책장선반에 있던 책중 하나를 꺼내 숀에게 건넸습니다. ‘통합과학’이라고 적힌 교과서는 세월과 손때가 잔뜩 타서 노랗게 변색되어 있었습니다. 팔랑이며 책을 넘기니 그곳에는 빼곡하게 들어찬 메모와 포스트잇, 형광펜의 밑줄이 알록달록 책 전체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가 꾸던 열정과 꿈이 책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고스란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까지 찾아와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네. 그놈들이 어찌나 그렇게 반갑던지.”



열정이 가득한 제자들에게서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던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과학의 세계는 교과서안에서 기술된 활자의 세계보다 몇천, 몇만 배는 넓은 우주와 같았고 그 우주의 편린을 잡을 수 있는 힌트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선생님은 끊임없이 공부를 하였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룬 기초지식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았고 흥미로운 신문기사가 있으면 꼼꼼히 스크랩을 하였습니다. 이따금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 아닌 교과서 밖의 내용들을 학생들에게 설명해 줄 때 선생님의 눈은 항상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그가 가르치던 오리온의 대성운은 1340광년만큼이나 먼 거리에 있었지만, 그의 눈앞에는 이미 은하수보다 빛나는 별천지가 있었습니다. 잔뜩 귀를 기울이며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의 눈동자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미리내이자 샛별이었습니다.


나에게 너희는 미리내이자 샛별이야.


어느 평범한, 이맘때쯤의 겨울이었습니다. 그가 맡았던 1학년 10반에 평소처럼 들어갔을 때 교실불은 깜깜하게 꺼져있었습니다. 창문은 죄다 커튼으로 가려 놓은 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둑한 분위기였습니다. 잠 잘 준비까지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는 없는데.. 선생님은 당황했지만 최대한 너스레를 떨며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생들을 깨우려고 교탁을 들고 있던 출석부로 탁탁 쳤습니다. 



“이놈들~ 잠은 죽어서 무덤에서 자도 충분하다. 얼른 일어나!”



그 순간 그가 서있던 교탁에서 학생 한 명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평소에 가장 성실하게 수업을 듣던 반장이었습니다. 



생일 축하 ~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생일 축하 합니다!


감동이다... 이 녀석들.


반장의 손에는 초가 잔뜩 박힌 케이크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의 선창에 따라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학생들도 좀비마냥 벌떡 일어나더니 우렁차게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젊은 선생님은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감동의 눈물이 찔끔 났지만 고개를 올려 눈물을 삼키고 애써 담담한 척을 해보았습니다. 



“하나 둘 서이… 야 나 이렇게 나이 안 많거든?”

그러고 보니 내 나이를 말해준 적이 없었지.. 큰 코 덕분에 살짝 노안이라는 말을 많이 들은 선생님의 액면가를 학생들은 아무래도 고평가 했나 봅니다. 족히 40개는 박혀있는 초를 보며 그는 하하 웃음을 터뜨린 후 숨을 깊게 들이마셨습니다. 



후! 



“고맙다! 이 녀석들아”



한 번에 훅 꺼져버린 초를 보며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고, 선생님은 그의 앞에 펼쳐진 샛별 같은 제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기쁨에 몸을 떨었습니다. 이 행복한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별천지 같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떠나가길 수차례, 선생님의 주름이 하나 둘 늘어서 골이 깊어진 밭고랑 같은 굵은 주름들이 3개는 생겼을 즈음 그가 느꼈던 열정과 기쁨은 점점 꿈속의 등불처럼 희미해졌습니다. 



뚜벅뚜벅 



몇 번을 걸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복도를 걸었습니다. 학생 두 명이 서로 장난을 치며 와다다 뛰어오는 소리를 들으며 선생님은 눈을 찌푸렸습니다. 



“이 망아지 같은 녀석들.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하냐. 어!”

선생님은, 생각보다 크게 나온 자신의 호통소리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학생들 역시 복도에 울린 호통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복도를 지나갔습니다.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지만 선생님은 무시하며 복도를 마저 지나 교무실을 향했습니다. 교무실 앞에 있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심술궂게 생긴 아저씨가 큰 코를 잔뜩 찌푸리며 서 있었습니다. 



“엇나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무시하기 바빴어. 열정만으로 지내기엔 너무 긴 세월이었어.”

조용히 한숨을 쉬며 선생님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마저 풀어나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학생들보다 나의 교사로서의 위치를 먼저 보게 되더군. 그때도 그랬지..”

선생님의 기억 속, 가장 후회스러웠던 기억의 상자 안에는 그가 담임으로 맡았던 3학년 10반의 기억이 담겨 있었습니다. 



“3학년.. 10반 말입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숀의 눈이 이채를 띄었습니다. 


눈이 정말 많이 오던 날 들었던 익숙한 학년, 익숙한 반이었습니다. 



-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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