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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우 May 25. 2023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③

꿈의 학교 하랑 EP 3

“내가 담임으로 있었던 반이었지.”

식어버린 믹스커피잔을 내려다보며 선생님은 서글프게 웃었습니다. 



고등학생에게 3학년이란,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처음으로 사회라는 커다란 들판으로 내달리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3학년 담임선생님들에게는 자신이 맡은 반에 어느 대학교 합격생이 나왔는지가 자랑거리이자 자신의 업적을 알리는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특히나 교감으로의 진급이 예정되어 있던 선생님에게 그것은 자랑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에 열심히 들려주었던 교과서 밖의 세상 이야기보다는 핵심정리, 시험에 출제될 부분에 대해서만 기계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들에겐 재밌는 유머 대신 출석부를 신경질적으로 탁탁 내리치며 미래에 대한 잔소리를 하며 그들을 억지로 깨웠습니다. 여느반과 다를 것 없는 삭막하고 지루한 과학수업이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입시란 장난이 아니니까. 학생들을 좋은 대학으로 보내는 게 목표니까. 



수능과 생활기록부 작성을 하며 교무실에 있던 여느 때, 급하게 학생 두 명이 달려왔습니다.



“선생님… 싸움이 났어요!”


조용했던 , 조용해야만 했던 교실에 균열이 갔다.


교무실 책상 위에 있던 사랑의 매를 집어 들고 곧장 교실로 뛰어갔습니다. 교실문을 여니, 둥글게 모여있는 학생들 사이로 치고받고 있는 두 학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파란색 패딩을 받쳐 입고 있는 척 봐도 양아치 같아 보이는 학생과 밑에 깔려 있는 학생은 익숙한 10반의 학생이었습니다. 평소 조용해서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나름 성실했던 학생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야 이 녀석들아.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



크게 소리를 치며 두 학생을 급히 떼어놓았습니다. 수업시간이고 뭐고 잔뜩 흥분하여 원숭이 떼처럼 소리를 지르는 학생들과 그 소용돌이 속에서 숨을 몰아쉬며 씩씩 거리는 두 녀석들을 보며 선생님은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분노를 느꼈습니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겨우 쌈박질이나 하고 있다니. 철없는 두 학생의 행동, 그리고 거기에 동화될 반 학생들이 우려스러웠던 그는 결국 제대로 된 자초지종을 알아보는 대신, 두 학생 모두에게 일주일간 정학처분을 내렸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습니다. 10반의 학생은 싸우는 내내 밑에 깔려 있었고, 멱살은 잡고 있었지만 때린 흔적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두 학생 간의 눈빛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픈 기류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그에게는 '겨우' 그런 것보다 반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이 길고 지루한 길에 선생님의 가치를 증명할 것은 얼마나 좋은 대학교에 많은 학생들을 보냈는지, 그리고 교감선생님이라는 명패. 



그게 전부였습니다. 



“인서울 5명. 지거국 5명. 내가 많은 것을 외면한 대가였어. 이 명패도 그 이후 받았다네..”

이름 석자 뒤에 적힌 교감이라 적혀 있는 명패를 만지며 씁쓸하게 선생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진정한 교사가 무어라고 생각하는가..? 인서울? 교감을 달만한 실적..?
나도 이제 와서는 답을 모르겠네. 모든 학생을 보듬어 주고 용기를 주기에는
나는 너무 늙고 지쳤어.



그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늪지대 같은 음습한 후회의 감정은 그가 걸어온 길에 새까만 먹물처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떨어진 먹물비는 밝게 빛나던 별빛을 어둑한 색깔로 덧칠해 나갔습니다. 



정학을 받았던 학생은 이유도 모른 채 학교를 떠났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수능을 망쳐 울고 있던 학생에게는 냉정하게 성적에 맞추어 대학을 가라고 다그쳤습니다. 학생은 검은 뿔테안경 너머로 실망한 눈빛을 지어 보이며 선생님을 떠나갔습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본 선생님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가 걷고 있던 곳은 어딘지도 , 얼마나 걸었는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모르는 어두운 길이었고 선생님은 장님처럼 그저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걷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불이 꺼진 터널 속을.



“참 못된 늙은이지 않은가. 그체..?”

이야기를 마친 선생님은 눈을 감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숀을 보며 웃어 보였습니다.



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계속 인상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흡사 겨울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서 끙끙 거리는 곰처럼 몇 분 간 고민하던 숀은 마침내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게 무슨 우연이야.. 아냐 그렇다고 직접 말씀드리기엔..”



“뭐가 말인가?”



계속 혼잣말을 하는 숀에게 선생님은 슬슬 무서움을 느끼며 야밤의 일탈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손을 숀의 곰 같은 커다란 손이 턱 하니 붙잡았습니다. 



“저.. 선생님. 제가 이야기도 들어 드렸으니, 저랑 순찰 좀 같이 돌아주셔야겠습니다. 먼저 퇴근이라니 치사하십니다.”

숀이 억지를 부렸습니다. 



“아니 거 난 내일도 수업이 있어서..”



“아이고.. 너무 오래 있었나? 이러다 순찰을 다 못 돌수도 있겠네요. 자자, 빼지 마시고 한 번만 같이 가주십시오. 아 오늘따라 혼자 순찰 돌기 너무 무섭네~”



숀의 계속된 너스레에 결국 선생님은 같이 순찰을 나서기로 하였습니다.



- 4편에서 이어집니다. 



*이전글 다시 보기*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① (brunch.co.kr)


별빛과 믹스커피 선생님 ②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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